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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강의

야자시와 정자시 판독

작성자갑진|작성시간23.06.18|조회수376 목록 댓글 0

조선시대의 국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했던 야자시 이야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사이며 문헌 중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기록입니다. 여기에 역법에 관한 기록 중 야자시를 측정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선 시대에는 역법의 시간 측정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다음은 야자시로 표기가 된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세종 19년(1437년) 기록에 ‘성구환’을 사용하는 법은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야반 자정을 시초로 하여

(用星晷環之術。 初年冬至初日晨前 夜半子正 爲始...)...

 

▶ 야반을 자정으로 표기하고 있다[야반=자정]

 

야자시의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영조 즉위년(1724년) "황해감사가 장계하기를....., 11월 22일 야자시에 뇌성이 크게 울렸다.

(黃海監司狀啓... 十一月二十二日, 夜子時 , 雷聲大作)“

 

▶ 12월22일 야자시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  "야자시에 뇌성이 크게 울렸다"라는 원문에서  번역자들이 "야자시"를 "자시"라고 잘못 번역함.[이와같이 번역가들의 야자시에 대한 무지에서 혼란이 오게 된다]

▶  12월 4일에 조선실록을 보면  "11월 22일 야자시에 대한 장계"가 기록이 되어 있다 

▶  그래서 당일 11월 22일 실록을 찾아보니까 1724년 11월 22일의 일진은 임술일이다

▶  11월22일의 일진은 임술이 되고 그 다음 날 11월 23일의 일진은 계해일이다

 

 

설명

 

본문 글 황해감사의 야자시와 관련이 된 글의 일진(日辰)을 보면, 1724년 11월 22일 야자시는 임술(壬戌)일 입니다.  1724년 11월 23일은 계해(癸亥)일이고요. 그런데 야자시이므로 23시에서 24시까지를 말합니다

11월 22일의 23시에서 24시전까지의 일진을 뽑아 보면

그 시간대의 일진이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는지 확인이 가능한 겁니다

즉 정자시를 사용했다면 23시부터는 그 다음 일진에 소속이 되는 것이니까

계해일진이 나와야 하고

만약 아쟈시를 사용했다면 임술일진이 나와야 정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실제로 11월 22일 야자시를 임술(壬戌)일로 기록했습니다.

즉 야자시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사폰 만세력에서 1724년 11월 22일 야자시(23시에서24시)를 뽑아보면 다음 아래와 같습니다.

일진이 임술이 나오죠.

 

 

이러한 기록은 실록을 찾아 보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724년 11월22일 야자시(23시~24시)는 임술일이 됩니다 (조선왕조는 음력 사용함)

그 다음 일진인 계해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정자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셈입니다

 

만약 정자시로 뽑게 되면 다음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만세력으로 11월 22일 야자시(23시에서 24시)를 정자시로 바꾸어서 뽑아보면 계해일로 나오게 됩니다. 곧 정자시에서는 23시부터 그 다음 일주로 넘어간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므로 임술(壬戌)일(日)이 아니라 그 다음 일인 계해(癸亥)일(日)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아래 자료 참고하세요

 

 

그렇게 되면 조선왕조실록에서는 11월 22일 야자시를 임술일로 기록이 분명한데 정자시로 뽑은 계해일이 되면 조선왕조실록과 날짜가 완전히 틀려지므로 거짓된 자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11월22일 야자시는 임술일이지 계해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록에 의하면 조선관료들은 일상적으로 23시에서 24시 전까지를 야자시로 사용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야자시와 정자시 판독

겁재일간정인편재六神편인일간편관상관
天干
地支
식신편인정재정관六神겁재식신식신편재
급각살
단교관살
곡각살
효신살


곡각살신살급각암록지살 암록

야자시(인묘 진사공망)

정자시(인묘 진사공망)

1 야자시 판독

 

사람이 요절 운명이라면 원국에 표기가 되어야 합니다. 일단 신축(辛丑)일주는 자좌(自座) 동주고(同柱庫)이죠. 일간입고처를 가진 팔자는 감금, 수감, 입원, 사망 등의 갇히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축(辛丑)은 곡각살(曲脚殺)이고 효신(梟神)살이 되므로 뼈가 뿌러지는 경험등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사형(寅巳形)이므로 정관과 정재가 모두 공망을 맞은 겁니다. 재관(財官)이 공망이니 그 운명이 장구(長久)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신사(辛巳)대운에는 천간의 신금(辛金)이 년간의 을목(乙木) 재성을 을신충(乙辛沖)하고 지지에서는 인사형(寅巳形)이 중복이 됩니다. 즉 사화(巳火) 2개가 인목(寅木) 재성을 형극(刑剋)하는 것이므로 천간과 지지로 모두 재성(財星)을 충극하는데 반드시 큰 손재수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손재수는 사고로 다쳐서 입원하는 치료비용이 될 수 있고 또는 남을 상해하여 보상해주는 손실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비용으로 나오던지 손재수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성을 천극지충하면 보통 목숨 건강상의 위태로움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성은 수명 건강을 상징하는 십신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세운에서 미토(未土)대운 혹은 술토(戌土)대운이 지나가는 세운을 만나게 되면 일지 축토(丑土)가 동(動)하므로 일간 입고가 진행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재성(財星)피상(被傷)이라 손재수인데 일간이 신축(辛丑)으로 동주고(同柱庫)의 상(像)이라 재성피상은 건강의 악화(惡化) 혹은 수명의 약화(弱化)로 일간입고의 상으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간입고시에는 사망이 될 수 있습니다.

 

2 주자시 판독

 

이 명조는 인목(寅木)에서 을목(乙木)의 목오행이 투간하였으므로 상관격인데 무토 칠살을 만난 것이므로 상관제살(傷官制殺)격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격국이 탄탄하고 지지에 입고처도 없으며 인인(寅寅)의 동합(同合)으로 인사형(寅巳形)은 풀리며 인묘(寅卯)가 식상관인데 식상관이 중한 상관의 경우는 상관이 공망이 되면 좋습니다. 사화 공망도 길합니다 왜냐하면 화생토하면 재생살인데 재생살하는 화를 공망을 치는 것이니 재생살이 꺾일 수 있습니다. 운로(運路)가 좋다면 길명(吉命)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근황

 

신사(辛巳) 대운의 어느 해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몸이 좀 피곤해서 동네 병원에 주사 한 대 맞으러 가다가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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