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하나님
마태복음 1:18-25
특별하게 태어난 사람들
성경을 보면 특별하게 태어난 사람이 여러 명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삭의 부모였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임신이 불가능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 자식이 없이 살다가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고 사라는 90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여러 번 ‘자녀를 줄 것이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과 사라는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여러 방법을 써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사라가 팔십 구세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들을 찾아오셔서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으나 사라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사라는 할머니가 다 된 자신이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라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18:14)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라는 이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두 번째 살펴볼 사람은 삼손입니다.
단 지파 중에 ‘마노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라와 같이 마노아의 아내도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서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삿 13:3이)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낳게 될 아들은 나실 인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고, 부정한 것을 먹지 못하게 하고, 머리를 깎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삼손’입니다.
세 번째 살펴볼 사람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하나님이 태를 막으심으로 임신할 수 없었던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는 그 불임의 서러움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이 ‘한나’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그 서원한 대로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한나’의 태를 여셔서 이후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네 번째 살펴볼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대제사장을 대신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는 말씀을 주었습니다(눅1:13-17).
그때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은 늙고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라고 하며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가랴’는 신실하고 대단히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가랴’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믿는 믿음을 주시려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다섯 번째 살펴볼 사람은 예수님이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모든 출생 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의 결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녀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자녀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출생과 예수님의 수태는 다릅니다.
앞에서 살펴본 그 모든 사람들의 출생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잉태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7: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뿐 아니라 처녀인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 이렇게 남편이 없는 처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신 예수님에 대해 이사야서 9: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서 ‘한 아이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다.’는 이 말씀은 여인들이 출산의 산고를 겪으면서 한 어린 생명을 낳듯이 예수님이 그렇게 출산의 산고를 겪으면서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통해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시는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오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그 신분에 걸맞은 방법으로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기이한 방법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기적적인 방법으로 오시지 않고, 자기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자기들이 다 아는 목수 요셉의 아들로 그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고대 바벨론이나 로마 신화를 보면 예수님과 같이 신에 의해 잉태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그의 어머니 뱃속에 흰 코끼리가 들어가서 잉태되었다거나, 알렉산더 대왕은 제우스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봐라. 고대 근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는 성경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지않느냐?“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적 지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서 고대의 신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화적인 내용이라고 간주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혼동시키기 위한 사단의 고차원적인 작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거짓으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던 사단은, 인류의 역사가 끝나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으면서도 정작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였듯이, 우리들도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면서도 정작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진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 대로 되어 가고 있는 이 종말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맞이하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2.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지금부터는 마태복음 1:18-25절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동정녀 탄생에 대해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동정녀 탄생이 우리 구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오셔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신 구주가 될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인간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자주 소개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고,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아브라함과 아담을 넘어 하나님’에게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로마서 1:3절 이하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인간적 기원과 신적 기원을 동시에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 일을 강압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당사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내셔서 네가 유대인들이 기다려 오던 메시야를 잉태하여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뭐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38절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유대인의 결혼예식은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본인이 어렸을 때 양가 부모들끼리 당신 아들과 내 딸을 장차 결혼시키자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자녀가 장성하게 되면 약혼하게 되는데 이것은 양가 부모님들이 전에 약속한 것을 본인들이 승낙하는 과정입니다. 부모가 전에 미리 약속을 한 것을 성장한 본인들이 수락하게 되면 이제 이들의 결혼은 기정사실이 되어서 약 1년 동안의 약혼 기간을 거친 후에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한 약혼은 결혼과 똑같은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그래서 약혼한 사람은 정조를 지켜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약혼 기간이 지나게 되면 결혼예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을 기점으로 남편과 아내가 되어 한집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요셉과 마리아는 이 두 번째 과정인 약혼한 사이로 있었습니다.
이 약혼 단계에 있을 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을 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마태복음 1: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사람들이 볼 때 이것은 율법에 저촉되는 일이며, 신명기 22:21-24절 말씀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안 요셉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마태복음 1:19절입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라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율법대로 하면 마리아를 돌로 쳐서 죽여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조용히’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결혼하기 이전이나 결혼한 이후에 여러 가지 실수 들을 하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상대방을 정죄하게 되면 둘 사이의 관계는 파탄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가정들이 파탄 나지 않고 살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4:8절에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합니다.
부부가 서로의 실수를 사랑으로 덮어주기 때문에 그 관계가 파탄 나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요셉은 지금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관계 없이 임신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요셉은 이 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 결론이 무엇입니까? 자기는 이 일을 드러내지 않고 트집 잡지 않고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셉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셉과 같은 인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사랑해서 결혼한 가정들이 오늘날과 같이 많이 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위기를 맞이한 이 가정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마리아를 변호해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 위기의 순간에 천사가 요셉을 찾아갔습니다. 20절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당시 요셉은 아마 깊은 회의와 갈등 속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간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임신하기 전에 천사가 찾아가서 알려 주었더라면 요셉은 그렇게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할 것을 알고 많은 고민을 한 후 마리아를 위해서 내가 조용히 약혼 관계를 끝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한 이후에 요셉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면서 미리 수양을 이삭 대신 준비해 두었다고 알려 주셨더라면 아브라함은 평안한 마음으로 모리아 산으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약속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좀 더 일찍이 알려 주시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늦게 알려 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전에 하나님은 그 예비해 두신 수양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알려 주시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종말 시대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종말 시대가 오면 이런 저런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시대가 종말이 임박한 시대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종말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24: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가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
종말이 가까워지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요한계시록 6장에서는 둘째 인이 떼어지면 붉은 말의 활동 즉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가 정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는 전쟁 중입니다. 여기저기서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각국은 이 전쟁을 대비하여 무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산 업체들이 이 전쟁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전쟁의 핵심에는 결국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스겔서 38-39장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곡과 마곡과 전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하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전쟁 후 이스라엘에서 영적 회복이 일어나게 되면 이제 인류 역사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남아 있는 7년 즉 마지막 한 이레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7년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인류 역사는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인 재앙이 임하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마지막 7년간은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이 임함으로 아주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 종말 시대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제사 사건을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아!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확하게 개입하셔서 인도해 주셨구나!’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것 때문에 약혼이 깨어질 위기 속에 있었던 요셉과 마리아가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 하나님은 반드시 개입하셔야만 했던 그 정확한 시간에 개입해 주셔서 혼인이 파탄 나지 않고 믿음으로 선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은혜 베풀어 주시는 것이 너무 늦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결코 늦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정확한 시간에 개입하셔서 역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역사해 주실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우리 신앙을 견고히 세우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견고하고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1:18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떻게 남자도 없이 여자 혼자 임신할 수 있어.’라고 하며 흥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들은 마리아의 남편이었던 요셉을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의 약혼자였던 요셉은 충격적인 사건을 알고도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고민한 후에 마음을 정리하고 그냥 가만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천사의 말을 듣고는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무엇이 참인지도 알지 못하는 내가 왜 흥분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성령 잉태가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니까 이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을 잉태하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해도 하나님께는 이 일이 아주 쉬운 일일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 일이 인간의 과학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단순한 세포를 가지고 동물들을 복제해 내지 않습니까? 오늘날은 난자와 정자의 결합 없이도 세포끼리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시대입니다. 이것을 처녀 생색이라고 합니다. 처녀생식은 과학도 인정하는 현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령 잉태보다 더 신기한 방법을 쓸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적한 바가 있으셔서 성령으로 잉태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문제를 대할 때 ‘과연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 하는 것에 관심을 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아이를 낳지 못하던 사람들도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처녀의 몸을 통해서도 잉태되실 수도 있습니다.
셋째,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으시고 한 남자를 통해 잉태되셨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수 없으실 뿐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무리 훌륭해도 죄인이며, 석가모니가 아무리 훌륭해도 죄인이고, 공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도 인간의 자식으로 태어난 죄인입니다. 여기에 대해 로마서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였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도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죄인이 다른 죄인들을 구원해 줄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그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으려면 자신은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으신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잉태되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참으로 귀한 믿음을 가진 순결한 여자였습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너무 우상화하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그 반작용으로 마리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예수님의 모친으로 택함을 받은 아주 귀한 여인이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그릇에 깨끗한 물을 넣으면 곧 더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중에서 예수님의 모친이 될 순결한 한 처녀를 선택하셨는데 그 처녀가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처녀 잉태는 시험관 아기까지 태어나는 오늘날에는 그리 놀라운 일이 못 됩니다.
처녀 잉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이 구태여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때 그냥 죄 사함을 선포해 주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죄를 사해주심은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죄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시는 것을 보고 깨닫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오셔서 죽어주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자칭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의 말이 거짓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성령으로 잉태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은 반드시 성령으로 잉태되고, 동정녀를 통해 탄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 이외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짜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만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덮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이 성령 잉태를 통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예수님에 대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실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종교적인 계율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이 아닙니다.
좀 더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생활도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할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와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 삶에 함께해 주고 계신다는 이 임마누엘 신앙을 가지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 삶에 함께 하고 계신다는 이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되 아무 목적 없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로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홀로 살고 있다고 외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도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자신과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이 주일 아침에 믿음의 눈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남은 생애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