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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3

안스리움레드을 보며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4

안스리움레드를 보며

 

임병식

 

안스리움레드와 자주 눈이 마주친다. 가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붉은 잎 하나가 시선을 붙잡기 때문이다.

우리 집 화초 가운데 거실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안스리움레드뿐이다. 다른 화분들은 모두 베란다에 놓여 있다. 공기 정화 기능 때문인지, 아니면 독특한 생김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새 집 안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 붉은 부분을 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은 꽃잎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잎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가운데 꽃차례를 감싸며 꽃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물의 오랜 지혜가 보인다. 하나의 기관이 두 가지 일을 맡고 있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조금씩 바꾸어 온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문득 사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식당 앞에서 배달을 기다리던 오토바이 기사를 보았다. 그가 쓴 마스크가 눈길을 끌었다. 마스크 아래로 천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특이하네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목까지 가려주니까 편합니다.”

자세히 보니 마스크이면서 목도리였다. 하나가 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안스리움레드가 떠올랐다. 식물은 잎을 꽃의 역할로 확장하고, 사람은 물건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인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러나 자연의 지혜는 효율에서 멈추지 않는다.

열대우림의 어떤 식물들은 잎에 스스로 틈을 만든다.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아래까지 닿게 하기 위해서다. 더 넓게 차지하는 대신 조금 비워 두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삶도 그렇다. 사람들은 능력을 더하려 애쓰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우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내 몫을 조금 덜어내야 다른 이가 설 자리가 생긴다.

안스리움레드의 붉은 잎을 바라본다. 하나가 둘의 역할을 하는 지혜도 아름답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작은 여백을 남겨 타인에게 빛이 지나갈 길을 내어주는 일은 더욱 아름답다.

자연은 살아남는 법만 가르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법도 가르친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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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仁齊 김권섭 | 작성시간 26.06.13 "살아남는 법(경쟁과 효율)"만 강조되는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양보와 상생)"을
    안스리움의 붉은 잎을 통해 담담하게 들려주는 완성도 높은 치유의 글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잔잔한 울림을 남기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거실에 놓아둔 안스리움레드를 보면서 한참 사색에 잠겨보았습니다.
  • 작성자人山 이희순 | 작성시간 26.06.15 안스리움레드의 잎이 빨갛게 된 사연을 생각하다 포안세티아의 붉은 잎을 떠올려봅니다 잎이 꽃의 노래를 부르는 곳에 한 줄기 햇살이 오고 갔음을 감지합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안스리움레드를 보고 있으면 화초도 극단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고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잎으로 꽃을 대신하는 모습이 여간 기특하게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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