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눅 19:1~10
누가복음 18장의 마지막은 눈먼 소경(바디메오라 알려짐)을 고치는 장면으로 마친다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시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18:43)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삭개오 이야기이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그당시 로마의 하수인이 되어 동족에게 괴로움을 끼치던 자였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라고 하자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7)라고 반응하고 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라고 선포하시며 인자의 온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갔으며 그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도 했고 속여 빼았은 일이 있으면 네배나 갚겠다고 말을 했다는 것에 집중하느라 삭개오를 바라보는 군중들의 시선은 잘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설교를 들으며 공감하게 된 바이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합당하게 여긴다
그러나 힘이 있고 부자인 악인의 집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지도.....
자기 안에 있는 가치 기준이 예수님의 사랑의 원리보다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자신의 오신 목적이 단순히 가난한 자를 구하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음을 분명히 하셨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다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그분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1~22)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예수님은 일관되게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대로 행동하셨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버리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신자에게는 수많은 자기 논리가 작용한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심지어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일에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존재가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다
'이건 합당하지만 저건 왜 그래야만 하지요?'라는 의문을 갖는게 인간이다
이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생각안에 무한한 하나님을 가두려는 어리석은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러 가는 예수님처럼, 그분을 맞이하는 삭개오의 즐거운 심정도 같이 흔쾌히 기뻐해줄 마음의 여유가 내 안에도 생기기를....
아버지, 예수님이 이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열광하던 무리들은 자기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일에는 흥분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삭개오를 구원하시는 장면에서는 유대인들은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구절이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1)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바람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 땅에 실현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나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위해 오셨음을 스스로 밝히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시고 주인이신 나라입니다
죄인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 또한 죄인이었으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깨달아 이땅에서 성화되어가는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며 나와 같은 죄성을 가진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의 이성이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기엔 아닌 일일수도 있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내 눈에 보기에 악한 사람도 언제든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을 잃어버린 자 일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내 판단이나 생각보다 예수님의 그것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날마다 실감하는 부족한 존재이오나 예수님께 붙어있어 열매맺게 하시는 아버지가 계시기에 날마다 말씀앞에 나아옵니다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화평케하는 자로 세워주소서
여러가지로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가운데 살아가지만 상황때문에 생기는 평안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주어지는 평안함을 사모합니다
오늘도 저의 주인되어 주셔서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게 하시고 가정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주안에서 사랑과 공의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오래 참고 견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누가복음 18장의 마지막은 눈먼 소경(바디메오라 알려짐)을 고치는 장면으로 마친다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시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18:43)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삭개오 이야기이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그당시 로마의 하수인이 되어 동족에게 괴로움을 끼치던 자였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라고 하자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7)라고 반응하고 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라고 선포하시며 인자의 온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갔으며 그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도 했고 속여 빼았은 일이 있으면 네배나 갚겠다고 말을 했다는 것에 집중하느라 삭개오를 바라보는 군중들의 시선은 잘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설교를 들으며 공감하게 된 바이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합당하게 여긴다
그러나 힘이 있고 부자인 악인의 집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지도.....
자기 안에 있는 가치 기준이 예수님의 사랑의 원리보다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자신의 오신 목적이 단순히 가난한 자를 구하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음을 분명히 하셨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다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그분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1~22)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예수님은 일관되게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대로 행동하셨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버리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신자에게는 수많은 자기 논리가 작용한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심지어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일에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존재가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다
'이건 합당하지만 저건 왜 그래야만 하지요?'라는 의문을 갖는게 인간이다
이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생각안에 무한한 하나님을 가두려는 어리석은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러 가는 예수님처럼, 그분을 맞이하는 삭개오의 즐거운 심정도 같이 흔쾌히 기뻐해줄 마음의 여유가 내 안에도 생기기를....
아버지, 예수님이 이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열광하던 무리들은 자기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일에는 흥분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삭개오를 구원하시는 장면에서는 유대인들은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구절이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1)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바람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 땅에 실현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나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위해 오셨음을 스스로 밝히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시고 주인이신 나라입니다
죄인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 또한 죄인이었으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깨달아 이땅에서 성화되어가는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며 나와 같은 죄성을 가진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의 이성이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기엔 아닌 일일수도 있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내 눈에 보기에 악한 사람도 언제든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을 잃어버린 자 일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내 판단이나 생각보다 예수님의 그것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날마다 실감하는 부족한 존재이오나 예수님께 붙어있어 열매맺게 하시는 아버지가 계시기에 날마다 말씀앞에 나아옵니다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화평케하는 자로 세워주소서
여러가지로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가운데 살아가지만 상황때문에 생기는 평안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주어지는 평안함을 사모합니다
오늘도 저의 주인되어 주셔서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게 하시고 가정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주안에서 사랑과 공의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오래 참고 견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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