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시에 여름호 양효숙 수필>
독(毒)독(獨)독(讀)
일흔여덟의 엄마가 독사에게 물려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을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첫 입원이다. 하필 독사에 물려서 입원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만우절이라서 위급한 상황마저 믿고 싶지 않게 만든다. 엄마의 생사가 오간 아주 중요한 날이기에 4월 1일 날짜 밑에 ‘엄마가 독사에게 물린 날’이라 써놓는다.
고사리밭에는 고사리만 자라고 사는 게 아니다. 고사리를 끊으러 갔다가 고사리보다 더 탐스럽게 웃자란 돌담 밑 풀을 엄마가 호미로 뽑으려고 한 줌 움켜쥐는 데 가시에 찔린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엄마의 왼손 가운뎃손가락 중에서도 접었다가 폈다 하는 곳 뼈마디를 독사가 깨물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해독제를 사용하고 얼음찜질을 계속하며 치료를 받아도 붓기가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살갗이 허물처럼 뜯어져 나오는데 독사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고 엄마가 말한다. 그나마 핏줄을 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엄마와 내가 몇 번씩 되뇌며 감사했다. 내 왼손이 엄마의 왼손과 겹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리산 햇볕을 머금은 고사리와 두릅, 취나물이 엄마의 밭에서 자라고 있다. 동네에서 몇 분 안 걸리는 곳에 밭이 있어서 놀이터처럼 아무 때나 갈 수 있다고. 오가는 사람들도 없어서 밭 일을 마치고 봇도랑으로 흐르는 물에 씻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단다. 하지만 독사에게 물려서 정신 못 차리고 쓰러졌다면 내가 죽어도 누가 알겠냐며 엄마가 운다. 뱀에 물려서 아프다고 울기 시작한 눈물은 당신 설움에 복받쳐서 울음의 농도를 달리한다.
해마다 고사리는 뻗어가는데 엄마의 기운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엄마의 휴대폰에 내가 1번으로 저장돼 있는데 엄마가 1번을 누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엄마의 부재중 전화에 살짝 긴장하는데 이번처럼 세 번 넘게 연달아 찍혀 있으면 긴장감이 고조된다. 혼자 사는 엄마의 동선이 선명하지 않으면 엄마와 언제 통화한 거냐고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서로 확인한다. 우리들의 구심점이 된 엄마다. 혼자 살다가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아니냐는 엄마 말이 우리 안에 강하게 남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집에 CCTV를 설치하고 거실에 없던 번호 키도 달았다.
아버지는 집에만 있다가 집에서 돌아가셨다. 오로지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처럼 평생을 기대 살다가 가셨다. 이삼일을 못 넘길 거라는 의사 말에 내가 아버지와 마지막 통화를 했었다. 엄마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꼭 하고 가시라 했는데, 그러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도 끝내 하지 않았다. 할매 대소변 수발은 어떻게 하고 살았지만 느그 아부지까지 누워지내면 더는 못한다고 했더니 잠자듯 그리 가버렸다고. 엄마 발목을 잡은 채 그리 힘들게 하더니 죽을 복까지 타고 났다며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퇴원하자마자 고사리밭으로 달려갔다. 생사가 오가던 장소에 당분간 가기 싫을 텐데 엄마는 달랐다. 왼손이 물려서 오른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부지런한 엄마 손이 발보다 먼저 나간다. 젊을 때 도망가려고 했었던 엄마 발은 다 늙어서 지리산을 벗어나는 게 두렵다고 멈칫거리는데 엄마의 오른손은 아직도 늘 도전적이다. 엄마 손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두릅나무를 가리킨다. 고사리는 생각보다 올라오지 않았고 두릅이 먹기 좋은 상태로 나와 있다면서.
앞으로 몇 년이나 밭곡식이 담긴 엄마 택배를 받을 수 있을까. 좋은 것이 있으면 자식들이 생각나서 보내주고 싶다며 엄마가 택배 상자 세 박스를 챙긴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게 해주려 한다. 이빨로 테이프를 물고 택배 상자를 감아 도는 엄마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삼층 탑처럼 올려진 택배 상자를 손수레에 담아서 면소재지에 있는 농협까지 끌고 간다. 주소지 세 곳을 직원에게 보여줬을 테고.
택배를 잘 받았다고 하면서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아직도 독사에게 물린 곳이 드끈드끈 아파서 자다가도 깬다고. 그동안 엄마 눈에 띄어서 잡힌 독사가 스무 마리는 족히 될 것이다. 왼손에서 피가 흐르는 데도 오른손에 쥔 호미를 들고 독사를 때려잡은 엄마였다. 이젠 엄마 나이를 생각하라고. 앞으론 독사를 봐도 피하라고 했더니 물고간 뱀을 죽인 이유가 튕겨 나온다. 물린 뱀을 죽이지 않으면 그 뱀이 움직일 때마다 물린 곳이 아프다는 옛말이 있다고.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독사와 사람이 연결된다. 엄마가 어디 독사에게만 물린 것일까. 시집살이 하면서 할매에게 물리고 무능력한 남편에게 또 물리고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또다시 물렸다. 같은 물을 먹어도 젖소는 젖을 만들고 독사는 독을 만든다. 같은 집이나 한동네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도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양한 사람살이가 어쩌면 누군가에게 물리고 무는 이야기 사슬로 연결된다. 다양한 이빨 자국을 지닌 채 휘둘리거나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읽힌다.
엄마가 열일곱 살에 시집와서 온갖 품팔이를 해가며 지금의 고사리밭을 일궜다. 돈이 생길 때마다 다랑이 논을 사들여 지금처럼 하나로 만들었다. 괭이를 들고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 검은 고사리 뿌리를 캐서 옮겨 심었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을 그때는 해냈었다고.
엄마가 독사에게 물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올해도 고사리 주문을 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주문했었던 말을 내가 엄마에게 수시로 해준다. 말끝마다 잔소리 대신 수고했고 애썼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까지 더한다. 몸이 기억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온 엄마의 익숙한 공간이 엄마를 살게 한다. 엄마를 읽는 시간이 봇도랑 물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