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조미대화는 다시 열릴까
- 조중러 협력의 진전과 한계, 트럼프의 선택
정성희 자주연합 집행위원장
2026년 국제정세는 중대한 전환점에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어렵게 합의하고 서명하더라도 핵 문제와 지역 패권 경쟁으로 충돌과 협상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장기 전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유럽과 중동에서 전략적 부담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외교적 성과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국내 경제 문제와 재정적 부담, 그리고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현실은 트럼프에게 새로운 외교적 돌파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디에서 대외정책 성과를 만회하려 할 것인가.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의 외교적 돌파구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이 휴전과 1차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핵 개발, 경제제재, 이란의 역내 영향력 등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고, 이란 역시 안전보장 없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결국 앞으로 진행될 2차 핵 협상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핵 능력 제한이고, 이란이 원하는 것은 제재 해제와 안전보장이다. 양측의 전략적 목표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설령 중동에서 일시적 긴장 완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그것만으로 외교적 승리를 선언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동은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의 도발 등 언제든 다시 위기가 재발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역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린이 등 민간인 학살 수천 명, 각종 시설 파괴 수천억 달러, 유가 폭등 등 세계 민생 파탄 수백조 달러라는 재앙을 초래한 미국의 대이란 침략전쟁 결과로 얻은 것은, 이란이 이미 수차례 밝힌 ‘핵무기 제조하지 않는다, 평화적 핵 활동 계속한다’를 재확인한 것뿐이다.
트럼프는 외교를 국제질서 관리보다 정치적 성과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이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회담은 구체적 합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트럼프는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였다.
현재 상황에서도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복잡한 외교적 해결보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이벤트일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중동 역시 이스라엘, 이란, 걸프 국가들, 러시아, 중국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다음에 미국의 대외정책 초점은 쿠바, 한반도를 생각할 수 있다. 어디에 정책 우선 순위를 둘까? 쿠바는 베네수엘라와 다르다. 지도자와 민중의 정치적 단결 수준, 수십년 제재 압박 속의 자력갱생,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등에서 미국이 잘못 건드리면 역효과가 날 것이다. 현재 미국의 해상봉쇄로 극심한 에너지-식량 위기를 겪고 있으나 군민일치 전민항전으로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쿠바 지원을 위한 중국,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에게 쿠바 제압이 부담스럽다면,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조선을 향할 것이다. 한반도의 북(조선)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는 이미 세 차례 정상회담 경험이 있으며, 직접적인 소통의 전례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미 정상외교는 트럼프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정치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드문 외교 카드이다.
최근 중-러, 조-중 정상회담의 전략적 함의
더구나 조-러, 중-러, 조-중 관계가 강화되고 미 패권을 억제하는 조중러 관계가 발전되고 있다. 지난 5월 중러 정상회담은 단순한 양국 관계 행사가 아니었다. 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응하는 전략적 협력을 재확인하였으며, 경제·금융·에너지·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서방과 사실상 결별한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후방으로 자리 잡았다. 중러 양국은 달러 중심 국제금융체제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기도 하다.
조선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중러 협력이 자신에게도 새로운 전략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안보와 군사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경제와 무역 분야에서 각각 조선의 후방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과거 하노이 회담 당시와 비교할 때 조선의 협상력을 크게 높여주는 요인이다.
지난 6월 8일 조중 정상회담 역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국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경제·무역·교통·관광 분야 협력 확대를 논의하였다. 특히 코로나 이후 장기간 위축되었던 인적 교류와 경제협력의 복원이 본격화될 것이다.
그러나 조중관계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조선과 중국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국가이익을 추구한다. 중국은 동북지역 발전과 물류망 확대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경제협력을 희망할 수 있지만, 조선은 국가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두만강 출해권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지정학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은 경제협력을 확대하더라도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수준의 양보는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조중협력은 확대되겠지만 일정한 한계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조선의 위상과 조중러 협력의 한계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조선의 국제적 위치는 상당히 달라졌다. 당시 조선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조러관계가 전략적 수준으로 발전하였고, 조중협력 역시 확대되고 있다. 핵 억제력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
그 결과 조선은 더 이상 미국과의 협상에 절박하게 매달릴 필요가 없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협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협상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체제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 하노이 이후 가장 큰 변화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중러 협력만으로 조선의 장기 국가발전전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이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한 체제 생존이 아니라 경제강국 건설이다.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넘어 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현재 국가전략의 핵심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는 안보적 후방이 될 수 있지만 경제발전 모델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자본을 갖고 있지만 조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협력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결국 조선이 보다 안정적인 국제경제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변수가 여전히 중요하다.
조미대화 수요는 양측 모두에 있다
이 때문에 조미대화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조선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국제환경을 원하고 있으며, 미국은 외교적 성과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조건이다. 트럼프가 북핵 현실 인정, 대북 적대 폐기(한미전쟁연습, 경제 제재, 인권공세 등)를 결심하고 행정부와 의회를 정리하면, 대외정책에서 획기적인 점수를 따서 중간선거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란-미국 협상 방식처럼 핵 문제를 2단계로 넘겨야 한다. 1단계에서는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 관계 정상화, 연락사무소 설치, 일부 제재 완화,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실행하지 않는 핵실험 및 ICBM 시험 의 유예가 상응 조치로 제시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핵문제를 보다 장기적인 국제 핵군축과 군비통제 틀 속에서 논의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관건은 1단계 종전 평화-관계 정상화를 앞두고 비핵화만이 아니라 핵 동결이니 핵 감축이니 핵 관련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협상이 성사되고 성적을 올리는 지름길이다. 미국의 조야와 이에 유착된 한국의 사회정치세력이 조선 핵 보유 현실 인정, 대조선 적대정책 폐기를 받아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6년 현재 조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한 전략적 입지에 서 있다. 러시아라는 안보 후방과 중국이라는 경제 후방을 확보한 상태에서 미국과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미국 역시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의 부담 속에서 새로운 외교적 성과를 필요로 하고 있다. 양측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조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과거와 다르다. 하노이 이전의 조선이 아니라 하노이 이후의 조선이라는 현실을 미국이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조선이 미국의 정책 변화 의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2026년 조미대화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한국 정부, 찬물 끼얹지 말아야
이런 전망에 비추어 볼 때,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 순방 중 발표한 한국-EU 공동성명은 조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미국조차 북핵 현실을 전제로 새로운 접근법을 검토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낡은 '완전한 비핵화' 구호를 되풀이한 것이다. 더욱이 조러 조약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한 것은 예속적 한미동맹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공언이 아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것은 실현 불가능한 비핵화 구호가 아니라 전쟁 위험 제거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정작 한국 정부는 조미관계 개선의 여지를 넓히기보다 냉전적 사고와 대결적 담론을 재생산하는 데 머물렀다. 만약 향후 조미 간 물밑 접촉이 본격화된다면 이번 공동성명은 시대착오적 외교의 사례로 평가받을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