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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방(수필)

편지 / 변해명

작성자이해숙|작성시간21.05.21|조회수215 목록 댓글 2

편지 / 변해명

  육필로 써 보내는 편지에선 그 사람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편지 겉봉만 보아도 그리움이 피어나고, 목소리가 떠오르고, 그 사람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읽는 순간 반가움과 고마움에 가슴이 떨리고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안부를 보내준 것에 대해서 친근감과 그 정성에 감동한다.

  우리 집 우편함에는 날마다 우편물이 담긴다. 서적, 고지서, 안내서, 광고물 등 참으로 다양한 내용의 우편물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육필로 씌어진 편지는 거의 오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사춘기 소녀도 20대의 청춘도 없으니 연애편지가 날아올 리 없고, 인기 있는 연예인도 없으니 화려한 엽서가 날아올 리 없다. 그래도 나는 편지함을 열 때면 육필로 씌어진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보낼 사람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  나는 열여섯 살 때부터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 중에는 내 편지가 아니고 남의 편지를 대필해준 편지들도 있었다.

​  6·25동란으로 시골 외가에 살고 있을 때, 한글을 모르는 시골 아낙네들이 많아서 중학생인 내가 야학을 연 일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억에 없지만 꼬마 선생이란 별명을 달고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한글을 가르쳤다. 그때 내게서 한글을 배우던 여인들은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군에서 오는 편지를 읽을 수가 없어 답답하고 또 그에게 답장을 써야 하는 일이 난감한 여인들이었다. 나는 그녀들이 내미는 편지를 큰 소리로 읽어주었고, 그 편지의 답장을 써 주어야 했다. 온갖 묘사와 수식어를 다 동원하고 편지를 써주면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서 써 내려간 문장에 감격하고 그 글을 자신이 쓴 편지로 일선으로 보냈다. 그렇게 해서 띄워진 편지는 그녀의 남편이나 애인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던 것 같다.

​  때로는 내가 쓴 편지 글 하나를 놓고 여러 사람이 베껴 보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스러운 추억이지만 그 때 무슨 말로 사지를 헤매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 주었는지.

​  나는 그런 편지를 쓰려고 많은 연애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베끼거나 외웠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지드의 '좁은 문' 그리고 바이론과 베르랜느의 시 등 많은 책들을 읽던 기억이 있다.

​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크리스마스가 임박하면 학생들에게 국군장병에게 편지를 쓰게 했는데, 담임이었던 나는 학생들이 편지를 쓸 동안 나도 써서 가명의 학생으로 함께 보내고는 했다. 그 가명의 학생 편지에 답장이 왔다. 나는 다시 그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지만 계속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두 번으로 편지를 더 쓰지 않았다.

​  그 이듬해 5월 어느 날이었다. 소위 계급을 단 군인이 학교를 찾아와서 아무개 오빠 되는 사람인데 그 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없는 학생의 오빠라니. 나는 그가, 내가 만든 학생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써 온 군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미안함으로 진정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학생은 3월에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갔다고 했다. 만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듯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 가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편지는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립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더욱 보고 싶게 한다.

​  내가 편지 쓰기를 즐겼던 것은 연애편지를 대필한 데도 있지만 중학교 때 은사님이 내게 주신 편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  사로메 여사에게 3천통의 편지를 남긴 릴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게 백여 통의 편지를 주신 선생님. 나는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문학의 세계에 눈을 떴고, 편지 쓰는 기쁨으로 온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 편지 쓰기는 내 문장수업의 과외시간과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많은 시를 써 보내주시면서 그 시들을 외우게 했고, 글을 쓰게 했다. 하지만 '너는 문인이 되기를 바라지 말아라. 문학의 길이란 외롭고 험난한 길이니 문학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거라.' 하는 글을 주시기도 하셨다. 두고두고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체험의 목소리가 그 말속에 담겨 있음을 오래도록 깨달아 가는 것이다.

​  쓰고 찢고, 또 쓰기를 밤새워 하며 한 통의 편지에 자신의 전부를 담아내려고 애를 쓰던 시절, 하지만 내가 쓰는 편지에는 내 마음과 목소리가 담기기보다 자신의 약점은 숨기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 과장하고 남의 것을 내 것처럼 각색된 내용으로 채웠을 것이다. 잘난 척 멋을 부리려던 그 글들을 선생님은 미소로 받아보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의 성장을 불안하게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으시다. 내가 다시 선생님께 글을 쓸 수 있다면 진정 내 목소리가 담긴, 어리석은 내 모습을 허둥대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렸을 터인데……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인정의 가교는 편지만한 것이 또 있을까?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써 보내는 편지. 그 편지를 받고 싶어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육필로 씌어진 편지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고 그렇게 해서 보내는 편지는 아니지만 육필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아쉽지만 번개처럼 날아가는 편지를 쓰려는 것이다.

 

  [변해명] 수필가. 중, 고교 국어교사 퇴직

  * 『산처럼 선 대로 살다가』, 『우주목과 물푸레나무』등등

  * 한국문학상(수필 부문) 수상

 

    가끔은 손편지를 쓰고 싶고, 받고 싶을 때도 있지요.

    20대 시절 한동안은, 편지지 대신 천 자 원고지로 편지를 쓰기도 했는데요.

    돌아갈 수 없기에 아름답고 더욱 그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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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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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봄비 | 작성시간 21.05.25 정말 그렇습니다.
    스마트폰의 일반화로 우리는 간단한 문자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어쩌다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았을 때 선물을 받은 것 처럼 고맙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이해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26 선생님은 시도 손편지도 많이 쓰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선물처럼 감사한 하루네요.
    좋은 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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