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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강의

수신제가

작성자木魚|작성시간21.10.29|조회수158 목록 댓글 0

노자의 知止와 공자(대학)의 知止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같은데, 노자의 사상을 공자가 받아서 현실에 적용하면서 생겨난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둘은 한가지다. 노자의 知止는 名亦旣有(이미 세상에 존재하게된것, 이미 한생각이 발한것) 하였으면 果而不得已하고 그쳐서 비유컨데 작은 물줄기가 바다로 돌아오듯 근본(根, 本, 大, 無, 無極, 無物, 無名, 嬰兒, 一, 이희미, 홀황, 玄, 玄同, 현빈, 混, 樸, 谷神, 長生, 中, 沖 등으로 표현됨)으로 돌아와야 한다한것이고 공자(대학)의 知止는 "꾀꼬리가 날다가 자기 앉을 나뭇가지를 선택하여 앉듯이" 라는 비유법으로 봐도 노자의 근본에서 상당히 밖(有名의 세계, 존재의 영역, 표현된 영역)으로 나온후의 知止를 말하고 있다. 스승 노자의 知止를 제자 공자가 받아 공자 특유의 심미적 스타일로 知止를 사용한것이라.

그래서 당연히 작금에 식자들은 대학의 知止를 해석하기 힘들어한다. 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통쾌하지가 않은것이라.

노자의 知止는 근본적, 공자(대학)의 知止는 현실지향적이다. 노자철학의 핵심은 歸根, 공자철학 핵심은 중(時中)이다. 중용과 주역을 통해 공자는 時中사상을 밝혔다. 노자의 근본주의적 知止는 공자 보기에 생활인의 知止로 時中(응용)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공자 말씀대로 "사람이, 그쳐야 할곳에 그치는 저 꾀꼬리만 못해서야 되겠느냐" 한것처럼 현실속에서 그쳐야할곳에 그치고, 자리할곳에 자리하는 중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대학의 지지이다. 공자에게 중용(時中)과 知止는 같은뜻의 다른표현이다. 노자의 守中이 공자에게 時中이다. 노자의 守中은 입을다물어 공이되어 천지와 하나됨이나 공자의 時中은 표현의 영역의 中에 더가깝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서책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는 해묵은 화두가 있다.

공인을 평할때 저사람 수신제가 되었니 안되었니 말을하는데 일단 가족을 잘 부양하고 살아왔으면 일차적 수신제가는 된것이라.

보통 수신제가 라고하면 욕안먹고 무난하게 살아낸것을 생각하는데 그건 태평성대 중에서도 운이좋아 얻게된 수신제가이다.

난세에 수신제가 할수있는자 몇없다. 만학천봉이라 구비구비 사연없고 풍파없는사람 가정이 없으니 실상에 맞게 납득해야 한다.

수신제가의 출처인 大學 서책 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일언분사 일인정국 이라는 구절이다.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 一言僨事 一人定國

한집이 인자하면 나라가 인자하게되고 한집이 양보하면 나라는 양보하게되며 한사람이 탐욕으로 패악질하면 나라는 난잡해진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이러하니 이를일러 한마디 말이 큰일을 그르치게하고 한사람의 행동이 나라 전체를 규정한다 라고 한다.

 

이구절이 대학의 핵심이다. 수신 평천하의 동시성이 여기에 있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수신 평천하를 요하는 것이라.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은 이대목을 납득한 연후에 가능하다. 팔조목이란 격물치지로부터 수신제가 평천하까지 의식이 활짝 열려가는 순서를 말한것이라. 八條目 ;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팔조목의 순서는 逆으로 들어간다. 일반이 아는것과는 정반대다. 外界에 대한 관심은 內界의 격물치지로 치달아 들어간다.

치국과 천하에 대한 걱정이 생기고 관심이 깊어지면서 격물치지에 이르게된다. 평천하에 대한 관심을 노자는 대환(大患)이라 했고 주역은 우환(憂患)이라고 했다. 作易者 其有憂患乎(계사하전7장) 버려진 쓰레기 하나 줍는것이 평천하에 해당하고 거리의 사소한행동에 공익을 먼저생각하는것은 치국에 해당하며 동시에 이는 修身의 실행이라 함이다.

 

고통받는 사람이나 동물을 구호하고자 함이 격물치지 이후에나 나오는 행동이란 말인가? 그것의 정반대다. 외계에 대한 慈悲(연민의 마음으로 사랑이 샘솟는것)가 깊어지면 이윽고 격물치지로 들어가고 격물치지는 다시 평천하에까지 물결치듯 파급되는 것이라. 대학의 팔조목은 분명, 明明德 하고자 하는자가 평천하로부터 逆으로 들어가서 격물치지에 이르고 다시 순으로 나와서 평천하에 이른다. 대학의 평천하는 천하를 평정한다는뜻이 아니다. 고지욕명명덕어천하 라고 했는데 자기의 명덕을 천하에 자랑하자는것도 아니고 천하(세계)가 본래 소유하는 명덕을 밝히고자 함을 말한다. 나의 명덕이 천하의 명덕이다. 그러니 이웃에 報怨以德 함이 평천하다. 그래서 親民이 삼강령의 하나이다. 평천하가 수신이고 수신이 평천하다. 其機如此함이 또한 역학의 이치이다. 수신이 바르면 平天下고 아니면 仄天下다.

부잣집 샌님 온실화초로 얌전히 살아낸것이 수신제가인가? 살면서 욕할수도 있고 싸울수도 있고 이혼할수도 있는데 다만 나라와 천하에 대한 걱정, 대환(大患)을 품고사는, 나라 천지에 대한 우환의식이 있는 자가 수신 평천하의 사람이다. 숲파괴 바다오염에 대환(大患), 세금 도적놈에 분노함, 눈오면 굶주리고 올무에 우는 산짐승 연민  이러한 어진마음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다.

 

내가 正하면 나라가 正하고 천하는 평화다. 내가 오기내고 탐욕내고 패악지르면 나라가 힘들고 천하는 번뇌로가득찬다.

본시 역학이란 大易이 있고 小易이 있으니 사주 용신찾는것은 소역이고 치국 평천하의 용신찾는것은 대역이라. 둘다 중요한일이다. 내 한마디 말이 나라와 천하를 멍들게하고 나의 正히박힌 행동이 나라를 반석에 올리는 이치가 대역의 기본이다.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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