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민주화’ 시대 대안정당을 향한 각축
조희연(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순서>
1. ‘포스트-민주화’ 시대로의 이행과 제도정치 공간에서의 리더쉽 공백
2. 중도 개혁자유주의 세력과 (급진)진보 세력의 각축과 그 성격 3. 진보연합정당과 그 정체성
4. 진보정당 없이 복지국가 가능한가?
1. ‘포스트-민주화’ 시대로의 이행과 제도정치 공간에서의 리더쉽 공백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는 정치사적으로 보면 크게 3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시작된 개발독재체제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무너진 이후 ‘민주화체제’(이른바 ‘87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6월 민주항쟁은 군부독재체제를 타도하였고 민주주의를 시대정신으로 만들었지만, 선거를 통한 군부독재 세력의 재집권을 허용하였다. 이후 ‘변형권위주의’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한편에서는 구 독재 세력이 집권 세력으로서 민주주의적 개혁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도권 야당, 민중 세력, 시민 세력이 아래로부터 민주개혁을 요구하면서 투쟁하던 시기였다.
둘째의 시기는 반독재 민주정부의 시기이다(이른바 ‘97년 체제’). 1997년 외환위기에 의해서 매개되어 출범한 이 시기는, 반독재 민주 세력이 집권 세력이 되어 통치하면서 여러 민주개혁 의제를 국가정책으로 전환하여 다양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개혁을 실현하던 시기였다. 2004년에는 탄핵사건을 계기로 하여 원내 소수정당이었던 반독재 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는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성립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하여 세 번째의 시기, 즉 ‘포스트-민주화’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를 ‘신보수정권’(조희연, 2008a)’, 더 구체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신보수정권(신우파정권)’으로 규정한다. 이 신보수 정권은 근본적으로 친기업적이고 친자본적이며 반서민적인 60・70년대 개발독재 정권을 계승하면서도 ‘선진화’라고 하는 새로운 담론으로 보수의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제공함으로써 집권하였으며, 이로써 과거 ‘독재 대 반독재’, 혹은 ‘민주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를 역전시키는 변화를 동반하였다.
필자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성격규정을 넘어서, 포스트-민주화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서 성립한 ‘민주화’ 시대가 새로운 사이클로 들어섰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포스트-민주화 시기에 성립하는 정부의 성격은 다양할 수 있다. MB정부와 같은 신보수정권 뿐만 아니라, 새롭게 민주당이 재집권하여 새로운 ‘중도개혁자유주의 정부’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그것은 민주화 시기로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87년 체제’적 민주주의”의 소멸이자 민주주의의 새로운 구성적 현실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민주 대 반민주 구도’(87년 이전에는 ‘독재 대 반독재’, 87년 이후에는 ‘개혁 대 반개혁’)라고 하는 전선이 ‘87년 체제’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의미한다면, 포스트-민주화 시기는 이전의 구도의 소멸 혹은 주변화(일정한 과제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MB정부와의 쟁투에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를 의미한다. ‘87체제적 민주주의’가 미완성이었으니까, MB정부에 대항하면서 이를 ‘완성’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이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민주주의적 구성적 결과 자체가 달라졌고, 이는 진보에게 새로운 도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진보세력은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형성·대중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민주화의 과제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체감하다시피 ‘민주개혁의 물결’이 관통하지 못한 많은 사회적 영역들이 존재하고, 민주화투쟁의 대상이었던 자본권력과 경제권력은 이제 세계화를 배경으로 하여 더욱 강력한 존재로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반독재 혹은 민주개혁의 정신을 어떻게 포스트-민주화의 새로운 조건 속에서 혁신적으로 계승할 것인가하는 것이지 다시 민주화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민주정부 시대에서 신보수정권으로 이행한 두 가지 이유
그렇다면 민주화 시대에서 포스트-민주화 시대로의 이행의 계기가 된 신보수정권은 어떻게 성립하였는가? 역설적으로 반독재민주세력의 일부가 집권하는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혹은 ‘97년 체제’)를 경과하면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반독재 민주정부 시대에서 신보수 정권으로 이행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라고 하는 국민적 항쟁 속에서 당연하게 전제되고 합의되었던 개혁 의제들이―철저하건 불철저하건 간에―종결됨으로써 나타나는 위기이다. 즉 민주정부에 의해서 ‘어렵게 진행된’ 개혁 자체도 국민들이 ‘주어진(given)’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성취된 개혁’에 기대어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나아가 ‘당연히 합의된’ 개혁 의제들을 뛰어넘어 높은 수준의 개혁 의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보수 세력과 더욱 치열한 갈등이 초래되었고 그로써 민주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균열되어 갔다. 필자는 이를 일종의 ‘성공의 위기’로 파악한다
둘째, 그러나 민주개혁의 그러한 ‘성공’적 진전에도 불구하고―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파괴적 결과에 대하여 정책적으로 응전하지 못함으로써, 민주개혁의 성과가 퇴색되어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독재 민주정부가 ‘사회경제적 진보주의’를 구체화하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문제(예컨대 양극화, 소득분배 악화, 자영업의 몰락, 고용불안정, 비정규직화 등)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역으로 대중들은―정치적 개혁주의에 한정된―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갖게 되고, 이는―반독재 민주 세력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는 연쇄적으로―첫째와 다른 방식으로―반독재 민주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균열시켰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세력은 “독재에 대한 저항은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지만 세계화의 도전 앞에서 좌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속에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의 한 현상이라고도 하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은 ‘불리한 환경’이나 ‘제약조건’으로 ‘결과적인 양상’을 관용하지는 않는다.
결국 민주정부는 10년 동안 다양한 정치적 개혁을 수행했지만 결과적으로 폭넓은 사회경제적 개혁을 통해서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을 잘 먹고 살게’ 하지 못함으로써 보수세력에 정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대중들 사이에 ‘독재시대의 기억’이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을 때에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만들이 주변화될 수 있었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화의 성과’ 자체를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면서 대중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반독재 민주정부, 나아가 그들이 담지하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불만과 회의를 표현하게 되었다.
첫째가 ‘성공의 위기’라고 한다면, 둘째는 ‘실패의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독재 민주정부의 ‘사회경제적 성취’의 이러한 지체(遲滯)는 대중들의 불만을 ‘신개발주의’로 전유(專有)하는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이양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8년 한국에서의 이명박 정부나 대만에서의 마잉주 정부의 성립이 이런 의미이다.
반독재 개혁자유주의 정당의 정치적 리더쉽의 약화과 한국정치의 불안정
한국정당정치의 변화전망을 논의하는 이 글의 입장에서 이러한 반독재 민주정부의 ‘실패의 위기’는 반독재 민주 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필자는 포스트-민주화 체제의 등장이 정당 정치에 대해서 갖는 최대의 변화는 ‘반독재 중도개혁자유주의 정당’의 헤게모니의 현저한 균열이라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가 국민적 ‘시대정신’이 된 이후, 민주주의적 개혁을 향한 야당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민주당, 신민당, 열린우리당으로 상징되는―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갖는―반독재 민주 정당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들의 단일 리더십, 혹은 정치적 주도성이 현저하게 균열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 이후 여러 가지 실책을 겪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하락해야 할 객관적 계기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추월한 적이 없고, 반MB 전선에서 민주당이 과거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학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를 반독재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의 ‘내부-헤게모니의 위기’와 ‘외부-헤게모니의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자는 반독재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형성된 ‘민주주의 블록(민주화운동 블록)’ 내에서의 민주당의 주도성 혹은 단일리더쉽이 약화된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민주당의 대중과의 결합 혹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제도정치 공간에서의 큰 ‘공백’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은 제도정치의 공백상황은 상당 기간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백과 불안정은 진보정치에게는--물론 주체역량에 연동되어 있기는 하지만--일차적으로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민주화 시기의 국민정치의 불안정성은 한편에서는 보수적 지배질서가 헤게모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배제적·폭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도자유주의세력의 리더쉽이 균열되어 있음으로 인해서 현재의 상황이 상당히 ‘구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보수의 반북주의, 반(反)복지 친기업 성장주의, 뿌리깊은 친미주의 등으로 인하여 대중의 요구와 이해가 제도정치 공간에 수렴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제약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기의 민주주의 정치의 불안정성이라는 요인까지 겹치면서 더욱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것이다.
이른바 ‘연합정치’의 구조적 의미
필자는 이른바 ‘연합정치’라는 하는 독특한 상황도 바로 여기서 출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의회의 2/3를 보수세력이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지배가 헤게모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그것은 대중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치가 배제적·‘폭력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야권 리더쉽이 균열된 상황에서, 배제적·폭력적인 ‘정치적 적(敵)’에 대항하여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 및 진보정치세력 일반의 ‘연합’이 요구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만일 민주주의 블록 내부에서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의 리더쉽이 유지되었다면 반대로 그것을 진보세력이 ‘대체’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성숙되었다면, 연합의 당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연합정치 공간의 출현은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의 종언 이후 국민정치 공간에서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야권 단일리더쉽이 균열된 상황에 더하여, 반대로 진보정치가 그것을 대체할 수 없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출현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연합정치국면은 보수의 헤게모니의 불안정성,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야권 리더쉽의 균열(민주주의 블록에서의 내부-헤게모니 및 외부-헤게모니의 위기), 진보정치의 대체능력의 부재라는 요인이 어우러져서 나타난 것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필자는 이 ‘연합정치’가 요구되는 상황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도기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 중도 개혁자유주의 세력과 (급진)진보 세력의 각축과 그 성격
필자의 이런 시각에서 보면, 보수정당,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 (급진)진보정당은 이제 ‘포스트-민주화’의 새로운 시대적 조건 속에서 각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누가, 어느 정당이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대안정당’으로 자신을 정립할 것인가하는 각축이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제도정치 세력을 정치적 이념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구 독재체제 하에서 지배적 세력으로 존재했던 ‘구 독재적 보수 세력’이고, 둘째는 독재체제에 저항했던 반독재 개혁자유주의(liberal. 리버럴) 세력이며, 셋째는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급진적 분파인 (급진)진보 세력이다.
정치 세력들 간의 두 가지 각축
앞서 서술한 대로 국민 정치의 ‘공백’이 출현한 상태에서 여러 정치 세력들 간의 각축이 전개되는데, 이 각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과 (급진)진보 세력을 포함하는 개혁적․진보적 정치 세력 대 보수정치 세력 간의 각축이며, 다른 하나는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 대 (급진)진보 세력 간의 각축이다.
보수적 정치 세력은 ‘새로운 보수’의 이미지를 창출하면서--물론 그것은 집권 2년여 만에 현저히 균열하였지만 보수적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헤게모니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선진화’ 프로젝트를 통해서 노무현 정부로부터 이반하는 대중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접합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체제로부터 다시 대중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반하고 있다. 2009년 촛불시위나 2010년 6월 지자체 선거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더 소급하면 87년 체제 하에서 확립된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침범하는 ‘퇴행’적 행태들(예컨대 미네르바의 구속에서 보이는 새로운 사상 통제, 용산 참사에서 보이는 경찰의 폭력성, 각계의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감시―김제동에서 박원순에 이르는―에 대한 유무형의 탄압, KBS에 대한 직접적 언론통제나 MBC ‘PD수첩’ 불방사퇴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간접적인 언론통제 등)을 보임으로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새로운 균열의 싹들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균열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적․진보적 세력들의 정책의제들을 전유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기반을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개혁적․진보적 세력들이 이명박 정부로부터의 대중들의 다양한 이반들을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새로운 ‘희망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접합․결합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서 개혁자유주의정당이나 (급진)진보정당은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대안정당’으로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의 정치적 각축은 바로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대안정당의 지위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하는 것을 둘러싼 각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 대 (급진)진보 세력의 각축
이러한 각축 외에, 또다른 차원에서 민주주의 블록 내부에서 제도정치의 ‘공백’을 둘러싼 반독재 자유주의 정치 세력 대 (급진)진보 정치 세력의 사이의 각축이 존재한다.
이러한 각축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반독재 자유주의 정당이 새로운 변신을 통해서 ‘재(再)헤게모니화’하는 경로, 즉 대중의 신뢰를 재획득하여 야당 정치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다시 복원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의 엄청난 혁신과 변화가 있어야 하며, 참여정부 하에서의 스스로의 한계와 ‘패배’에 대한 냉엄한 성찰과 ‘급진적인’ 자기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권의 중심에 있을 때, 당시 보수 정당이 주도하는 여권이 정치적 지지 하락을 만회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다양한 변신에 맞서서 “‘수혈’을 통한 야당의 개혁적 재구성”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보수적 집권당이 개혁적 인물을 수혈한다거나 해서 야권의 개혁성이 퇴색하는 지점에, DJ는 제도정치권 외부에 있는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는 진보적 시민사회 인사들을 집단으로 때로는 개인으로 영입하는 방식을 통해서 스스로의 개혁성을 강화하여 보수적 집권당에 맞서는 전열을 정비하였고 대중의 신뢰를 재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퇴행성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고, 혁신을 수행할 강력한 리더쉽도 없는 실정이다. 현재로서 DJ식 ‘재헤게모니화 전략’은 현실성이 적은 셈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대로 민주당의 ‘외부-헤게모니의 위기’는 주체적 역량에 의한 ‘질서있는 혁신’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대중으로부터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여기서 개혁자유주의정당에는 두가지 상반된 방향의 지향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보수층을 획득하는’ 보다 온건한 전략지향(예컨대 DJ의 ‘뉴디제이 플랜’ 처럼)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당내 ‘진보담론의 부상’에서 보여지는 ‘좌클릭’의 전략지향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필자는 ‘정치적 개혁자유주의정당’에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정당’으로의 자기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조희연, 2007a). 필자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한국정치의 불안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중들의 높은 요구와 제도정치 간의 큰 괴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이념적으로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정책적 콘덴츠 상에 있어 대단히 높은 수준의 사회경제적 의제를 담지하지 않는한, 대중들의 앞서가는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예컨대 최근 무상교육이나 ’건강하나로 캠페인‘에 대해서 ’좌익 포퓨리즘‘이라고 보수언론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개혁자유주의정당은 최소한 내용상으로는--보수언론의 표현을 빈다면--더욱 ’좌익포퓨리즘‘적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조희연, 2010d).
다음으로, (급진)진보 정치 세력이 반독재 개혁자유주의 정당의 헤게모니 균열의 틈새를 비집고 대약진하는 경우이다. 진보 정치 세력의 핵심적인 정책 지향이자 정체성이 ‘반신자유주의’인데 이는 반독재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좌절’한 바로 그 지점을 돌파하는 불가결한 지향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급진)진보 세력이 대체 정당으로 약진하기 위해서는, 힘겨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약자 집단들의 대중 투쟁과 결합하면서 (급진)진보 세력의 대중적 기반 자체를 확장해 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연한 헤게모니 형성 전략’을 통하여, 이명박 정부로부터 이반하는 대중들, 그러나 반독재 자유주의 정당을 신뢰할 수 없는 대중들을 획득하여 진보 정당의 지지자로 전환시켜 내는 것이다.
중도 개혁자유주의세력 대 진보정치세력의 각축지점들
중도개혁자유주의세력과 (급진)진보정치세력 간의 각축에는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급진)진보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 대 진보세력 간의 각축(경계 재획정 경쟁)에서 어떻게 헤게모니전략을 구사할 것인가하는 것이 핵심쟁점으로 된다.
이러한 각축에서 두가지 차원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는 중도개혁자유주의세력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둘러싼 각축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중도자유주의세력과의 각축에서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이른바 친(親)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얼마나 대중적인 정치적 쟁점을 만들 수 있는가하는가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반독재 민주정부의 친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하여 ‘중도자유주의세력 대 진보세력의 각축’은 ‘친(親)신자유주의 대 반(反)신자유주의’의 정체성 각축으로 인식되었다. 중도자유주의세력은 독재에 저항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세계화의 도전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에 포획됨으로써 보수세력과의 차별성이 희석되었고 반대로 진보세력은 중도자유주의세력을 친신자유주의세력이라고 공격했고 그것이 일정하게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중도자유주의세력의 민주주의 블록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균열도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진보정치세력이 민주정부 시기의 정책, 그것을 주도한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정체성을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규정해낼 수 있는가하는 것과, 다른 한편에서 중도자유주의세력이 스스로 과거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얼마나 대중들에게 가시적으로 전환시켜 낼 수 있는가하는 것에 따라 헤게모니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반대로 중도개혁자유주의세력의 입장에서는 과거 시기의 이른바‘ 친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어떻게 전환시켜 낼 것인가하는 과제가 존재할 것이다). 만일 정체성 각축에서 진보정치세력의 담론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중도자유주의세력은 내부적으로 친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혹은 친FTA대 반FTA의 대립으로 분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진보적 자유주의’ 등의 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중도개혁자유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기존의 중도개혁자유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진보적 의제들을 자유주의의 확장 속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담론적 노력으로 이해된다.
둘째, 중도자유주의세력 대 진보세력 간의 담론적 각축이다. 담론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의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해석과 전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치집단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담론을 개발하고 대중화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중도자유주의세력의 내부-외부 헤게모니의 위기는 그들의 담론적 자기혁신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국민정치 공간에서의 여러 정치세력들이 지자체 선거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진보적 요구를 수렴하기 위하여 ‘급진화’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박노자(2009)가 ‘더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고 표현한 것처럼, 보수세력은 ‘중도실용정책’을 강화하게 될 것이고, 중도자유주의세력은 스스로의 리더쉽 균열을 만회하기 위해, 대중들의 요구와 이해를 수렴하는 방향에서의 ‘진보화’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로의 변화가 시도될 것이다(MB정부의 ‘중도실용정책’도--내용상의 이중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이런 의미에서 ‘좌클릭’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진보정치세력은 대중의 급진적 요구들을 진보담론의 확장 속에서 수렴하려는 노력을 당연히 수행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민주주의 담론을 확장한다면 급진적 민주주의 담론이 될 것이며, 사회경제적 담론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생태 사회(적)민주주의’적인 어떤 담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진보정치세력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도자유주의세력의 대중적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급진적으로 전유하는 담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 ‘담론적 경계 투쟁’에 따라서, 국민정치의 헤게모니의 향방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축의 결과로서의 향후 정당 정치 변화방향
향후 한국 정당 정치 질서의 변화 방향을 예상해 본다면, 아래 그림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즉 ①보수(우파) 정당이 패권적 지위를 갖는 일본형 정당 정치 경로(특별히 이른바 ‘55년 체제’), ②진보 정당이 착근하지 못하고 보수(우파) 정당과 중도자유주의 정당이 경쟁하고 그들 간의 주기적인 정권 교대가 이루어지는 미국형 정당 정치 경로, ③보수(우파) 정당과 진보 정당이 기본 축으로 경쟁하고 거기에 다양한 군소 정당들이 경쟁하는 유럽형 정당 정치 경로이다. 물론 여기에 더욱 ‘우파적인 구도’도 가능하고 더욱 ‘좌파적인’ 경로도 가능할 것이며, 각 유형의 혼합적 상태도 가능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50년 동안의 오랜 보수 정당 패권 체제인 ‘55년 체제’에서 2009년 8월 하토야마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고 최근 다시 ‘간 나오토’ 정부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 중 한국 정치가 어느 경로를 밟을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이고 우리 모두가 실천적으로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자유민주주의적 개혁 단계에서 사회(적)민주주의 개혁 단계로의 병목 지점
필자는 한국 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자유민주주의적 개혁 단계를 ’성공‘적으로 거치면서 이제 사회(적) 민주주의 개혁 단계로 가는 병목 지점에 직면했는데, 그 병목 지점을 돌파하지 못하고―’신(新)진보 정권‘이 아니라―조야한 ‘신보수 정권의 출현’이라고 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행의 경로로 가지 못하고 신군부 정권이라고 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듯이 말이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행의 경로로 가지 못하고 신군부 정권이라고 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듯이 말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하에서 대중들이 고통받으면서 87년으로 가는 대중적 동력이 만들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권위주의적 신보수정권 하에서 대중들이 고통받으면서, 본격적인 사회(적)민주주의단계 혹은 복지국가로 가는 동력이 창출될 것으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①의 가능성(보수 정당이 패권적 지위를 갖는 일본 55년 체제형 정당)을 극복해 내면서 ②의 단계(진보 정당이 주변화되면서 보수 정당과 중도자유주의 정당만이 주되게 경쟁하는 정당 질서)를 넘어 ②와 ③의 중간 형태 나아가 ③의 상태(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주되게 경쟁하는 유럽형 정당 질서)를 현실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의회의 보수 독점을 깨뜨리고 더욱 다원적인 의회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하며, 의회 내부에서 ‘사회경제적 진보주의’를 담지하는 개혁적․(급진)진보적 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진보연합정당과 그 정체성
필자는 60·70년대 독재세력의 근대화담론에 대항하여 민주화 담론이 존재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민주화담론은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으로까지 되었다. 이제 보수가 이를 선진화담론(세계화담론)으로 전환하게 됨으로써 대항담론의 새로운 재구성과 그것의 정치적 담지주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2010년 지자체 선거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과 같은 본격적인 복지의제(혹은 생활정치 의제)가 대중 속에 서서히 뿌리내려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의 확산도 이를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이는 진보세력이 강조했던 반신자유주의 및 복지와 관련된 ‘대안적 경제정책들’의 대중심리적 공간이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연합정당’의 다양한 가능성
제도정치 공간에서의 공백, 또한 한국정치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이 공간에서 (급진)진보정당의 최대약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진보연합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진보연합정당과 관련해서는 ‘빅텐트론’과 같이 민주당과 민노당, 진보신당, 국참당을 아우르는 범개혁진보정당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에서 이는 반독재 개혁자유주의정당과 (급진)진보정당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대연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필자의 시각에서는 곧 민주당도 분열하게 될 것이고, 민노당도 분열하게 될 것이며, 이는 또다른 ‘정계개편’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한편에서 중도개혁 자유주의 연합정당이 만들어지고, 다른 한편에서 진보연합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고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진정한 쟁점은 이러한 한국정치의 재편에서 그 경계가 어디가 될 것인지하는 점이다.
이 절에서는 후자의 진보연합정당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필자는 진보연합정당은 (급진)진보정당 자체의 대중적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동시에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에 대한 ‘위협효과’를 통해서 그 혁신을 촉진하게 됨으로써 통해 한국정치의 한단계 업그레이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2월 3일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그리고 2010년 6월 지자체 선거를 둘러싸고 진보정당의 통합문제가 민주주의 블록 내부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진보연합정당과 관련해서도, 그 성격과 외연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 필자는 “새롭게 민노당, 진보신당과 그에 포괄되지 않은 다양한 진보적 정치세력들(시민사회 진보파와 노동좌파 등)을 통합하는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외연이 확장된 진보연합정당’을 연상한다
제도정치공간에서의 중도자유주의세력과의 헤게모니 각축, 더 확대하면 보수세력과의 헤게모니 각축에서 진보정치의 공간의 확대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분립(分立)이 전술적으로 (급진)진보정치세력의 개입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게 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진보신당의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 민주노동당의 비(非)헤게모니적 조건들을 생각할 때, 진보연합정당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민주노동당에는 현재 지식인적 요소가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 그람시적 의미에서 헤게모니의 확대를 위해서도 이는 현저한 장애물이다.
물론 필자는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이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넓은 시각에서, 기존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 소수자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진보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새로운 원칙에 대한 고민, 구좌파적 정치성을 뛰어넘는 신좌파적 정치성의 획득, 보수정당과 중도자유주의정당의 헤게모니로부터 이반한 다양한 성격의 급진적 정치성들을 전유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두 진보정당의 단순 재결합이 아니라,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의 구성”, 나아가 ‘대안정당의 구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진보정당에게도 진정한 도전이 제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렵게 장외(場外)에서 투쟁하는 집단에게는 도덕적 우월성이 부여되고 일정한 문제점은 관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프레미엄을 여전히 진보정당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되고, 제도권력에 근접하게 되면 될 수록 ‘성찰적 진보’의 시각이 필요하게 된다. 보수세력이나 중도개혁자유주의세력에게 던지는 비판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스스로를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헤게모니적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야당의 ‘분열’에 대한 우리의 비판에 비추어 진보정당의 ‘분열’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단기적 목표로서의 원내교섭단체?
(급진)진보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여러 가지 주체적 조건들이 열악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대중들에게 여전히 반공주의적 의식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대중적 규율 효과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런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의 어려움을 감안하면서도, 국민정치 공간의 공백을 십분 활용하면서 어떻게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면서 진보 정당의 기반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급진)진보 세력이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 이런 과제가 성취된다면, 진보정당이 보수정당과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의 틈새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단계로 이행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보궐선거에서이기는 하지만, 광주에서 오병윤 민주당 후보가 투표자의 44%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은 진보정치세력들의 지혜로운 응전이 있다면, 필자의 이런 기대가 결코 공상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급진)진보정치세력의 지혜로운 응전을 통해서, 중단기적으로 진보연합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발전해가야 하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적 지지도도 예컨대 15%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러한 중단기적인 기대가 실현된다면,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대체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도 현실화된다고 생각한다.
복합적 진보정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필자는 정당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도정당들이 수렴해야 하는 대중들의 요구와 이해가 다양하다는 점을 논의해야 할 것 같다.
진보정치는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제도화된 국민정치의 공간에 진보정치가 개입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 아니다. 진보정치가 대중의 삶의 영역으로 깊숙이 뿌리내려가면서 진보정치의 대중적·사회적 기반이 확장되는 것과 같이 가지 않으면 그것은 현실화될 수 없다. 즉 진보정치는 국민정치 그 자체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대중정치와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2010년 6월 지자체선거와 7월 보궐선거결과는 MB식 정치와 통치로부터의 ‘이반’이지 그것이 ‘적극적인 수렴’을 의미하는 것도 정확히 말해주었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이반들이 어떤 정치적·사회적 방향에서 수렴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오히려 향후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무상급식이나 무상복지와 같은 복지프레임이 부상한다는 것은 이미 중도자유주의적 차원을 뛰어넘는 사회(적)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진보정치에 대해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회경제적 좌우(左右)의 분포에서 대중들을 전유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기존의 좌파 정치, 진보정치가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대중의 정치성을 전유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복지프레임과 이것으로 수렴되지 않는 대중들의 다양한 민주적 요구와 이해들을 어떻게 ‘접합’시킬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게 된다.
보수세력・중도자유주의세력에 대립하여 진보정치는--지난 20년간의 민주화 국면에서--넓은 의미의 사회(적)민주주의세력・/진보적 민족주의 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포스트-민주화 시기에는 사회(적)민주주의세력/진보적 민족주의 세력이 제도정치적 공간에서 반독재 중도세력과 각축하는 한편(국민정치와 진보정치의 관계의 차원에서), 다른 한편에서 그것으로 포괄될 수 없는 대중의 다양한 정치성들이 출현한다. 탈민족주의 지향, 생태주의적 지향, 급진적 섹슈엘리티, 일상생활에서의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요구 등 다양한 대중의 정치성이 출현하고 있다.
예컨대 ‘4대강 살리기’와 같은 환경의제들은 과거 독재 및 개혁 의제들로 수렴되지 않는 새로운 이슈다.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저항은 과거 개발독재정권의 각종 개발드라이브 정책이 본질적으로 ‘토건국가’적 정책기조 위에서 수행되었고, 개발독재에 대한 저항 속에서도 그것이 쟁점화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제 생태적 관점에서 이것이 쟁점화될 수 있는 대중의식적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포스트-민주화 시기의 진보주의자가 생태주의자 혹은 친환경주의자가 아니면 않되는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경제적 진보정당이 어떻게 이를 수렴할 것인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복지프레임은 당연히 생태복지국가 프레임이 된다.
이처럼 복지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구와 다양한 민주적 요구들을 접합시켜 내는 정치적 실천을 필자는 ‘복합적 진보정치’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양한 민주적 투쟁들을 ‘사회경제적 투쟁’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복지정치 혹은 반신자유주의적 정치 속에 헤게모니적으로 접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진보정치 속에서 (급진)진보정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게 될 것이다. MB정부의 대중적 기반의 균열은, 반신자유주의적 전선과 다양한 민주적 투쟁들을 접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대중과 진보정치의 결합의 공간이 확장됨
선거로부터 배제된 존재들
복합적 진보정치는 기존의 ‘선거정치’에 참여하는 ‘대중의 급진화’라는 차원 뿐만 아니라, 선거정치의 공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선거민주주의의 배제된 존재들’을 참여케 하는 과제를 포함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6월 지자체 선거는 우리에게, 여전히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로 독해되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를 통해 동원되는 집단들이 권위주의 정치엘리트(구 독재를 배경으로 하는 엘리트)를 선택하기도 하고, 동시에 민주주의에 의해 동원되면서 반독재 엘리트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경쟁의 프레임을 넘어서서, 진보적 의제들--복지라고 부르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건--에 의해서 대중들이 동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투표율도 이전에 비해 약간 올랐지만(54.5%로 2006년에 비해 2.9% 상승)의 ‘선거시장’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중들이 광범위하게 이번 선거에 참여하게 된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희망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진보정치가 갈 길도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MB정부의 신권위주의적 경향--김제동 사건 등--20-30대의 젊은 유권자들을 선거정치에 참여하도록 했지만 이들이 진보적 의제들을 매개로 진보정치와 결합하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자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은 기존의 ‘선거시장’에 참여하는 대중들을 진보화시켜가는 것과 함께, 기존에 민주주의에 의해서 배제된 존재들의 정치적 참여를 확장해야 하는 과제, 즉 ‘선거시장’의 '규모‘ 자체를 확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복합적 진보정치는 MB정부에 의해 수용되지 않는, 혹은 MB정부로부터 나타나는 다양한 이반들 속에 체현된 대중의 새로운 정치성을 진보정치세력이 획득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제도정치 공간에서의 공백을 이야기했는데, 이는 단지 ‘정치적 지지(支持)의 재편’을 둘러싼 진통만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정치가 담아내지 못하는 대중들의 새로운 감수성, 요구, 이해(이것을 포괄적으로 대중의 政治性이라고 표현해보자.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정치적인 것’이라고 표현해도 좋다)가 확산됨으로써, 제도정치와 대중, 혹은 ‘제도정치와 사회’의 괴리가 확대됨으로써 나타나는 진통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의 새로운 정치성을 어느 정치세력이 전유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즉 대중적 영향력의 경계를 둘러싼 여러 정치세력 간의 각축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급진)진보정당의 경우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기존의 구 좌파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여기에 우리의 과제의 독창성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기존의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둘러싼 각축이 존재하는 반면에, 이른바 ‘포스트-근대적’ 쟁점들--예컨대 생태적 쟁점과 생활세계 의제, 여성의제 등--을 둘러싼 각축도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의 정치’도 작동하고 있다. 이른바 ‘삶정치적(bio-political)' 쟁점들을 둘러싸고도 각축이 전개된다. 또한 젊은 세대들에서 표현되는 자율과 자유의 요구와 지향, 정보화 시대의 '사이버행동주의(cyber activism)'과 자율적인 자기표현욕구 등도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정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이나 진보신당의 신당원이 상징하는 대중의 정치성은 기존의 구좌파적 프레임을 넘는, 급진적 자유주의 혹은 자율요구, 주체적 참여의 정치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MB 식의 신권위주의와 대척점에 선 진보적 합리성의 요구이기도 할 수 있다. 구좌파적 정치성과 신좌파적 정치성을 구분한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대중들의 요구와 이해, 지향, 감수성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참여당이나 진보신당이 ‘신(new)정당’의 이미지가 있고 민주당과 민노당이 ‘구(old)정당’의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향후의 정당개편에서 어떻게 계승될 것인가하는 것이 일종의 ‘관전(觀戰)’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다. ‘심상정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대중의 정치성을 진보정치가 어떻게 포괄하는 가에 따라서 중도개혁자유주의정치와 (급진)진보정치의 경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4. 진보정당 없이 복지국가 가능한가?
필자는 이미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를 매개로 하여 저항담론이 급속하게 ‘복지담론’ 혹은 ‘복지프레임’으로 이동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를 전면화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그것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담지될 것인가하는가하는 각도에서, “진보정당 없는 복지국가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서구의 경험에서 볼 때, 그리고 한국정치의 향후 전망을 타산하는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대중적 진보정당의 발전 없이 복지국가가 가능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진보연합정당의 발전은 한국민주주의, 나아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최소한 진보정당의 위력적 성장이 보수정당과 중도개혁자유주의 정당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가 강조하는 ‘선진화’도 사실 선진국적인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일종의 ‘사회적 내전(內戰)’상태에 있으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 사회적 내전 상태가 정치에 반영되어, 한국정치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이제 한국의 정치가 이러한 ‘내전’적 상황을 ‘’갈등‘적 상황으로 바꾸는 정치의 확장된 역할 없이, 보수가 이야기하는 선진사회로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진보정당 발전의 중대한 정치사적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동질성과 집단적 평등주의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국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 최근에서 한국사회의 ‘동질성’ 변수와 거기에 기인하는 대중들의 ‘높은 기대수준’을 논의에 끌어들이고자 한다. 아시아 민주화 국가와 비교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논자(조희연 편, 2008: 조희연․․김동춘․오유석 편, 2009)는 요즈음,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사회의 ‘인종적・사회적・문화적 동질성’이라고 하는 요인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국가들과 비교하여, 한국사회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물론 최근에 급속히 ‘이질화’되고 있지만--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질성은 한국민들로 하여금 이웃이나 다른 사회성원과 같은 수준의 삶을 누리고 싶고 나도 그들과 같아지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같고자 하는 정서’는 한편에서는 치열한 개인 간 경쟁의 에토스로도 발휘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정서로도 작동한다. ‘사촌이 논사면 배아프다’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읽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한국사회의 동질성에서 연유하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자는 한국사회구성원들의 높은 기대수준을 만들어내게 된다. 필자는 한국의 치열한 교육경쟁도 후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 사회의 지배질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현실로서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이를 수용하는 것을 통해서 유지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동질성에서 기인하는 같고자 하는 정서는 높은 기대수준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기대치와 현실수준 간의 큰 괴리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사회의 역동성(dynamics)의 근원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본회퍼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이야기했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평등지향적 인간과 불평등한 사회’가 존재하며 그 큰 괴리가 정치사회적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말이다.
이를 한국정치와 연관시켜 보자.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 갈등과 적대는 제도화된 정치와 국가를 통한 통치(좁은 의미의 정치와 통치를 넓은 의미에서는 정치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를 통해서 수렴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수렴해내는 정치와 통치는 지배적 집단의 태도와 종속적 집단의 태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지배적 집단은 한국정치와 통치가 종속적 집단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폭넓게 수용해내는 것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행위하며 그런 점에서 대단히 비타협적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에서의 사회경제적 정책의 실패는 주체적 요인과 함께 반독재 중도리버럴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하는 식으로 과잉규정하면서 저항한 보수의 거대한 저항도 한 몫했다. 노무현 정부가 좌절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것이 높은 기대수준과 더욱 격차를 벌리면서,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요구가 정치와 통치에 의해서 수렴되지 않을 때 종속적 집단은 저항하거나 체념・순응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서술한 대로 한국사회의 오랜 동질성과 거기서 발원하는 잠재적인 평등주의적 지향은 최소한 현재까지 ‘저항적 태도’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국제적 조건은 지배적 집단의 비타협성을 더욱 강화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종속적 집단에 대해서는 저항적 태도 보다는, 순응적 적응의 태도를 강화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보수에게는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일 것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불안정한 것은 정당정치인 개개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이러한 높은 기대수준을 갖는 대중들의 사회적 요구와 제도화된 정치 간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2007년 이른바 ‘진보논쟁’에서 조기숙 교수는 최장집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참여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 맞습니다. 과거처럼 카드채를 이용하여 경기부양을 하지 않으니 성장이 둔화되었고, 재정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복지를 본격적으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극화 때문에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면 미국은 OECD국가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민주주의로서 가장 실패한 나라입니까?”(조기숙. 2007). 조기숙 교수의 질문은 현재의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그때 필자의 대답은, “미국 민중과 한국의 민중의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하에서 회자되었던 ‘민주주의의 위기’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불평등이나 양극화--그것을 지식인들이 다르게 평가하더라도--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분노하는 민중들이 존재하기 때문(비록 그 분노가 때로는 명확한 이념적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그 분노가 ‘보수적 희망’으로 견인되더라도)이라고 생각된다. 기대수준이 대단히 높은 한국의 민중들은 오늘도 ‘불만에 차 있다’. 사실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굳이 ‘낙인화’ 효과를 제어하기 위해서 중·고소득층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보수의 항변에 대해서도--절약되는 예산이 저소득층의 또다른 복지를 위해서 투여된다는 보장이 있다면--충분히 합리적 토론과 문제제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제도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으로 인해서 ‘무상급식을 반대하면 역적(逆賊)’이라고 하는 식으로 한국사회가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여정부 하에서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융탄폭격’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대중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중의 ‘상식’이 되고 이것이 역으로 보수정권인 MB정권에게도 ‘멍애’와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종의 ‘부메랑효과’가 작동하는 셈이다. 2010년 8·15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보수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도 여기에 존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비록 분단체제의 효과로 인하여 대중들이 명확한 정치적·계급적 언어로 스스로의 요구와 이해를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단적 평등주의에 기반한 대단히 높은 사회경제적 요구가 존재하고 정치에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러한 정치성을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이 담지할 것인가 (급진)진보정당이 담지할 것인가하는 진정한 각축이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정치와 대중 간의 큰 괴리, 거기서 연유하는 대중의 큰 정치적 불신은 진보정치가 약진할 수 있는 큰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도정치와 대중의 괴리 속에서, 최장집교수가 이야기하는 ‘열망과 좌절의 사이클’도 바로 이러한 ‘제도정치와 대중의 크나큰 괴리’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최장집 교수는 대중의 좌절을 거리의 투쟁동력으로 유실시키지 말고 ‘좋은 정당’을 만들기 위한 건설적인 동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강준만교수는 ‘열정의 제도화’를 이야기한다. 필자는 이러한 지적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괴리가 진보정당의 확대를 통해서 ‘제도정치와 대중 간의 괴리’가 구조적으로 좁혀지면서 중장기적으로 극복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때 좋은 정당은 만들어질 수 없고, 열정은 제도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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