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 乙 辛 壬 坤33 -721005 해월을목
未 巳 亥 子
亥字(해자)가 寅(인)을 合來(합래)해와선 鬼門(귀문)이 형성 되어선 幻覺(환각)狀態(상태)에 있게된다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역사의 아버지라 일컫는 옛 중국 전한(前漢) 때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BC 145~68)》의 <오제본기(五帝本記)> 조에 의하면 아득히 먼 4,600여 년 전인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동해의 한가운데에 도색산(度索山)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도목(大桃木: 큰 복숭아나무)이 있어 이 대도목이 천하를 덮어 신과 사람을(神人) 지배하였다는 신화가 보이는데 이 대도목 이야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숭아나무의 신성성(神性性)의 근원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도색산(度索山) 대도목(大桃木) 신화는 이러한다.
…동해의 가운데에 도색산(度索山: 혹 도삭산(度朔山))이 있는데 거기에 매우 큰 복숭아나무가 있어 삼천리를 덮고도 남는데 그 늘어진 가지의 동북쪽을 귀문(鬼門)이라 하였다. 이 귀문으로는 모든 귀신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문 위에는 신다(神茶)와 울뢰(鬱?)라는 두 신인(神人)이 있어 천제(天帝)의 명에 의해 귀문을 지키고 있으며 드나드는 모든 귀신들을 관장하였다. 만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 있으면 위색(葦索)이라는 새끼로 묶어 복숭아나무 활로 쏘아 호랑이로 하여금 잡아먹게 하였다. 천제께서는 이것으로 인간을 위하는 법을 세워 세모(歲暮)의 추나(追儺: 귀신을 쫓는 일)가 끝나면 대도인(大桃人: 복숭아나무로 만든 사람모양)을 문 앞에 세우고 문 입구에는 신다와 울뢰 두 신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위색(아마도 금줄)을 늘어뜨려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
장생불사의 선녀(仙女)들만이 산다고 하는 서역(西域)의 어디인가에 있다는 요지궁(瑤池宮)에는 사철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있는 신선의 나라라고 한다. 여기에는 서왕모(西王母)라는 아름다운 선녀가 왕인데 항시 세 마리의 청조(靑鳥)가 옆에 붙어있어 불수감(佛手柑)과 천도(天桃)를 받힌다 하며 이 요지궁의 복숭아나무는 삼천년 만에 꽃이 피고 삼천년 만에 한 열매가 열리며 이것을 하나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고 한다. 그런데 서왕모가 이천백여 년 전 한무제(漢武帝)가 장수(長壽)할 것을 원함을 알고 요지궁(瑤池宮)의 천도 일곱 개를 보내 주었다는 전설도 있으며, 당시의 정치가요 변설과 해학으로 이름 높았던 동방삭(東方朔: 속칭 삼천갑자 동방삭)도 요지궁에 몰래 숨어들어가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십팔 만년) 살았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속설로 전해오고 있다.
요지궁은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곤륜산 어느 높은 봉우리 위에 있다하며 궁의 주위는 경수(輕水)라는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새털 하나도 가라앉는다 하므로 신선들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선계(仙界)의 별천지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周)나라의 목왕과 한(漢)나라의 재주꾼 동방삭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 보았다는 이야기가 없다. 가상의 세계요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최고의 욕망이 담겨진 이야기일 것이다.
옛 동진(東晋) 때 호남성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사는 한 가난한 어부가 하루는 완강(沅江)의 기슭을 따라 고기를 잡고 있는데 강의 위쪽으로부터 복숭아 꽃잎이 흘러내려 옴으로 거슬러 얼마를 올라가니 비좁은 협곡에서 물줄기가 끝나면서 큰 바위가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데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 갈만 한 구멍 하나가 있어 간신히 들어가 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별천지가 나타나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하였으며, 논밭이 정연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밝고 온화한 얼굴이고 즐거운 표정들이며 외계에서 온 이 어부를 친절하고 반갑게 서로 초대하여 진수성찬으로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이곳에는 미움도 욕심도 성냄도 싸움도 없고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없으며 네 것 내 것을 다투는 전쟁과 살륙도 없는 평화만이 있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옛날 진시황(秦始皇)의 악독한 정치에 견디다 못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 무릉 도원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라고 하니 진나라가 망한지 600여년이 흘러버린 세월도 모르는 채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니 신선일시 분명하였다. 어부가 몇일을 잘 쉬고 나서 돌아간다고 하니 섭섭함을 금지 못하며 다투어 금은보화를 많이 주면서 세상에 나가거든 이런 곳에 우리가 살고 있드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드라는 것이다. 어부가 그러마고 약속을 단단히 하고 그 바위구멍의 관문을 빠져 나오면서 나중을 위하여 곳곳에 표시를 하고 돌아왔는데 세월이 얼마간 지난 뒤 다시 그 무릉 도원경을 찾으려고 완강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아무리 찾아보아도 흔적도 없드라는 이야기다.
未 巳 亥 子
亥字(해자)가 寅(인)을 合來(합래)해와선 鬼門(귀문)이 형성 되어선 幻覺(환각)狀態(상태)에 있게된다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역사의 아버지라 일컫는 옛 중국 전한(前漢) 때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BC 145~68)》의 <오제본기(五帝本記)> 조에 의하면 아득히 먼 4,600여 년 전인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동해의 한가운데에 도색산(度索山)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도목(大桃木: 큰 복숭아나무)이 있어 이 대도목이 천하를 덮어 신과 사람을(神人) 지배하였다는 신화가 보이는데 이 대도목 이야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숭아나무의 신성성(神性性)의 근원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도색산(度索山) 대도목(大桃木) 신화는 이러한다.
…동해의 가운데에 도색산(度索山: 혹 도삭산(度朔山))이 있는데 거기에 매우 큰 복숭아나무가 있어 삼천리를 덮고도 남는데 그 늘어진 가지의 동북쪽을 귀문(鬼門)이라 하였다. 이 귀문으로는 모든 귀신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문 위에는 신다(神茶)와 울뢰(鬱?)라는 두 신인(神人)이 있어 천제(天帝)의 명에 의해 귀문을 지키고 있으며 드나드는 모든 귀신들을 관장하였다. 만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 있으면 위색(葦索)이라는 새끼로 묶어 복숭아나무 활로 쏘아 호랑이로 하여금 잡아먹게 하였다. 천제께서는 이것으로 인간을 위하는 법을 세워 세모(歲暮)의 추나(追儺: 귀신을 쫓는 일)가 끝나면 대도인(大桃人: 복숭아나무로 만든 사람모양)을 문 앞에 세우고 문 입구에는 신다와 울뢰 두 신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위색(아마도 금줄)을 늘어뜨려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
장생불사의 선녀(仙女)들만이 산다고 하는 서역(西域)의 어디인가에 있다는 요지궁(瑤池宮)에는 사철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있는 신선의 나라라고 한다. 여기에는 서왕모(西王母)라는 아름다운 선녀가 왕인데 항시 세 마리의 청조(靑鳥)가 옆에 붙어있어 불수감(佛手柑)과 천도(天桃)를 받힌다 하며 이 요지궁의 복숭아나무는 삼천년 만에 꽃이 피고 삼천년 만에 한 열매가 열리며 이것을 하나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고 한다. 그런데 서왕모가 이천백여 년 전 한무제(漢武帝)가 장수(長壽)할 것을 원함을 알고 요지궁(瑤池宮)의 천도 일곱 개를 보내 주었다는 전설도 있으며, 당시의 정치가요 변설과 해학으로 이름 높았던 동방삭(東方朔: 속칭 삼천갑자 동방삭)도 요지궁에 몰래 숨어들어가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십팔 만년) 살았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속설로 전해오고 있다.
요지궁은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곤륜산 어느 높은 봉우리 위에 있다하며 궁의 주위는 경수(輕水)라는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새털 하나도 가라앉는다 하므로 신선들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선계(仙界)의 별천지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周)나라의 목왕과 한(漢)나라의 재주꾼 동방삭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 보았다는 이야기가 없다. 가상의 세계요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최고의 욕망이 담겨진 이야기일 것이다.
옛 동진(東晋) 때 호남성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사는 한 가난한 어부가 하루는 완강(沅江)의 기슭을 따라 고기를 잡고 있는데 강의 위쪽으로부터 복숭아 꽃잎이 흘러내려 옴으로 거슬러 얼마를 올라가니 비좁은 협곡에서 물줄기가 끝나면서 큰 바위가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데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 갈만 한 구멍 하나가 있어 간신히 들어가 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별천지가 나타나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하였으며, 논밭이 정연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밝고 온화한 얼굴이고 즐거운 표정들이며 외계에서 온 이 어부를 친절하고 반갑게 서로 초대하여 진수성찬으로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이곳에는 미움도 욕심도 성냄도 싸움도 없고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없으며 네 것 내 것을 다투는 전쟁과 살륙도 없는 평화만이 있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옛날 진시황(秦始皇)의 악독한 정치에 견디다 못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 무릉 도원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라고 하니 진나라가 망한지 600여년이 흘러버린 세월도 모르는 채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니 신선일시 분명하였다. 어부가 몇일을 잘 쉬고 나서 돌아간다고 하니 섭섭함을 금지 못하며 다투어 금은보화를 많이 주면서 세상에 나가거든 이런 곳에 우리가 살고 있드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드라는 것이다. 어부가 그러마고 약속을 단단히 하고 그 바위구멍의 관문을 빠져 나오면서 나중을 위하여 곳곳에 표시를 하고 돌아왔는데 세월이 얼마간 지난 뒤 다시 그 무릉 도원경을 찾으려고 완강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아무리 찾아보아도 흔적도 없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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