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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랑방

환생의 조건 / 천수호

작성자또다른나|작성시간10.07.12|조회수21 목록 댓글 0

환생의 조건

 

  천수호

 

 

고흐는 씨를 뿌리고 나는 수확을 한다

고흐가 파묻은 씨앗에 물을 주지 않은 것에 반성하는

이상한 꿈을 지나

내가 축낸 21세기의 노오란 햇살 한 두름을 지나

사치와 허영의 시간을 지나

찬양 받은 그의 한 쪽 귀와 말라붙은 물감 밭을 일궈내어

내 잠의 깊이만한 뿌리를 캐낸다

 

나의 수확은 뿌리에 집착했고

고흐는 인간의 귀에 생명을 고집했다

고흐가 자신의 피조물로 백 년을 살 동안

나의 환생조건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비의는 환생 가능성에 너무 오래 젖어있었고

나의 기대는 다시 씨를 뿌린다

귀 큰 코끼리로 오십 년, 당나귀로 오십 년 살다 간

그의 무덤에서

우주의 가장 구체적인 구조로 베고니아가 핀다

 

 

                                  —《딩아돌하》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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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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