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사 열전] 아프리카에 진짜 심장을 묻은 개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 |
리빙스턴 선교사님은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당시 자행되던 노예무역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선교사이자 탐험가입니다. 그의 삶과 전도 사역은 한마디로 "복음을 위해 길을 닦은 개척자의 삶"이었습니다. 1. 아프리카로 향한 발걸음과 사역의 전환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리빙스턴은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의학과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본래 그는 중국 선교를 꿈꿨으나 아편전쟁으로 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로버트 모팻(Robert Moffat)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많은 마을을 봅니다. 그곳에는 아직 아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말에 가슴이 뛴 리빙스턴은 1841년 남부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착 선교를 시작했으나, 그는 곧 안락한 선교 기지에 머무는 대신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미지의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영적 갈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2. 탐험이 곧 전도였던 개척 사역 리빙스턴은 흔히 ‘탐험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탐험은 오직 선교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내륙은 말라리아와 무서운 맹수들, 그리고 부족 간의 갈등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사자에게 물려 평생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맹수와 질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륙을 횡단하며 지도를 그린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 복음의 통로 개척: 후배 선교사들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 노예무역 근절: 아프리카인들을 비참하게 만들던 인간 사냥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는 합법적인 무역로가 열려야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부족마다 복음을 전했고,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과정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탐험가로서가 아니라, 선교사로서 이 길을 간다." 3. 영적 고독과 위대한 유산 (코람 데오의 삶) 사역의 과정은 눈물과 고독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내 메리 선교사는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과도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영국 사회가 그의 생사조차 몰라 기자 헨리 스탠리가 그를 찾아내어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 편히 쉬자"고 권유했을 때도,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사명을 완수하려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나의 예수님, 나의 왕이시여, 나의 생명을 다시 한번 당신께 드립니다. 저를 받아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써 주소서." 1873년 5월 1일, 리빙스턴은 잠비아의 한 작은 마을 골방에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 엎드린 예배자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 리빙스턴이 남긴 영적 메시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영국의 요청으로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심장만큼은 "내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프리카 땅에 묻혔습니다. 리빙스턴 선교사님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안주할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내는 ‘개척자의 신앙’, 그리고 어떤 외로움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무릎으로 전진했던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의 삶’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참된 전도자였습니다. 그의 생애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위대한 업적 이면에 우리가 일상에서 실제로 본받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삶의 태도와 성품’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
|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영적 발자취 4가지 |
① '작은 일'과 '일상'을 대하는 태도: 철저한 성실성 리빙스턴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10대 시절 온종일 방직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기계 위에 성경과 책을 얹어두고, 실을 잣는 매 순간 눈길을 돌려 한 문장씩 읽으며 독학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공장에서 키운 인내와 집중력이 없었다면, 아프리카의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 본받을 점: 우리는 흔히 '위대한 주의 일'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지금 내게 주어진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성실함을 통해 우리를 빚으십니다. ② '영혼'을 대하는 태도: 진심 어린 존중과 수평적 사랑 19세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미개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며 지배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달랐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을 '시혜(施惠)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형제'로 대했습니다. 그들의 문화를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언어와 풍습을 깊이 배웠으며, 부족의 추장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소통했습니다. 사자에게 물려 평생 한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자신을 구하려다 다친 원주민 대원들을 원망하기는커녕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았습니다. ✍️ 본받을 점: 영혼 구원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일방적으로 베푸는 지식이 아닙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낮은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복음의 문이 열립니다. ③ '고난'을 대하는 태도: 흔들리지 않는 사명 의식 그의 사역 길은 말라리아로 인한 고열, 맹수의 위협, 식수 부족으로 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영국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겪은 영적 고독감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을 때, 글래스고 대학교 학생들이 "그 모진 고난을 어떻게 견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리빙스턴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한 번도 '희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특권'이자 '영광'이었습니다. 제게는 늘 저를 붙드는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 본받을 점: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 하나만 붙들고 고난조차 '특권'으로 해석해 내는 강력한 사명 의식을 본받아야 합니다. ④ '마무리'를 대하는 태도: 기도로 끝을 맺는 삶 리빙스턴의 마지막 순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종말 중 하나로 꼽힙니다. 1873년 5월, 이질과 풍토병으로 온몸의 진이 빠진 그는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하인들이 텐트에 들어갔을 때, 그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지만, 그의 마지막 자세는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향해 중보기도를 올리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 본받을 점: 시작보다 어려운 것이 흐려지지 않고 끝을 맺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의 삶은 우리에게 "네 사명의 종착역에서 너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인가?"를 엄중하게 묻습니다. |
| 🦁 리빙스턴의 '스티그마(흔적)': 마보차 마을의 사자 습격 사건 (1843년) |
리빙스턴 선교사님의 생애에서 가장 아찔하면서도 그의 신앙 고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사자 공격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평생 남는 신체적 장애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의 선교 사역을 관통하는 위대한 영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 사건의 전말 1843년, 남부 아프리카의 마보차(Mabotsa) 마을에 식인 사자 떼가 나타나 가축을 물어가고 주민들을 위협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부족이 저주를 내려 사자를 보냈다"고 믿는 등 영적으로도 깊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주민들을 보호하고 영적 두려움을 깨뜨리기 위해 직접 총을 들고 사자 사냥에 나섰습니다. 사자 한 마리를 발견하고 총을 쏘아 맞혔지만, 치명상을 입지 않은 사자가 분노하여 덤벼들었습니다. "사자가 내 어깨를 물고 공중으로 치켜들었다가 땅으로 내팽개쳤다. 사자는 마치 사냥개가 쥐를 흔들듯 나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 순간 나는 일종의 몽롱한 상태에 빠졌는데, 신기하게도 두려움이나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리빙스턴의 일기 중) 절체절명의 순간, 신실한 원주민 대원이었던 메발웨(Mebalwe)가 사자를 향해 총을 쏘며 주위를 끌었습니다. 사자는 리빙스턴을 놓고 메발웨와 다른 원주민을 공격하다가, 먼저 맞았던 총탄의 상처 때문에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리빙스턴은 왼쪽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 사이 뼈)이 완전히 부서졌고, 평생 왼쪽 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하는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 의사들이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결정적 증거가 바로 이 어깨뼈의 사자 이빨 자국이었습니다.) |
| ✨ 이 사건이 남긴 세 가지 영적 흔적 |
①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리빙스턴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보호하심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는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은 후, 평생 그의 사역을 지탱한 유명한 믿음의 법칙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이 땅에서 결코 죽지 않는다(Immortal until my work is done)." 이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이후에도 두려움 없이 아프리카 내륙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② 고난의 흔적(스티그마)을 훈장으로 삼다 그는 평생 불구가 된 왼쪽 팔을 보며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팔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의 흔적, 즉 '스티그마(흔적)'로 여겼습니다.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고백했던 것처럼, 리빙스턴은 힘없이 처진 팔을 볼 때마다 자신이 아프리카 영혼들을 위해 부름받은 선교사임을 날마다 되새겼습니다. ③ 원주민과의 영적 '피의 언약'이 되다 당시 유럽 선교사들은 대개 안전한 기지에 머물렀으나, 리빙스턴은 원주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자 앞에 섰고, 원주민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선교사를 건져냈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리빙스턴을 '백인 지배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우리의 형제요 목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설교가 아닌, 사자의 이빨 앞에서 증명된 그의 사랑이 완고했던 부족들의 마음 문을 여는 열쇠가 된 것입니다. 리빙스턴 선교사님의 삶의 구석구석은 우리가 삶 속에서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화가 됩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아끼지 않고 양들을 위해 사자 앞에 섰던 리빙스턴처럼, 삶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복음의 흔적을 남기기를 소망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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