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
- 부자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은 소득 증가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줄곧 강조해 왔다. 소득은 개인의 예산 제약을 확대시키므로 더 많은 효용을 충족시켜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 성장론자의 성장 우선 정책은 큰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의견이 점차 분분해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생산(GNP) 같은 국민소득 추계 방법에 대한 의문은 1970년에 이미 제기됐다. 197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예일대학의 제임스 토빈(James Tobin)과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 교수는 국민순생산(National Net Product)이라는 경제지표에 여가, 가사 노동, 공해, 교통 지옥 등 행복과 관계된 요소들이 제외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당시의 국민소득 지표는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소득 추계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소득이 늘어나면서 환경이 오염돼 서울시를 관통하는 한강의 수질이 나빠진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한강에서 물놀이를 했을 텐데 이제는 강원도 동해안으로 물놀이를 하러 간다. 동해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 석유 소비가 늘어나고 식비와 숙박료가 지출된다. 그만큼 관련 업종의 매출이 늘어나 소득은 늘어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행복의 수준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토빈과 노드하우스의 지적을 더욱 가속화하듯, 미국 남가주대학교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교수는 소득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경제학의 신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1946년부터 1970년에 걸쳐, 공산권, 아랍, 가난한 국가 등을 모두 포함한 전 세계 30여 개의 지역에서 정기적인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이 설문 조사의 표면적 결과는 우리의 상식적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예외 없이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소득수준과 개인이 느끼는 행복이 비례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생활에 대한 걱정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으니 그만큼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면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신념을 재확인 시켜준 결과였지만, 이스털린의 설문에는 소득과 행복의 정비례관계에 대한 다소 모순적인 결과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개별 지역 내에서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더 행복해지지만,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의 비율 역시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 안에서 두 시점을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소득이 늘어나면서 행복도가 증가했다. 하지만 개인 소득이 급속도로 늘어난 1970년대까지는 다시 행복감이 감소했다. 이 조사 이후에 이스털린은 1972년부터 1991년까지 추가 조사를 했는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시기는 그간의 인플레이션과 세율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개인 소득이 이전에 비해 33%나 늘어난 시기이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욕구 수준이 낮아지면 같은 수준의 소득을 얻더라도 행복감이 더 늘어난다. 반대로 욕구의 수준이 높아지면 같은 수준의 소득에서 행복감은 줄어든다. 따라서 소득이 늘어나도 욕구의 수준 역시 늘어나면 행복감은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
이제 실증적 연구 결과를 보자. 소득이 오를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은 여러 선진국의 연구 결과를 통해 오류로 판명되고 있다. 국내총생산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른 개인의 소득도 상승세를 이어왔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전혀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갤럽 등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각종 설문 조사에서 매우 행복하다는 미국인들의 답은 지난 1950년대 후반 이후로 줄곧 낮아졌으며, 반면 1인당 국내총생산은 꾸준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또한 각국의 소득과 행복과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행복과 소득이 정비례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행복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냈을 때 80 이상인 국가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진국뿐만이 아니다. 즉, 소득과 행복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GDP가 적은 나라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경우도 많았다. 1인당 소득수준이 1만 5,000달러에 달하는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아르헨티나, 그리스, 체코, 스페인, 이스라엘과 같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행복 수준이 최하위였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최고점을 5로 잡았을 때 3.5다. 반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1점이 조금 넘는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넘는 나라 중에서 ‘국민들이 제일 행복하지 못한 나라’다. 우간다는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 평균수명이 52세가 안 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은 세계 12위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 사람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1인당 소득과 행복
빈곤을 막 벗어나는 단계에 있는 나라에서는 소득 증가에 따라 행복을 느끼지만, 1인당 소득이 1~2만 달러에 이르면 그런 비례관계는 사라진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소득수준 이외의 요소를 고려하며 이전과 다른 정의를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각 소득수준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물론 ‘아주 행복함(very happy)’이라는 항목에 소득이 높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많이 분포하고 있지만, ‘행복함(quite happy)’이라는 항목에 있어서는 두 그룹의 분포가 거의 비슷하다. 만약 소득 수준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결정된다면, 소득 수준이 높은 그룹은 ‘아주 행복함’ 항목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소득 수준이 낮은 그룹에서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음(not too happy)’ 항목에 가장 많은 사람이 분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이듯 두 그룹에서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서로 비슷했다.
이 결과들은 행복이란 단순히 물질적 풍요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비교한 상대적 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며, 경제 성장의 결과로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행복의 수준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소득만으로 행복의 정도를 가늠하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행복 경제학의 의의를 알 수 있다. 소득은 행복과 항상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 경제학은 현실 사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며, 행복 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의 이러한 한계를 심리·사회적 요인이 포함된 분석으로 보완해 보다 나은 경제학적 이론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자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 이스털린의 역설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101, 2011. 2. 28.,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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