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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한국의 자원식물. 초가집 싸릿문(사립문)의 추억, 싸리[胡枝子]

작성자이영일|작성시간19.05.30|조회수603 목록 댓글 3

싸리[학명: Lespedeza bicolor Turcz.]는 콩과의 낙엽활엽관목이다. 소형(小荊), 싸리나무, 산싸리, 싸리꽃이라고도 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싸리(for. alba), 잎 뒷면에 털이 많이 나고 잿빛을 띤 흰색인 것을 털싸리(var. sericea)라고 한다. 좋은 밀원식물(蜜源植物)이며 겨울에는 땔감으로 쓴다. 잎은 사료, 줄기에서 벗긴 껍질은 섬유자원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새로 자란 줄기는 농촌에서 여러 가지 세공을 하는 데 쓰고 비도 만든다. 꽃말은 '생각, 사색, 상념'이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으로 싸리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두루 쓰였다. 일반 백성들의 집에 들어가려면 먼저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또 마당에 놓인 싸리비, 삼태기, 지게 위에 얹는 바소쿠리와 부엌에 두는 광주리, 키 등 거의 대부분이 싸리 제품이었다. 집을 지을 때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먼저 싸리로 엮고 그 위에 흙을 발랐다. 명절날의 윷놀이에 쓰는 윷짝 역시 싸리나무였다. 이처럼 일일이 그 쓰임을 다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군수물자로도 싸리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화살대는 남부지방의 경우 주로 이대를 사용하였으나, 대나무가 자라지 않은 북부지방에서는 싸리나무나 광대싸리로 만들었다. 또 장군이나 임금의 화살대 등 소량으로 특별 제작할 때는 대나무보다 싸리나무를 선호한 것 같다.용비어천가》에 보면 “태조는 초명적(哨鳴鏑)이라는 큰 화살을 잘 이용했다. 이는 싸리나무로 화살대를 만들고 학의 날개로 넓고 길게 깃을 달았으며, 사슴뿔로 화살촉을 만들었다. 촉이 무겁고 대가 긴 것이 보통 화살과 같지 않다”라고 했다. 또 싸리는 비중이 0.88이나 되어 단단하기로 보면 박달나무에 가깝고, 수분도 다른 나무에 비해 적게 포함되어 있다. 불이 잘 붙고 화력이 강해 군인들이 야외로 훈련을 나가서 취사를 할 때 싸리 없이는 자칫 생쌀을 먹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횃불이다. 단종 2년(1454)에 신주(神主)가 종묘에 나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내용 중에 “앞에는 고적대가 있고, 이어서 싸리횃불 1백 개가 좌우로 나뉘어서 행진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그 외에도《조선왕조실록》에는 야간행사에 싸리횃불을 이용한 기록들이 여기저기 나온다. 흔히 TV 역사극에서 기름을 묻힌 솜뭉치 횃불이 등장하는데, 그렇게 함부로 쓸 만큼 기름이 풍족하지는 않았다. 실제는 대부분 싸리횃불이었을 터이다.

싸리나무의 여러 쓰임 중 가장 황당한 이야기는 싸리 기둥이다. 마곡사 대웅보전, 김천 직지사 일주문, 장수 신광사 명부전, 신륵사 극락전, 송광사 구시(구유) 등 아름드리가 넘는 이런 나무들이 모두 싸리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아무리 크게 자라도 사람 키 남짓한 싸리나무이지만 수백 수천 년 전에는 혹시 아름드리로 자란 것은 아닐까? 의심 많은 현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식물학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가능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의 작은 표본을 수집하여 현미경 검사를 해보니, 마곡사는 소나무였고, 나머지는 모두 느티나무였다. 싸리 기둥으로 알려진 이유는 여럿이 있겠으나 옛 선비들의 기록이 잘못된 것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지봉유설》에 보면 “종루는 싸리나무로 들보를 만들었는데, 싸리나무도 이렇게 큰 것이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싸리나무의 한자표기를 뉴(杻), 형(荊), 고(楛)라고 쓰는데, 이를 광대싸리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부 한학자들이 광대싸리를 아름드리나무라고 기록하면서 혼란을 부추겼다. 광대싸리는 원래 작은 나무이나 오래되면 키 10여 미터, 지름이 20센티미터 정도에 이르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러나 싸리는 물론 광대싸리도 결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지는 않는다. 또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도 아니다.

싸리 회초리에 관한 교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숙종 임금 때 암행어사로서 많은 일화를 남진 유명한 박문수(1691~1756) 어사가 젊었을 때였다. 영남 어사의 임무를 띠고 방방곡곡을 누비며 민생을 살피고 탐관오리를 숙청하는 등 바쁜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을마다 마을마다 길이 있고 동네가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며 민생을 살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을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를 행해서 길을 떠났는데, 길을 잘못 들어 밤이 되었다.

한참을 걷다가 깊은 산 속 조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박 어사는 산중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인데 하룻밤 자고 갈 것을 간청했다. 이 집에는 남편이 출타 중이어서 외간 남자를 재울 수 없으니 딴 곳으로 가보라고 거절을 했다. 박 어사는 이 외진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으니 제발 아무데라도 재워 달라고 애원하였다. 여인은, 자기 집에는 잠 잘 곳은 오직 그 방 한 칸뿐이어서 도저히 재워줄 수는 없지만 사정이 딱해서 재워 주는 것이니 박 어사는 윗목에서 자고 여인은 아랫목에서 잤는데 절대로 선비의 도리를 지켜서 딴 마음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더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에 비할까 인간 세상에는 이렇게 아리땁고 예쁜 여자는 없을 정도로 곱고 어여쁜 미인이었다.

박 어사는 너무나 예쁜 그 여자의 자태에 반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집을 떠나 온지도 벌써 수십 개월이 넘었으며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한 지도 너무나 오래인데, 오늘 이렇게 젊고 어여쁜 여인과 아무도 없는 외진 산골에서 단둘이 한방에서 자게 되니 박 어사의 마음속에는 욕정이 막 끓어올랐다. 그래서 박 어사는 잠결에 돌아눕는 척하면서 다리를 그 여인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어사가 잠을 깨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다리를 살짝 내려놓았다. 한참 후에 박 어사는 다시 다리를 잠꼬대 인척하면서 다시 얹었다. 그랬더니 여인은 "먼 길을 오느라 손님이 무척 고단한 모양인지 잠버릇이 나쁘군."하면서 다시 어사의 다리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자는 척하고 수작을 부리던 어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음음... 하면서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팔을 펴서 여인을 껴안았다. 그러자 여인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추상같이 엄한 어조로 호령을 하였다.

"여보시요 선비님, 일어나 앉으시오. 남녀가 유별해서 한 방에 재워 줄 구 없는 것을, 사정이 딱해서 재워 주면 그것을 고맙다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여서 잘 자고 갈 것이지, 선비의 체통과 삼강오륜을 져버리고 유부녀를 넘보는 것은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니 냉큼 밖에 나가 쌀 회초리를 해오시오!" 라고 하였다.

여인은 어사에게 종아리를 걷으라고 엄명하였다. 어사는 무엇엔가 억눌리는 듯한 위엄에 그만 종아리를 걷고 여인 앞에 섰다. 여인은 박 어사의 종아리를 세차게 쳤다. 어사의 종아리에서는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한참 만에 매를 거둔 여인은 농문을 열고 명주를 한 필 꺼내서 그것을 찢어 어사의 피나는 다리에 감아 주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 피는 모두 부모에게 받은 귀한 것이니 한 방울도 함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피 묻은 이 명주는 함부로 버리지 말고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앞으로도 또 이와 같은 사악한 사념에 사로잡힐 때 자기를 바로 잡는 교훈의 신표로 하시요." 라고 하였다. 다음날 새벽 박 어사는 여인이 일어나기 전에 도망치다시피 하여 그 집을 빠져 나가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있은지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박 어사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잘 만한 적당한 집을 찾아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그 집에도 남자는 장사차 출타하고 여자 혼자만이 있는 집이었다. 여인은 반갑게 어사를 방으로 맞아들여 저녁상을 잘 차려 와서 저녁밥을 드는 어사 옆에 앉아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식사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상을 물리자 윗방에 어사의 자리를 마련하고 잘 자라는 인사를 여러 번하고 방문을 닫았다. 어사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피곤해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가만히 방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속옷 바람의 주인 여자가 어사의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 드는 것이 아닌가. 어사는 몇 달 전 싸리 회초리로 매맞은 생각이 불현듯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흐트러진 주인 여자를 보고 호령을 하였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이게 무슨 짓이요! 오륜을 저버린 이 파렴치한 행동은 도저히 용서 못할 일이니. 냉큼 밖에 나가 싸리 회초리를 꺽어 오시요." 하고 위엄을 갖추었다. 여인은 어사의 위엄에 기가 질려 시키는 대로 회초리를 만들어왔다. 어사는 여인의 종아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때였다. 다락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장정이 손에 시퍼런 도끼를 들고 방으로 뛰어 내려와서, 방바닥에 엎드려 어사에게 말을 했다.

"손님, 저는 저년의 남편입니다. 소문에 저년의 행실이 좋이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위를 확인해서 이 도끼로 여절을 내려고 며칠째 다락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오늘 하마터면 귀한 분을 해칠 뻔했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박 어사는 온 몸이 오싹했다. 전에 싸리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훈계를 받지 않았던들 오늘 이런 난을 피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그 산속의 여인이 더욱 고맙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이야기로는 그 여인이 박 어사의 조상이며, 훗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몸소 사람으로 나타나 교훈을 준 것이라고 한다.“

산과 들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 2∼3m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3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다. 턱잎은 가늘고 길며 짙은 갈색이고 길이 약 5mm이다. 작은잎은 달걀 모양이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겉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 눈털이 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7∼8월에 붉은 자줏빛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은 얕게 4개로 갈라지고 뒤쪽의 1개는 다시 2개로 갈라지며 끝이 뾰족하다. 꼬투리는 넓은 타원형이고 끝이 부리처럼 길며 1개의 종자가 들어 있고 10월에 익는다. 종자는 신장 모양이며 갈색 바탕에 짙은 점이 있다. 번식은 종자나 포기나누기로 한다.

생약명(生藥銘)은 호지자(胡枝子), 형조(荊條)이다. 참싸리(단서호지자, 短序胡枝子)와 같은 약재다. 뿌리와 씨앗은 가을에, 줄기와 가지와 잎은 봄~여름에 채취하여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말려서 쓴다. 고혈압, 신장병에 말린 것 10g을 물 700㎖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기력 없는 데 씨앗 말린 것을 가루 내어 먹는다. 밑동을 태워서 나오는 기름을 습진에 바른다. 어린 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씨앗을 가루 내어 수제비나 떡을 만들어 먹는다.

[참고문헌:《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우리 나라의 나무 세계 1(박상진.김영사)》,《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생명과학 사진작가)][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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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영석 | 작성시간 20.11.06 아름답게 담으셨습니다.
    오늘은 약한 비가 지나간답니다.
    외출 하실 때 우산을 지참하라는 일기예보입니다.
    주변이 완연한 가을 색깔로 물들어 무르익고 있습니다.
    운전하는 길에 가로수들이 노랗고 빨깧고...화려한 꽃길을 지나는 느낌으로 아름다웠습니다.
  • 작성자이영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06 고봉산님
    수백년에 걸처 우리조상들이 생활용구로 쓰든 재료가 싸리나무였다는 사실이 감동을 줍니다 저는 언듯 빗자루만 생각났는데 싸립문 삼태기 키 광주리 바소쿠리 등둥 쓰임새가 참 많았군요 오늘도 멋진공부였습니다
    땡큐~
  • 작성자이영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07 무원 김성희 선생님
    싸리에 얽힌 전설이 있었군요.
    반전이 있어서 참 흥미롭습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흔히 보고 자란 싸리라 무척 반갑고,
    바소쿠리, 광주리,싸리비, 사립문~~~등등 추억의 물건들이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소환되네요 .
    낙상홍 꽃부터 열매까지 자세히 알게 되어 너무 좋아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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