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스룹바벨은 다윗의 자손 브다야의 아들로서 여호야긴 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하여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포로 귀환자들을 인솔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1. 포로 귀환
스룹바벨은 다윗의 혈통을 지닌 자로서, 유다 백성이 이방의 포로 생활을 하던 중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지도자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B. C. 539년 10월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이듬해인 B. C. 538년에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케 하였는데, 그때에 스룹바벨은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았습니다. 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바가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이방의 포로가 된 지 70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의 성취로 1차 포로 귀환 때에 사만 구천팔백구십칠 명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고, 스룹바벨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유다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비록 다윗 왕조가 멸망받았지만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언약이 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2. 성전 재건
스룹바벨은 유다 포로 귀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훼파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유다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의 손에 파셨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세워지고 성전 곳간에 보물이 많이 쌓였지만,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고 곳간에 있는 보화들이 이방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유다 백성의 포로 됨을 예언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케 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는 곧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은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표하기도 했습니다.
3. 스룹바벨에 관한 예언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 대한 축복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은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시고 스룹바벨을 높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중에 포로가 된 유다 백성을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삼아 구원해 내셨듯이 죄의 포로가 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메시야를 보내시어 죄에서 자유케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예언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에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는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오직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권만이 구원받은 백성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스룹바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며, 유다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이 성취되고야 말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제 1/ 포로 귀환(느 7:6-7)
1. 자성의 시간이었던 포로기
1. 자성의 시간이었던 포로기
1) 죄악으로 인해 포로 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약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친백성이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자기 거처를 잃고 이방의 포로 신세가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악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교훈을 섬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각종 죄악에 심취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준열한 책망과 더불어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심히 사랑하시며 동시에 당신의 백성으로부터도 온전한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당신의 백성이 이 같은 기대에 부응치 못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진노하시며 심판하실 것입니다.
▣ 죄악으로 인해 포로 됨
죄로 인한 고난
시 89:32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시 89:32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타락으로 인한 고난
벧후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벧후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 포로 생활 중에 고통받음
이스라엘 백성은 영광스런 백성이면서도 범죄함으로써 그 영광을 상실하고 이방 땅의 노예로서 비참히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당시의 이스라엘은 육체적인 비참함은 물론이거니와 영적으로도 심히 탄식하며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닌 종이요 노예로서 바벨론사람을 섬기고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의 지배권 아래서 신음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지난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연주했던 수금으로 바벨론 백성의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포로 생활 중에 고통받음
국가적인 고난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의인의 영적인 고난
시 77: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시 77: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3) 고통 중에 자신을 돌아봄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육체적, 심적 고통이 심화되면 될수록 그들의 영혼은 자신들의 지난날의 죄악과 허물을 되새기며 깊은 고뇌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로 그들은 고통 가운데서 그 옛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스러운 죄인이었던가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에게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 결코 무익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고통 중에 자신을 돌아봄
고통이 주는 유익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룸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 하나님의 은혜로 귀환함
1) 인간 스스로는 절망적이었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選民)이었으면서도 선민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물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분만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것만을 추구하는 참으로 악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차라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민족의 삶보다 더 악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약 70년 간의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죄 된 모습을 청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서는 스스로를 구원하거나 개선시킬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실상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품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라 할지라도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요 스스로는 도무지 개선될 수 없는 절망의 존재일 뿐입니다.
▣ 인간 스스로는 절망적이었음
의인은 없음
롬 3:10-18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이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0-18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이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2) 하나님이 돌아보심
스스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된 땅에서 감히 옛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약하고 보잘 것없는 백성을 돌아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또다시 그 옛날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갔던 아름답고 복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마냥 간과하시거나 그들을 영영히 멸망에 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은 잊지 않으십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그 크신 은혜로 인해 이스라엘은 비로소 구원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돌아보심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시는 주
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포로 된 자를 돌아보심
렘 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 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3.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1)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을 떠나 자행 자지하던 죄악된 이스라엘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 바벨론이라는 신흥 이방 세력을 이 역사의 전면에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그들을 잠시 잠깐 채찍질하신 것뿐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포로 된 자리에 영영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을 구원하심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2)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 신흥 제국 바벨론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로 당신의 심판을 대행토록 섭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바벨론이 자고하게 되자 하나님은 다시 바벨론을 폐하시고 바사(페르시아) 제국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 고레스의 마음을 주장하시어 바벨론의 모든 유대인 포로들을 본토로 귀환하도록 허가하는 칙령을 내리도록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포로들이 본토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고 이스라엘 종교를 부흥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 주도록 간섭하셨습니다. 스룹바벨은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예루살렘 현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제1차(B. C. 537년경)로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역사에 깊숙이 개입해 계시면서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이 역사의 방향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모든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행 17:24-26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 17:24-26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3) 당신의 뜻대로 이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만유의 대주재요 역사의 참된 주인으로서 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역사의 나아갈 바를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스룹바벨의 예루살렘 귀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에 따른 결과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결코 없습니다.
▣ 당신의 뜻대로 이끄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선하신 경륜
엡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주제 2/ 성전 재건(슥 4:8-10)
1. 하나님과의 단교(斷交)의 시간
1)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과는 교제하지 않으심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이기에 부패하고 타락한 인생들과는 결단코 교제를 나누지 않으십니다.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그 무엇보다 성결과 거룩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결치 못한 자로서 하나님께 접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죄악을 참으로 가증히 여기시며 심히 미워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범죄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인생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죽음의 형벌의 틀인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실 정도로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과는 교제하지 않으심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
렘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렘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라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라
2) 하나님은 스스로 성전 문을 닫으심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과는 결코 교제를 나누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는 당신이 친히 세우신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 군대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히 훼파케 만들어 버린 데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범죄를 더 이상 참아 보실 수 없으셨기에 스스로 당신의 임재 처소인 성전 문을 폐쇄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이 같은 단교 선언은 우리 인생에게는 곧 절망과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실로 생명과 구원과 진리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관계를 끊어 버린 존재에게서 희망이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스스로 성전 문을 닫으심
하나님의 슬픈 소망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가증한 제사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3) 고난 중에 자신들을 돌아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최악의 상태를 바벨론이라는 머나먼 이방에서 보내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하여 자신들의 지난 허물을 깊이 성찰하는 복된 계기로 삼을 수있었던 것입니다.
▣ 고난 중에 자신들을 돌아봄
징계의 유익
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2. 제1차 성전 재건
1) 먼저 예배를 부흥시킴
스룹바벨은 바벨론의 모든 유대인 포로들을 본토로 귀환하도록 허가하는 칙령을 내렸던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에 의해 예루살렘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게 됩니다. 그리하여 스룹바벨은 그렇게도 대망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일단의 유대인들을 대동하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향해 건너왔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힘을 합하여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그 곳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예배를 재차 부흥시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앞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 드러내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 먼저 예배를 부흥시킴
창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벧엘로 올라가는 신앙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사단의 방해 공작이 펼쳐짐
스룹바벨이 고레스의 명에 의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한 지 이년 이월에 마침내 하나님의 전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 역사에 두 가지 위험한 일이 따랐습니다. 그 첫번째는 옛 영화로운 솔로몬 성전의 위용을 기억하던 여러 노인들이 현 성전의 보잘 것없는 실상을 보고 깊이 탄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성전 건축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고 그 건축 공사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힘을 썼습니다. 한편 이러한 난제들의 이면에는 분명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려는 사악한 마귀의 간교한 계획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 사단의 방해 공작이 펼쳐짐
행 4:1-3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행 4:1-3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부흥을 시기하는 사단의 세력
행 6:11-12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행 6:11-12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3) 거듭되는 시련이 닥침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자 했던 무리들은 성전 건축을 적극 후원했었던 고레스의 뒤를 이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스라엘의 성전 건축 사업을 마치 반역이라도 한 듯이 고소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닥사스다의 조서로 성전 건축 공사는 약 16년 간 중단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따를 수 있습니다.
▣ 거듭되는 시련이 닥침
거듭되는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3. 제2차 성전 재건
1) 하나님이 환경을 조성해 주심
바벨론 제국을 패망시키고 신흥 제국으로 등장했던 바사는 다리오 왕이 재위하던 시기(B. C. 522-486년경) 때부터 제국 내는 안정된 정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유대 땅은 바사 왕 다리오의 인준에 따라 종교적 특수성이 인정되는 지역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매우 유익한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가는 길을 친히 인도해 주시고, 더욱이 그 모든 여건과 상황을 안정되게 조성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배려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 바로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새 소망의 날이 주어질 것입니다.
▣ 하나님이 환경을 조성해 주심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삶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여호와께서 인도하심
시 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 하나님의 일꾼들이 헌신적으로 일함
스룹바벨 당시 활약했던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는 성전재건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백성에게 알리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바로 이때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백성들의 심령 상태를 고무시켜 마침내 그 동안 중단되었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백성들은 많은 장애 요인으로 인해 성전 건축에 대한 열의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그 백성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는 지도자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 어린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나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최선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 아름다운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주께 대한 뜨거운 충성과 헌신만이 요구됩니다.
▣ 하나님의 일꾼들이 헌신적으로 일함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함
신 6: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신 6: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소명자의 열심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헌신하는 자에게 상급이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제 3/ 스룹바벨에 관한 예언(학 2:23)
1.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성경을 통해 볼 때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스알디엘의 아들이며 여호야긴의 손자로도 언급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즉 스알디엘이 아이가 없어 조카로 자기의 대를 이었거나 혹은 브다야가 그의 형 스알디엘이 사망한 후 형수와 결혼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가 다윗의 족보에 속한 자임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 스알디엘의 아들
브다야의 아들
대상 3: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
대상 3: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
스알디엘의 아들
느 12: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및 예수아를 좇아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이러하니라 제사장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느 12: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및 예수아를 좇아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이러하니라 제사장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다윗의 후손
이처럼 성전 재건의 주역이요 이스라엘 회복의 빛나는 일꾼이었던 스룹바벨이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큰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스룹바벨이 다윗의 후손 됨을 강조한 것은, 다윗의 후손 곧 메시야를 통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 건설과 인류의 구속이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위해서라 하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메시야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과 그분의 초월한 능력으로써만이 그 모든 일들을 이뤄 낼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 하겠습니다. 정녕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않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란 결단코 있을 수 없습니다.
▣ 다윗의 후손
다윗의 족보에 등재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스라엘 신앙을 부흥시킨 자
스 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스 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3) 바벨론의 슬픔을 극복한 인물
예루살렘에 파견된 총독이자, 제1차 포로 귀환자요, 성전재건의 주역이었던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뜻은 역사적으로 매우 슬픈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뜻은 다름아니라 '바벨론의 후예' 라는 뜻과 '바벨론에 대한 슬픔' 입니다. 결국 스룹바벨이라는 이름 속에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 대한 깊은 애수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가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그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대역전극을 펼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계십니다.
▣ 바벨론의 슬픔을 극복한 인물
고레스의 종
스 1: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스 1: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하나님의 종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2. 하나님의 종인 스룹바벨
1)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심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향하여 친히 '내 종' 이라 단호히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같은 말을 사용하신 이유는 스룹바벨이야말로 당신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뜻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 선택된 자임을 강조하시기 위해서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스룹바벨은 세상 나라를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인간 총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 나라의 군주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부름받은 신령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심
스 5:11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스 5:11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모든 존재의 소유주
시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친히 '내 종' 이라 선언하신 데에는 스룹바벨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다함 없는 관심과 사랑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즉 여기서 '내 종' 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함부로 다루시겠다는 의미의 단순한 주종 관계를 천명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매일 매순간 받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내밀한 관계성을 강조한 거룩한 호칭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영화롭고 복된 호칭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일 것입니다.
▣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사 49:2-3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사 49:2-3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3) 하나님의 종인 그리스도를 예표함
하나님께서 친히 '내 종' 이라 하신 데에는 구속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스룹바벨은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을 비하하시어 인간의 몸,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종인 그리스도를 예표함
종의 신분
빌 2:7-8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7-8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하나님 나라의 완성자인 스룹바벨
1) 하나님의 인장 반지같은 자였음
하나님은 구속 역사에 있어서 당신의 전을 재건한 자였을뿐 아니라 장차 당신의 영광스런 나라를 완성하실 메시야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이었던 스룹바벨을 인장 반지같은 자로 여겨 주셨습니다. 사실 인장 반지란 옛날 군주들이 값진 보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만든 일종의 사인 반지로서, 중요한 문서에 조인할 때마다 이 반지로써 인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 군주 자신의 권위를 대행할 대리인을 파송할 때에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그의 손에 끼워 줌으로써 군주의 권위를 덧입고 매사에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친히 스룹바벨을 인장반지같이 여기셨다 함은 그만큼 스룹바벨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인장 반지같은 자였음
신자의 보호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증거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 하나님의 집의 건축자였음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특별히 선택하시어 그로 하여금 당신의 집 곧 성전을 재건토록 명하셨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무너진 성전을 재건토록 하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스룹바벨은 메시야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로, 결국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을 완성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함이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집의 건축자였음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2:18-21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8-21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3)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자였음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성전 재건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은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와 동일한 성정(性情)을 지닌 연약한 인간인지라 주변 환경이 열악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하자 자신이 맡은 사명을 일차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적으로 격려와 위로를 제공하시어 끝끝내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완성토록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인하듯이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설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자였음
값없이 주시는 은혜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 내 종<yDib][' ; 아베디>
'일하다, 봉사하다' 라는 동사 <db,[, ; 아바드>에서 유래한 명사 <db,[, ; 에베드>는 '종, 노예'를 뜻한다. '종'이라는 용어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용법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쓰이는 경우이다. 특별히 이사야 39-66장에서 종 되신 메시야 사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을 '내 종'이라 부르셨다. 이는 스룹바벨의 성전재건 사역이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궁극적으로 볼 때 성전의 참된 완성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참조, 요 21:18-22).
'일하다, 봉사하다' 라는 동사 <db,[, ; 아바드>에서 유래한 명사 <db,[, ; 에베드>는 '종, 노예'를 뜻한다. '종'이라는 용어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용법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쓰이는 경우이다. 특별히 이사야 39-66장에서 종 되신 메시야 사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을 '내 종'이라 부르셨다. 이는 스룹바벨의 성전재건 사역이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궁극적으로 볼 때 성전의 참된 완성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참조, 요 21:18-22).
▣ 취하고<▣ }Q;a, ; 에카하카>
동사 <jq'l; ; 라카흐>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가져 오다, 받다, 취하다'란 뜻 외에도 '물건을 탈취하다, 물건을 사다,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다' 등의 뜻이 있다. 본절에서 '취하여' 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성전 재건의 책임자로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선택에 순종으로 응답하였다. 북쪽 사마리아의 침공과 자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 등의 위기로 인해 성전 건축이 중단되는 사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책임자로 선택하신 것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결국 그 일을 이루어 냈다.
동사 <jq'l; ; 라카흐>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가져 오다, 받다, 취하다'란 뜻 외에도 '물건을 탈취하다, 물건을 사다,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다' 등의 뜻이 있다. 본절에서 '취하여' 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성전 재건의 책임자로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선택에 순종으로 응답하였다. 북쪽 사마리아의 침공과 자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 등의 위기로 인해 성전 건축이 중단되는 사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책임자로 선택하신 것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결국 그 일을 이루어 냈다.
▣ 인을 삼으리니<!t;/jK' ▣ Tim]c'w ; 웨사메티카 카호탐>
비유적 표현으로써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인(도장)의 역할을 맡기시겠다는 표현이다. 즉, 성전 재건 사역을 함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을 통하여 허락의 도장을 찍으신 것이다.
비유적 표현으로써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인(도장)의 역할을 맡기시겠다는 표현이다. 즉, 성전 재건 사역을 함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을 통하여 허락의 도장을 찍으신 것이다.
▣ 택하였음이니라<yTir]j'b; ; 바하레티>
'선택하다, … 하기로 결심하다, 예리하게 살피다' 라는 동사 <rj"B; ; 빠하르>가 기본형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백성, 지파, 개인 등을 구별해서 선택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택하다, … 하기로 결심하다, 예리하게 살피다' 라는 동사 <rj"B; ; 빠하르>가 기본형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백성, 지파, 개인 등을 구별해서 선택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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