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전망
1. 미국, ‘우선 협상국’으로 한국 지목…전략적 ‘만만한 상대’부터 압박
2025년 들어 미국은 무역불균형 해소와 공급망 재편, 대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무역 구조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 재무부·USTR(무역대표부)은 한국, 일본, EU, 대만, 베트남을 ‘우선 협상국(priority negotiation countries)’으로 지정하고 개별 양자협상을 추진 중이다. 이 중 한국이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은 한국의 대미 경제 의존도와 통상 정책 유연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은 2023년 기준 미국과의 교역에서 무역흑자 280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대미 수출이 급증했고, 미국 입장에서는 이를 ‘무역불균형’의 사례로 삼아 우선 조정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치적·전략적 판단도 포함돼 있다. 2018년 철강 232조 관세 조치 당시 미국은 한국을 가장 먼저 협상에 불러내 ‘쿼터제 수용’이라는 전례를 만들었다. 이후 이를 일본, EU 등에도 적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먼저 양보를 이끌어내 선례를 만든 뒤 다른 파트너 국가로 확대하려는 전략이 반영돼 있다. 한국이 ‘협상의 전위대’가 된 셈이다.
2. 미국의 관세협상 방식: ‘패키지 딜’과 구조적 압박
이번 협상의 핵심은 단순한 관세 조정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요구들을 묶어내는 패키지 딜 구조에 있다. 즉, 관세 혜택을 주는 대가로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미국 기업에 대한 우대조치, ▲공급망 협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후 미국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해 북미 최종 조립 요건을 내세워 보조금 지급을 제한한 것이며, 이번 관세협상은 이보다 더 포괄적인 경제 재편 요구를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USTR은 한국의 자동차 수출(2023년 기준 258억 달러)과 배터리·반도체 수출 급증을 ‘불공정 무역’으로 규정하며 공급망 재배치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라는 도구를 지렛대로 사용하여 한국 기업과 정부가 자국 중심 질서에 더 깊게 결속되도록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경제적 종속 심화 전략이다.
3. 한국 정부, ‘조선·LNG’ 지렛대 삼겠다지만…효과는 제한적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2024년 기준 42%)과 LNG선 수주 경쟁력(2024년 신규 수주 기준 세계 1위)을 지렛대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명분상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미국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첫째, 조선업은 이미 국제적으로 보조금 지급 및 가격 덤핑 논란의 중심에 있다. EU는 WTO에 한국을 제소했고, 미국도 자국 조선 산업 회생을 위한 보호 조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둘째, 미국은 조선 분야에서 큰 무역적자를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협상 카드가 미국 입장에서 절박하거나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분야는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 등 기술 주도 산업이다. 이들 분야에서 미국은 공급망 통제권과 기술 이전, 미국 내 생산 확대 등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 주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4. ‘우선 협상국’이라는 말 뒤에 숨은 구조: 선례 만들기, 종속 심화
‘우선 협상국’은 긍정적인 표현 같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 국가를 선별해 선례를 만들고 이를 타국에 확장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한국은 이미 IPEF, 반도체 동맹, IRA 등 미국 주도 경제질서에 가장 먼저 동참해 온 국가 중 하나이며, 미국 입장에서는 협상 효율성이 높은 대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가이다.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광범위하게 수용할 경우,
• 자국 산업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고,
• 장기적으로 미국 중심 공급망에 묶여 기술 독립성과 주권이 제약받게 되며,
• 새로운 통상 규범이 한국 내 정책 결정 자율성을 잠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관세 문제를 넘어 경제적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협상’이 아닌 ‘통보’의 가능성…민주적 통상 전략 재정립 필요
지금 진행 중인 한미 관세협상은 외형적으로는 협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미국의 구조적 요구를 한국이 수용해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관세 면제를 얻는 대신, 규제 완화·시장 개방·공급망 재배치·미국 기업 우대 등을 수용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 산업에 심대한 구조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이 협상은 단기적인 관세 면제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 한국의 통상 주권과 산업 전략 전반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 정부 주도의 비공개 협상이 아니라,
• 국회와 산업계,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되는 민주적 통상 전략,
• 미중 간 경쟁 속에서 자주적 산업전략과 지역협력의 다변화 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