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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을

서로 발을 씻어주라

작성자동산지기|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서로 발을 씻어주라 /요13:1-14

예수님의 삶의 본질, 리더십의 본질은 "섬김"이었습니다.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그것은 자신의 죽음이나 십자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그것은 섬김이었습니다.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계시는 장면입니다.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러한 일을 행하신 것이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일회성 행사였는지 아니면 이것이 예수님의 삶 그 자체였는지 하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여기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한 것이 무슨 뜻일까요?예수님의 삶은 '섬김'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예수님의 제자들 발 씻기심은 단지 발을 씻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섬김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입니다. 마태복음 20:25-28절,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감당하실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하심이라."물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섬기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면 "구원"과 "섬김"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요?아닙니다예수님이 섬기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섬김을 받는 이들에게 생명을 바쳐서라도 구원하시고자 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결국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이었습니다.그리고 그 섬김의 절정이 "자기 생명을 주시는 데까지의 섬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숨 바치는 거창한 섬김만이 섬김이 아니요.발씻김의 섬김과 같이 작은 섬김도 그 어느 것 못지않은 섬김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셨습니다.교회의 일에 남들이 부담으로 여기고 회피하려고 하는 일에 내가 지원하는 일, 나보다 더한 봉사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작은 일에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 씀씀이.이같이 작은 실천에서 섬김의 정신은 시작이 됩니다.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유대인의 관습은 손님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사막의 먼지가 묻은 발을 씻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그런데 아무도 이 일을 행하는 자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요한복음 13장 3절을 보면 "저녁 먹는 중"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사실 발 씻기는 일은 식사가 시작되기 전 마무리가 되어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아마도 제자들 역시 발 씻는 일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찜찜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식사하시던 중 예수님이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왜 이렇게 하셨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요한복음 13장 15절에 나옵니다."내가 너희에게 행하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본이 되기 원하셨습니다.제자란 스승을 따르는 자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섬기 거라"하고 본을 보이셨는데, 그 분을 믿고 따른다는 우리들은 전혀 그렇게 섬길 생각이 없다면 과연 진정한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12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겸손이었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도리어 섬기러 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은 자기를 낮추어야 가능합니다. 높아진 상태에서는 섬길 수가 없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겸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렇게 하기는 실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낮아지신 겸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교만한 생각이 쳐들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겸손하려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 속에 겸손하기보다 대접을 받으려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섬김은 선택이 아니라 분부입니다.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영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만할 주님의 분부이라는 말입니다.요한복음 13장 13 - 14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우리 주인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셨으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섬김의 실천을 결심하는 것 뿐 입니다.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셨습니다.우리에게 쉼의 자리를 준비하시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멍에를 지워주셨습니다.쉼의 자리를 주심과 동시에 멍에를 주셨는데 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습니다.여기 '쉽고 가볍다'는 것은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주님의 자발적 섬김의 본을 따르면 멍에가 멍에로 느껴지질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주인 되신 그분이 종 된 우리를 말없이 섬겨 주시면서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거라' 하셨습니다.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섬김은 그 멍에가 너무 무겁습니다.

이 멍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발적인 섬김의 자세를 회복하는 길 뿐입니다.

여러분 가정불화, 사회생활에서의 불화, 교회생활에서의 부조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그것은 섬기고자 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발 씻어줄 생각은 없고 '네가 먼저 내 발을 좀 씻겨봐라'하며 섬길 생각은 없고 서로 섬길 받을 생 각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에 대하여 배려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 가능하고 서로 종노릇하면 '섬김'은 자연스런 일이 되는 법입니다.저는 어느 책에서 '우울증에서 벗어난 어떤 여인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수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여인이 갑자기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됩니다.

자녀도 없이 남편을 잃고 혼자된 여인은 깊은 우울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특히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여인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자신만 불행하다고 느끼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성탄절날 여기저기서 여인에게 초청이 왔습니다. 혼자 쓸쓸하게 보낼 이 여인을 배려한 이웃들의 초청이었지만 여인은 그 초청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와서 아무버스나 올라타고 종점까지 갑니다.그리고 그 버스종점 인근의 예배당에서 들리는 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예배당에 들어가 않았다가 깊이 잠이 들게 됩니다.얼마 후 눈을 떳을 때 남루한 옷을 입은 두 아이가 이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인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하고 물었고 아이들은 부모 없이 길거리를 헴다 오르간 소리에 예배당에 들어와 몸을 녹이다가 여인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아이들이 너무 딱해서 데리고 나가 맛있는 것을 사주고 아이들의 말벗이 되어 주었습니다그리고 자신이 지금은 비록 이렇게 불행한 일을 당하였으나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고 큰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어느덧 이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기 우울증, 자기 연면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내가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살게 하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우리 역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는데 그것이 생명을 바치는 최고 수준의 섬김도 아니요 가장 쉬운 것으로 본을 보이신 것이건만

우리는 발 씻기는 섬김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생이란 '섬김'을 통하여 자기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참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내가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길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하여만얻을 수가 있습니다.여러분 “섬김을 받는 기쁨”과 “섬기는 기쁨”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사람이 부자 되고 출세하여서 온 세상이 다 그를 알아주고 높여 주어도 그 기쁨은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잠깐이면 한계가 드러날 그 기쁨을 누리겠다고애를 쓰는 것입니다.주 예수 그리스도 께서 누리신 기쁨은 그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높임을 받은 기쁨이었나생각해 봅시다.예수님께서 누리신 기쁨은 발일 씻기심으로 얻으신 기쁨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얻으신기쁨이었습니다.이 기쁨의 비밀을 알게 된 베드로는 기꺼이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고 사도바울역시 자기 자신을복음의 제물로 드리실 원하였고 스데반은 돌무더기에 묻혀 죽어가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얼굴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두실 때 “서로 돕고 살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닙니다.피차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얼마나 각박하여만 갑니까?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처럼 섬김만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못하며 누구인들 어울리지 못하겠습니까?부디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더욱 낮아져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서로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는 모습으로 행하여 누구에게나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건축 현장에서 대리석을 다듬는 석공들이 있습니다.어떤 이는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냐고 투덜대고 어떤 이는 현장감독 눈치만 보고 요령피우고일하는 척만 하는데 한 석공은 찬양을 흥얼거리며 열심히 일하였습니다.다른 석공들이 그에게 ‘뭐가 좋아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핀잔하였습니다.

그는“나의 작은 힘으로 이 거룩한 성전의 돌을 다듬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고 행복하지 않겠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거룩하고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이 차고 넘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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