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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수필

돌산도 서덕리

작성자仁齊 김권섭|작성시간26.06.19|조회수29 목록 댓글 2

돌산도 서덕리 가는 날

 

여수 동여수복지관에서 노인 급식 봉사를 하며 마음을 포개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집주인 C의 초대로 길을 나선 이는 나와 Y, 그리고 L, O, J까지 모두 여섯 명. 남녀가 섞인 걸음이었으나 나이테가 비슷하고 눈빛의 깊이가 어슷비슷하여, 첫걸음부터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렸다. 혹여 술기운에 누를 끼칠까 염려해 운전대를 잡은 두 여인의 차에 나누어 타고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여수 바다가 유난히 푸르렀다.

수십 명이 북적이는 탁구장에서도 마음을 온전히 나눌 이를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오늘 이 조화로운 여섯을 부려놓은 것은 온전히 총무 L의 탁월한 안목 덕분이었다. 수십 명의 회원 중 총무라는 직함은 탁구 실력은 물론이요, 모남 없는 살림 솜씨까지 갖춰야 하는 자리. 과연 그녀가 고른 인적 구성은 절묘했다.

다만 저마다의 삶의 무늬는 조금씩 달랐다. O는 모태 신앙인으로 남편이나 자식보다 신()을 더 꼭대기에 두고 사는 골수 신자였고, 언뜻 보아도 사내들의 눈길을 대번에 붙잡을 만큼 고운 자태를 지닌 J는 귀가 조금 어두운 난청을 앓고 있었다. 일흔의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이렇듯 몸의 어디 한 군데쯤은 무너지거나 닳아 있다는 사실을 서로의 실루엣에서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흠결들이 무슨 상관이랴. 고운 J가 손수 담가왔다는 배추김치는 시장의 그 어떤 명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깊었다. 달궈진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돼지고기보다, 그 손맛 깊은 김치에 자꾸만 젓가락이 먼저 갔다. 술잔이 오가는 순간, 독실한 O는 기절초풍을 하며 콜라와 사이다로 잔을 채웠고, 나와 Y마저 술을 멀리하니 결국 술잔을 부딪친 건 집주인 CJ뿐이었다. 가져간 술병은 고스란히 남았지만, 분위기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 가고 있었다.

거실 한구석,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대형 스크린이 내려오자 집안은 순식간에 생동감 넘치는 독무대로 변모했다.

이 근사한 무대를 마련한 집주인 C는 서울에서 예순둘까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곳 돌산도에 홀로 터를 잡은 이였다. 자식들을 보러 서울과 익산을 오가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의 손끝은 매서웠다. 건축부터 수도 설비, 전기, 태양광 설치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기술자였다. 그의 커다란 창고를 구경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중소 크기별로 늘어선 알루미늄 사다리만 열 개가 넘었고, 트랙터와 경운기, 관리기까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온갖 농기구가 질서정연하게 놓인 그곳은 동네의 번듯한 건재상사 다름없었다. 그 억척스러운 손으로 그는 혼자서 1,000여 평의 농토를 일구고 있었던 것이다.

짚 잡을 힘만 있어도 남녀는 서로를 유혹한다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그날의 우리는 서화담과 성춘향처럼 오직 곧고 바른 흥으로만 어우러졌다.

"좋아, 좋아! 신나, 신나!"

"이게 바로 진짜 대한민국 흥타령이지!"

겉으로는 다들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해 보여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삶의 무게에 지치고 그늘진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렇듯 온몸으로 흥을 발산하는 시간은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멍든 심신을 씻어내는 치유의 의식과도 같다.

남편보다 신이 더 좋다던 O, 탁구장에서는 늘 근엄한 숙녀 같던 이들도, 멍석을 깔아놓으니 저마다 가슴 속 응어리를 흔들어 깨우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맛 좋은 음식을 나누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원 없이 보낸 두어 시간. 모두의 옷자락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랠리를 이어갈 때보다 더 많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돌아오는 길, 문득 가슴이 아릿해졌다. 앞으로 살아가며 이토록 순수하게 몰입해 놀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남은 인생에서 이토록 눈부신 날이 또 올 수 있을까를 자문하며, 나는 가만히 남은 날의 달력 위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이 귀한 날의 기억을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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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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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석 임병식 | 작성시간 26.06.19 "남편보다 신이 더 좋다던 O도, 탁구장에서는 늘 근엄한 숙녀 같던 이들도, 멍석을 깔아놓으니 저마다 가슴 속 응어리를 흔들어 깨우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맛 좋은 음식을 나누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원 없이 보낸 두어 시간. 모두의 옷자락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랠리를 이어갈 때보다 더 많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탁구를 함께치다보니 서로들 마음이 활짝 열린것 같습니다.
    그런자리를 마련해준 분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네요.
  • 작성자仁齊 김권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9 총무가 주선하여 여섯 명이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하고 '흥타령'을 했습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니 즐거운 모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성깔머리가 고약했다면 분위기를 망쳤을 테지만 그렇지 않아 잘 즐겼습니다.
    집에 초대해준 C가 고마웠습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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