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서 누워 있으니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나서 쓴 글"
아버지는 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만지며
채널 사이를 천천히 떠돌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었지만
마치 아무 이야기에도 등장하지 못한 사람처럼.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늘 소파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족사진에서는 가운데였던 사람이
이제는 가장 조용한 자리로 밀려난 채.
젊은 날의 아버지는
우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이었다.
새벽 공기보다 먼저 일어나
굳은 손으로 삶을 붙들던 사람.
늦은 밤 돌아와서는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말없이 털어냈고,
피곤한 얼굴은 숨긴 채
우리 밥부터 챙겨보던 사람.
식탁 위 반찬이 부족하면
늘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배부르다.”
그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다.
아버지는 늘 자신을 뒤로 미뤘다.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아프다는 말조차 뒤로 미룬 채
가족의 시간을 먼저 살게 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당연한 풍경처럼 지나쳤다.
그리고 세월은
아버지의 어깨부터 먼저 굽혀 갔다.
이제 거실에는 TV 소리만 흐른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말없이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한때 우리 삶의 중심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조용히 가장자리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말이 줄어든 아버지.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아버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대화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외로운 건
늙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그의 하루를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정작 나는
아버지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늘 형식적인 안부만 오갔고
사는 이야기보다
침묵이 더 익숙했다.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는데
왜 그 마음을 더 늦게 알게 되는 걸까.
후회는 늘
깨닫고 난 뒤에야 밀려온다.
며칠 전
아버지가 자주 가는 해장국집에
둘이 마주 앉았다.
김이 오르는 술국을 앞에 두고
조심스레 술 한 잔을 따라드렸더니
아버지는 말없이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자리 마련해줘서.”
그 한마디에
가슴 깊은 곳이 무너져 내렸다.
왜 이런 시간을
자주 만들지 못했을까.
왜 아버지를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둔 채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뒤돌아보지 못했을까.
나는 차마 아버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아버지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술맛이 좋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끝내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날의 술상 위에는
평생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말이 조금 많아졌다.
내 어릴 적 이야기,
처음 학교 보내던 날 이야기,
내가 아팠던 밤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놓았다.
나는 처음 알았다.
아버지도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걸.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앞만 보고 살아가느라
정작 가장 오래 외로웠을 사람을
혼자 두고 있었다.
그날 집 앞 골목에서
아버지는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며 말했다.
“오늘 참 좋았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 속에는
오래 기다린 시간과
서운함과
그래도 고맙다는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끝내
“아버지, 미안합니다.”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돌아서는 아버지 등을 보며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늦기 전에
꼭 안아드려야 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언젠가 시간이 더 흘러
거실에 TV 소리만 남게 되는 날,
나는 오늘을 떠올릴 것 같다.
술국 사이로 피어오르던 김과
말없이 비워지던 소주잔,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말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오늘 술맛이 좋구나.”
술국 한 그릇 몇 푼이나 간다고
아버지의 웃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을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 등 뒤에서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