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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궁금하다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질문

작성자그리운소리|작성시간17.08.29|조회수784 목록 댓글 0

[질문]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부고장이 날아옵니다. 요즘은 카톡이나 문자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단 문자를 받으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위로를 보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문장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입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교회 장례식에서 조차도 아무 생각이 없이 이런 말을 쓰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명복이라는 뜻이 저승에서 복 받길 원한다는 뜻인데 크리스천으로서는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 해 주는 것이 좋을까요.?


[그리운소리]


참으로 질문 한번 잘 해 주셨습니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아들은 깨닫는 지혜가 남다르나 봅니다.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아들의 글을 읽고 서야 " 아차 !! 진직 다뤄야 될 것을 미쳐 못 다뤘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자의 글을 읽어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죽은 자가 하나님 기준에 맞게 살았으면 천국에 갔을텐데-이땅에서 인간이 복을 빈다고 더 큰 복을 받을 리도 없고- 하나님 기준에 맞지 않게 살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고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갔다면- 이 땅에 있는 인간이 아무리 복을 빌어도 지옥에서 누릴 복은 없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왜 생각없이 이런 말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귀나 말은 종교차원을 떠나서 아주 보편화돼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조차도 아무 분석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바로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명복이란 한문으로 (어두울) ()으로 " [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언어는 기독교 신앙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죽어 생명책에 이름이 없으면- 백보좌 심판 바로 직전까지 임시 지옥(음부)에서 기다렸다가 본 지옥으로 가서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고-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성도들 역시 이 세상을 떠난다면- 임시 천국(낙원)에서 기다렸다가  본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토록 행복을 만끽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통 아니면 행복 둘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 간 사람에게나-천국에 간 성도들에게나 지상에서의 인간들이 빈 복이나 저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은 그런 글귀나 언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는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천국을 갔는지- 지옥을 갔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교회 출석만 잘 하면- 직분맡아 충성스럽게 직분감당만 잘 하면- 목사 말에 순종만 잘 하면- 전도-봉사-구제-헌신-선교- 등 주의 일만 하다 죽으면 무조건 천국간 것으로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구든지 교회활동 100% 잘 해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성경대로 살지 아니하면-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십일조-안식일 성수- 아무리 잘 해도 정신적변화와 행동적변화를 일음킬 수 있는 회개가 없고- 성경대로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일평생 목회를 하고- 일평생 충성을 하고-금식-기도-철야 등을 많이 해도 구원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다닌 사람이 죽었다해서 성경원리에 맞는 말을 해 주고- 무교회 주의라 해서 비성경적인 말을 해 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단 이 땅을 떠나버리면 그 사람을 위해 해 줄 것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열왕기상하까지 다 찾아 보았지만- 성경 어디에도 -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해 준 말이란 단 한마디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신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산 제사 드려야지- 죽은 다음에 효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살아생전 효자 없어도 죽어 효자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 살아 생전에 효를 다 행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효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죽은 자를 위한 말은 하지 말고- 유가족들을 위해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도록 해야 합니다.  남은 유가족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기독교인들이나 불신자들은 인상을 찌푸릴 것입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에게는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때 불신자 유가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줘야하고- 유가족이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을 들어서 위로의 말씀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장례식을 보면 그 장례식 안에서도 신의 영역을 뛰어넘는 말들이 많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해 준답시고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 세상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 품에 가서 편히 쉬게 되었으니 슬퍼하지 마십시요. 고통이 없는 곳에서--- 저 황금길을 걸으며- 천사들과 함께 생명수 강가를 거늘며 찬송하고 있으니 너무 슬퍼 하지 마십시요. 당신의 OOO는 천국 갔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독교인들이 " 당신의 아내는-부모는 -남편은- 자녀는- 천국갔습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요. 울지 마십시요.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요 " 이 말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이 더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영혼이 천국을 갔는지 지옥을 갔는지 사람이 어찌 압니까!  목사가 천국 갔다해서 그 영혼이 천국갑니까. 천국갔다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지옥을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불신자들이 유가족을 위한 말이나- 기독교이들이 유가족을 위한 말이나 -다 한결같이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현제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런 말을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 영혼들을 위해서 - 그 무슨 말을 해 주었다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 유가족을 위해서도 " 당신 OOO는 천국 갔으니 슬퍼하지 마십시요. 울지 마십시요 " 라고 한 말은 없습니다. " 왜 없느냐?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 했는데..." 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예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신약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표현할때에는 " 자는 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죽어 지옥을 간 사람들에게는 "죽은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 세상을 떠난 사람을 [자는 자]라고 표현하고 14절에 가서는 " 예수 안에서 자는 자" 라고 자체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잠이 든 사람은 깨 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충만했고- 삼천층까지 올라갔다가 온 신령한 사람으로 성령과 교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혼이 천국에 가 있는지 없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 그 사람들도 죽은 자의 유가족이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미래 소망적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 사도바울같은 주의 종이 있다고 보십니까. 눈을 씻고 봐도 사도바울같이 성령이 충만하여- 성경을 기록할 만큼 하나님께서 같이 한 목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있는 천국 공무원들이 무엇을 안다고 그 영혼이 천구갔는지 안 갔는지 어찌 압니까. 하나님께서 쓰지 않고 있는 버림당한 목자들이 죽은 자의 궁극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그런 거짓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거짓 목자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섰을때- 백보좌 심판에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을 위해 성경에도 없는 거짓말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천국 가지도 않았는데- "천국갔으니 안심하라"고 하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죄를 지은 것이고... " 이 사람은 지옥갔을 것이다"고 했는데 그 영혼이 천국에 가 있다면- 이 역시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사람 영혼의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 영혼의 궁극을 놓고 쉽게 결정지어 말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 자리에 앉은 교만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성경 원리에 따라 유가족을 위로하려면 

"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떠난 영혼에 대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유가족들만이라도 하나님 잘 섬겨 천국 가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해야 성경적입니다.


유기족들을 위로하는데 필요한 성구들입니다. 허무한 인생을 들어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적이며- 하나의 전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25:6-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89:47-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90: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103:15-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4: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벧후2: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103:15-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29:6-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찌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벧전1: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4:19-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2017년 8월 29일 (화)---- 그리운소리



[ 사랑하는 큰 아들과 셋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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