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임병식 rbs1144@daum.net
예전의 등불은 등에 양초를 꽂아 밝히는 것은 고급이었고, 대부분은 호야나 사각 등에 석유 등잔을 넣어 불을 밝혔다. 나는 그런 호롱불을 생각하면 아픈 곳이 도지듯 가슴이 먹먹해 온다. 바로 누나가 생각나기 때문인데 어느 날 무서운 밤길을 누나와 함께 걸었던 것이다.
그 일을 어찌 잊을까.안타까운 기억으로 가슴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누나와 함께 어느 날 초저녁, 어머니 마중을나갔던 사연부터 언급해야 한다.당시에 아버지는 늘 아파 계셨다. 그러면서 심한 통증이 밀려오면 고통을 호소하셨다. 상비약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집에서는 비상이 걸린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머니는 낮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먼 길 마다 않고 약을 지으러 떠나셨다. 그 일은 항상 어머니 몫이었다.
그날도 해거름 녘에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높아지자 어머니는 산길을 걸어 읍내로 약을 지으러 떠나셨다. 그런데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도 어머니가 돌아오질 않았다. 걱정이 된 누나와 나는 호롱불을 밝혀 들고서 무작정 마중을 나갔다. 걱정이 되어 뒤 돌아 볼 틈이 없었다.
읍내를 가려면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기차를 타면 산길을 걷지 않아도 되지만 기차는 낮에만 다니고 밤에는 다니지 않아 어머니는 산을 넘으셨던 것이다.
우리 마을은 뒷산이 험하고도 무서운 산이다. 도깨비불이 많이 켜지고 늑대도 출현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누나와 나는 그것을 의식할 틈도 없었다. 어서 어머니를 만나 모시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호롱불 하나를 들고 떨쳐나섰다.
그때 누나는 스무 살을 막 넘겼고 나는 무서울 것도 없는 열일곱 살이었다. 한데, 마중을 나갔다가 그만 들고 간 호롱불이 불어오는 골바람에 이내 꺼져버리고 말았다. 옛 시에도 '風窓燈易滅(풍창등이멸'이라고 바람 부는 창에 등불 꺼지기 쉽다는 말이 있지만 바람이 부니 호롱불이 맥없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 남매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대신에 넘어지고 구르면서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누나는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한데, 그랬던 누나가 얼마 뒤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병명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날 밤 놀라고 다친 것이 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 어찌 잊을까.
그날의 마중은 변변한 채비도 하지 않고 달랑 호롱불 하나만 들고 나선 게 문제였다. 산길은 좁기도 하려니와 여기저기 바윗돌이 솟아서 걷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불이 꺼져버리니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에 갇혀버리고 이내 장님신세가 되어 버렸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꾸만 헛디뎌지면서 공포심이 엄습했다. 그런데 웬 부엉이는 서럽게 울어대는가. 그 울음소리에 오금이 저려서 자꾸만 움츠려드는데 뒤에서는 무엇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목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머리끝이 뾰족 솟고 등에서 진땀이 났다. 그런 중에도 머릿속은 어서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밤길 무서운 것은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공포심은 몇 갑절 밀려온다. 공포심에 떨면서 여러 차례 허방에 빠지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는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넘어지면서 손에 든 호롱불이 내팽겨 쳐졌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상당한 거리를 걸어와 버렸고 되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3킬로 미터쯤 걸었을까. 느낌으로 보아 비탈길을 지나 풍치고개를 넘어서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 너무 무섭네"
"괜찮아. 마음을 단단히 먹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누나의 손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더는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 그럼 내 손 놓지 말로 꼭 잡고 따라와"
누나가 계속 용기를 돋아 주었다. 한데 그런 누나가 갑자기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날도 그랬지만 내게는 늘 용기를 불어넣어주던 누나였다.
그날은 누나가 뒷방에서 큰누나와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점심때가 가까워지니 어머니가 어서 밥을 지으라고 채근하셨단다. 그러니까 누나가,
“머리가 아픈데 엄니는 밥 독촉만 하시네”하더란다. 그렇다면 그때 이상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고 나서 누나는 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정황은 나는 집에 도착할 때가지 알지를 못했다. 학교를 파하여 집에 들어서니 집안분위기가 이상했다. 무언가 착 가라앉아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뒷방을 가봐라”
큰 누나 말에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뒷방으로 건너갔다. 거기에 작은 누나가 있었다. 방바닥에 반드시 누워 있었다. 낮에 그렇게 누워있을 누나가 아니다.
“누나”
외마디를 질렀다. 반응이 없었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급히 김치 국물을 먹였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눈을 감은 누나를 살펴보았다. 누나의 손등에는 며칠 전에 나와 함께 밤길을 걸으며 가시덤불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또한 옷에는 평상 시 대로 나비 브로치가 매달려있었다.
“ 뭐하는 거야. 어서 일어나. 누나”
옷소매를 붙잡고 흔들어 깨웠지만 한번 눈을 감은 누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얼굴은 백옥같이 새하얀 상태였다. 산발한 머리가 가슴을 찔렀다.
그럴게 누나는 떠나갔다. 작별인사도 없이. 그런 누나인데 내가 어찌 잊을 것인가. 더구나 공포의 밤길을 함께 걸었던 누나인데. 나는 지금도 늘 생각한다. 그날 밤길을 걷지만 않았더라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것이 꼭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간접적인 원인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죄책감에 나는 그날의 밤길을 잊을 수가 없다.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다. (199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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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9.05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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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1.23 1991 여수문학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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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찌 소군호 작성시간 20.07.07 누나 사연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프네요. 제3자인 나도 그런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했겠나 싶네요.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으니 말입니다. 저라도 밤길 트라우마가 생겼을 거 같습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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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07 그당시는 사춘기 시절로 감성이 예민할대로 예민한 때인데 누나와의 사별은 참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누나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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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9.23 2025 동부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