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의 경전
㉠ 천수천안'천수경'의 천수(千手)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약칭입니다. 즉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갖고 계신 관세음보살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관세음보살님은 천의 눈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보시고 천의 손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마침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자비의 어머니입니다. '천수경'은 바로 자비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Avalokitesvara)이 말씀하시는 경전이며, 관세음보살을 말하는 경전이며, 관세음보살에게 말하는 경전입니다.
㉡ 보문시현흔히 석가모니불을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四生慈父)'로 표현하는데 반해 관세음보살님은 자비로운 어머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님을 서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32응신(應身)'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투시기 때문에 '보문시현(普門示現)'이며 어떤 특정한 성(性)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 자비로운 어머니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투시기 때문에 성을 초월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머니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자비심을 표현하기에 더욱 호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을 마치 어머니가 강보에 싸인 갓난 자식을 돌보듯 연민한다(哀憫衆生如赤子)"라고 말합니다.
㉣ 관세음관자재관세음(觀世音)보살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svara의 한역입니다. 이 말은 관자제(觀自在), 광세음(光世音), 관세자제(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번역됩니다. 구마라습이 번역한 구역에서는 '관세음(觀世音)보살'로 번역됐지만 현장스님이 번역한 신역에서는 '관자재(觀自在)보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역은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현장스님이 번역한 신역본이기 때문에 '관자재보살'로 불립니다. 그렇지만 천수경에서는 구마라습 삼장이 번역한 관세음보살로 불리고 있습니다. 관자재(觀自在)란 '보는데 자유롭다'는 뜻이고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를 본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번역 가운데 세상의 소리 즉, 구원을 바라는 중생의 소리를 어느 곳, 어느 때고 자유롭게 본다는 뜻을 가진 구마라습 삼장의 번역이 의미상으로는 더 이해가 쉬운 번역이라 할 것입니다.
㉤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관세음 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32응신(應身)으로 나투시며 그 모습에서 자유롭습니다. 또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없애주는 14 가지의 힘(十四無畏力)을 가지고 계시며 네 가지의 불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을 갖추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세에는 이같은 신통력(神通力)과 위신력(威神力)으로 중생들을 보살피시고 사후에는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중생을 인도하시는 보살입니다. 이같은 관세음 보살님의 위신력은 찬탄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