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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있는기초교리

수계의 의의

작성자般若心|작성시간05.09.30|조회수23 목록 댓글 0
    ●수계의 의의● 우리는 종교적인 삶은 성스럽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오로지 그런 삶에만 전념하면서 일반 사람들을 지도하는 종교인을 성직자라고 특별히 존경한다. 우리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은, 자제하고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연설이나 생각을 성직자들은 특별한 규율에 따라 잘 절제함으로써 윤리적인 삶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결국 성직자인 승려와 속인은 자기를 규제하고 구속하는 여러 가지 규범들 중에서 어떠한 법에 의존하여 사느냐에 따라 서로 구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받기를 바라는 속인은 법률이라는 이름의 세속법에 의존하면서, 그나마 호시탐탐 그것마저도 벗어나갈 궁리를 하기 일쑤이다. 이에 대해 성직자는 세속법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일상적인 욕구를 규제하는 자기 종교의 규율을 따른다. 그 규율을 따르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툼과 갈등이 극소화된 이상적인 상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교적 규율을 전적으로 실천한다면, 적어도 그것을 실천하는 그 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도 달할 수 있을 것임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탐욕을 거의 본능적으로 타고난 인간이 한결같이 그 규율에 순응하길 기대할 수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무질서하고 방탕한 삶이 인간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규율이 제시되었다. 이런 한계에서는 성직자가 아닌 속인에게 최소한이라도 종교적 규율에 따르는 삶을 영위하도록 이끄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래서 종교에 입문하도록 권하고,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데, 이 의식을 수계(受戒)라고 한다. 이 수계에는 당연히 그 종교적 삶의 질에 따라 엄격함과 철저함의 단계가 있다. 수계란 흔히 ‘계율’이라고 불리는 종교적 규율을 자신의 행위 규범으로 실천하겠다는 선언이다. 불교에서는 재가 신자와 출가한 승려의 계율 내용이 다르고 소위 소승계와 대승계(또는 보살계)의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지켜야 할 조목의 양이나 세부 규정의 차이일뿐, 계율의 정신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따라서 계율 종목의 범위를 따지기에 앞서, 불교 특유의 계율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계율을 운운할 때면, 엄수하기 어려운 ‘엄격한 금지’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재가 신도의 계율은 사실 그 ‘엄격한 금지’와는 무관하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승려의 경우에나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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