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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방(수필)

언어의 유희 / 이금영(전북문협)

작성자이해숙|작성시간21.09.01|조회수110 목록 댓글 2

언어의 유희    /  이금영
 
   며칠 동안 전국이 영하권으로 내려가 몹시도 추웠다. 어서 포근한 봄이 오기를 식탁 위 매화 그림을 보며 기다린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깥세상이 무척 궁금하다. 하늘은 맑은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는 어떤지. 멀리 모악산이 선명하게 보이면, ‘아! 오늘은 미세먼지 없이 대기질이 깨끗하겠구나.’ 안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코로나19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요즘 찾아가는 곳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유치원에 간다. 유치원은 정규 교육 안에서 긴급 돌봄교실로 운영되고 있다. 유치원에 갈 때는 화장을 곱게 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쓰니 그럴 필요가 없다. 옷을 단정하게 생활한복으로 입는다. 겨울 방학 동안 쉬면서 빨간색 저고리를 손수 지었다. 간단한 디자인으로 지어 입은 첫날이다. 나이 들어서도 어린이 교육에 일조하고 봉사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로 질서 있게 마스크를 쓰고 앉아 이야기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재잘대며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마스크가 불편하고 답답할 텐데 잘 견디며 쓰고 있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마스크 쓰지 않은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이야기는 주로 선현 미담이나 전래동화, 옛날이야기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책의 내용을 외워서 책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체로 풀어서 한다.
  오늘은 여섯 살 아이들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방학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도착했다.
  “할머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응. 겨울 방학이었고 또 코로나19 때문에 오지 못했어요. 우리 친구들 많이 보고 싶었어요. 오늘 이야기 궁금하죠? 오늘 이야기는 「의로운 선비 정협」 이야기예요. 이야기 속으로 출발해 볼까요?”
  이야기를 끝내고 마침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맨 앞줄에 앉은 남자아이가 웃으며 불렀다.
  “할머니! 빨간색 한복이 너무너무 예뻐요. 꼭 빨간 장미꽃 같아요.”
  “오! 그래요. 고마워요. 우리 친구 마음이 빨간 장미꽃처럼 예쁘구나.”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코로나19가 무서워 거리 두기를 지켜야 했다. 이제 여섯 살 아이가 의사 표현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계산하지 않고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한다. 가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놀라곤 한다. 어떻게 예쁜가를 ‘빨강 장미꽃 같아요.’라고 말한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로 포근히 와 닿았다. 고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하였다. 이 아이는 다음에 어른이 되면 글을 쓰고 아름다운 시를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든다. 이야기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친밀감을 나누는 시간이 없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마쳐야 한다. 이야기 외우기가 조금 버겁지만 아이들 앞에만 서면 모든 시름 다 잊고 저절로 이야기가 술술 풀어진다. 아이들한테서 생기와 에너지를 팍팍 얻기 때문이리라.
  정말 빨간 장미꽃 다발을 가슴에 안은 느낌이다. 어느 아동학자는 5, 6세가 되면 정상적인 아이는 특별한 환경이 아니어도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철없는 말이 아니라 어른이 배워야 하는 말도 곧잘 한다. 어려서부터 긍정적인 말을 듣다 보면 생각과 표현도 밝아지리라. 언어는 사회의 기호이다.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고 특히 아동의 지능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긍정적 사고의 틀에서 생활하면 긍정의 에너지가 분출된다.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들어서 좋은 말 누가 들어도 고운 말, 상대방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말을 하면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질 것이라 여겨진다.
  손녀는 코로나19가 나타난 이후 영상으로만 보고 만나본 지 꽤 오래되었다. 손녀가 오면 먹이려고 백김치를 정성들여 담갔는데 오지 않아서 택배로 보내줬더니 먹어보고 아이가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내왔다.
  “할머니가 보내준 김치 맛이 어때?”
  에미가 물으니 시원이가 답한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세상에서 먹어본 맛 중에 최고예요. 그 어떤 맛보다도 백배 천배 만배 무한 배로 맛있어요!”
  손녀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어떻게 즉흥적으로 이렇게 말을 할까. 긍정적 메시지를 어디서 듣고 따라 했을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처음에 무슨 말인가 하여 아이가 말하는 영상을 보고 또 보고 나서야 알아들었다. 할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칭찬의 말들을 구사한 것이리라. 잘 익은 백김치 맛보라고 보냈는데 이렇게 어린 손녀한테 최고의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받고서 나는 할 말을 잊고 웃기만 했다.
  사람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언어가 아닐까. 언어에는 생명력도 있고 색깔도 있으며 감정도 있다. 언어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이의 마음이 다를 때도 있다. 서로의 내면을 살피면서 해야 긍정의 언어가 된다. 언어의 영향력은 위대하다. 축복의 언어로 상대방을 축복하면 자신에게도 축복의 미소가 되어 돌아오는 마력이 있다.
  어린아이가 해준 '빨간 장미꽃 같다'는 한마디 말은 내게 행복 바이러스가 되었다. 유아에게도 언어를 창조해내는 힘이 있고, 그 창조력은 꾸준히 발전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 맘에 새겨진 이 행복 바이러스를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함을 안다.
  오늘은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겠다.
 
[이금영] 수필가, 2010 《수필과비평》등단
전북수필가비평작가회의, 행촌수필, 전북수필, 카톨릭문우회
* 《행복을 담다》
* 행촌수필문학상
 
  이금영 수필가는 따뜻하고 정감이 있는 글을 쓴다. 수필가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활동으로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손수 지어 입은 개량한복을, ‘빨간 장미꽃 같다’고 표현해 준 아이의 꾸밈없는 찬사에 큰 행복을느꼈을 것 같다. 손녀딸의 맛에 대한 다양한 표현은 할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듯하다.
  간서치 이덕무는, 동생 정대가 어릴 적에 귓속에서 나는 쟁쟁 우는 소리를, ‘동글동글한 별 같다’는 표현을 듣고 ‘소리를 형상에 비유했다’하며 극찬했다. 때 묻은 세속의 기운을 훌쩍 벗어났다고. 그래서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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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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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의초 이정석 | 작성시간 21.09.02 손녀가 할머니의재능을 물려 받았군요

    멋진 글 소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해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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