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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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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사막
누가복음 21:29~32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 ....
이 말씀으로 인하여 수 없이 많은 연구가 있었고, 많은 학설이 세워지고, 또 반론에 무너져 왔습니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이단들이 이 말씀 속에서 탄생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집필자는 오늘 이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정리하고자 글을 씁니다.
1. " 이 세대 " 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이단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디부터 이단으로 파악할 것인가?
이단의 기준은 언제나 " 성경 " 입니다. 성경을 벗어나면 분명한 이단입니다. 그러나 해석의 미묘한 차이를 두고 이단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예를들어 아가서의 경우 이번 연구 과정에서 4권의 주석이 모두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단적 해석이라고 말하지 않고 견해 차이에 대하여는 논의를 통해 점차 그 차이를 좁혀가고 본문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육신을 주장하며 이 시대에 자신이 재림한 예수님이라면서 떠드는 자들의 해석에 대하여는 우리는 단호하게 " 이단 " 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 입니까? 그들의 해석이 절대 용납될 수가 없기 때문 입니다. 견해 차이가 아니라 말씀을 분명하게 조잡하다 표현 할 정도로 왜곡하고 끼워 맞추기 때문 입니다.
고린도전서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 이 세대 " 에 대한 해석도 동일합니다. 주어진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는 이단이라 말할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즉, 해석의 차이라는 것은 존중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해석의 차이를 넘어 명백하게 주어진 말씀을 넘어서는 것은 이단입니다.
오늘 우리가 고려하려는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1:29~32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그리고 한 구절을 더 참고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분명 동일한 말씀이며, 그 날과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그 시간과 때를 자세히 살펴 알 수있을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즉 이것이 주어진 한계이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명백하게 여기서 이단 규정의 기준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그 날과 때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 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야고보서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요한계시록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일을 정하지 않은 말 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특히 초대교회는 주님의 재림이 정말 얼마남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살았을 것 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소망이며, 고난을 견디는 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5: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그들은 고난을 견디는 힘의 근원이 머지 않아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으며,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일을 정하지 않은 "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 " 라는 말에 대하여는 이단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일을 정한 주장은 다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주어진 " 아무도 알 수 없다 " 는 말씀을 넘어선 주장이라는 것 입니다.
" 날과 때를 정한 주장인가? " 의 구별 기준은 무엇인가?
날과 때를 정하는 주장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장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 종말의 때를 정함으로써 모든 사회 활동이 무의미하며 종교 생활에만 집중하도록 유도
둘. 종말을 강조하여 공포심을 조성하여 교리를 쉽게 전파
셋. 종말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통하여 자신들의 교리 외에 다른 집단의 교리에 대한 불신 조성
넷. 종말에 대한 해석을 이용하여 행위 구원론 형성
이 네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즉 !!! 이 세가지 목적을 보이는 경우 우리는 그들이 날과 때를 정하지 않고 " 종말이 멀지 않았습니다 " 라고 떠들어도 이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다음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2. " 이 세대 " 에 대한 두가지 해석
종말에 대한 교리의 정설은 없습니다. 분명 " 이 세대 "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정말 성경적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 이것이 완전하게 성경적이다. " 라고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단언한다면 적어도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에 대한 지나친 단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두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1)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으로 보는 견해
[ IVP 주석 / 누가복음 22장 참고 ]
이 세대 동안 일어날 ' 이런 일 ' 은 인자의 임하심 보다는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포함하는 ' 모든 경고의 표시 '를 의미한다.
이것은 간단하면서 아주 핵심적인 주장의 내용입니다. 이 세대를 AD 70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해석하고, 이것을 말씀하셨다고 해석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볼 때 " 이 세대 " 는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의 세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 입니다.
이 견해는 분명하게 말씀의 범위를 넘지도 않았으며, 종말에 대하여 전혀 ~ 논의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문제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 진다는 것 입니다. AD 70 으로 해석하는 경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복음이 확장된다고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31절로 충분하게 느낄 수 있으며, 문제는 다른 복음서에서 논의하는 부분들이 걸림이 된다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AD 70 의 사건으로 복음이 확장되었다는 주장을 하면 어느정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있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 24:33을 인용한 것과 같이 인자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표현에 대하여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 입니다. 어떠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에서 반론에 부딪히고 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2) 이스라엘의 독립을 " 이 세대 " 라는 견해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견해의 근거는 말씀 앞에 있는 " 무화과 나무 " 입니다. 이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로 비유되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의 잎이 나온다는 것은 나무의 회복과 생명력이라는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일면 타당할 것 입니다.
그러나 !!! 명백하게 이 견해도 반론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복음 21:29~30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잘 보시면 이상한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까?
" 모든 나무 " 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의 주장대로면 " 무화과 나무 " 외에 다른 나무는 필요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을 비유로 무화과 나무로 하셨다면 왜 다른 나무가 제시되는 것 입니까????
...
이것 외에도 수 없이 많은 반론의 근거가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아니라 열매 없는 종교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며, 그들의 심판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결국 이 주장도 반론을 피할 수는 없는 불완전한 주장이라는 것 입니다.
3. 집필자는 " 이 세대 " 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먼저 집필자는 " 이 세대 " 를 이해할 수 있는 세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집필자의 견해에 무조건 동의하거나 동조해 달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 " 이 세대 " 를 절대적으로 AD 70 으로 확신하고 뒤에 설명하지 못하는 말씀을 외면하고 믿는다.
둘. " 이 세대 " 를 무화과 나무에 대한 해석에 있어 명백한 맹점이 존재하나 이스라엘의 독립 또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 해석하고 그것을 외면하고 믿는다.
셋. 이 말씀에 대하여는 정확한 해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풀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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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의 견해는 세번째 입니다.
베드로후서 3:16~18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어려운 말씀을 억지로 풀 필요가 없다는 것 입니다.
또한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억지로 연구하고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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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왜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은 그것을 찾을 단서조차 남겨주시지 않았을까요?
... 당연히 필요가 없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재림의 시기를 확정적으로 연구하려는 이유는 대부분 " 호기심 " 이라는 것 입니다. 얼마나 교만하고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지 모릅니다. 성경을 " 호기심 " 으로 연구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치 전설이나 신화처럼 생각하고 " 호기심 " 을 가지는 것 입니다.
느헤미야 8:5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 호기심 " 이 아니라 " 경외심 " 으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말론을 연구하는 것은 대부분 호기심이라는 것 입니다.
... 극단적으로 한심하다는 것 입니다.
시편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종말을 생각할 때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종말 앞에서 우리는 " 호기심 "을 가집니다.
왜? 종말이 나와는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바로 1 초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주제에 우리는 1년 뒤, 10년 뒤에 재림이 있을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합니다.
....마치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 확실한 증거를 받은 것처럼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멍청한 행동입니다. 내가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목적을 잊으면 그런 쓸모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은 관심이 다양하다는 것 입니다. 뭔가 하나를 집중해서 하고 있지 않고, 바쁜 것이 없으니까 " 이것 ~ " , " 어 ~ 저것 " 이러면서 관심이 다양하다는 것 입니다.
... 게으른 사람들은 종말에도 호기심을 가지는 것 입니다.
당장 내가 전도가 바쁜데 " 재림은 언제일까? " 라고 생각할 여유가 있습니까?
당장 내 옆에 친구가 죽어가는데 " 재림은 언제일까? " 라고 계산하고 있을 겁니까?
... 아주 게으른 사고 중 하나가 쓸모없는 종말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라는 것 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 종말을 알면 내 신앙이 더 뜨거워 질지 모른다. 종말이 가까우니 더 힘을 내자고 할 수 있다. "
... 멍청한 소리입니다. 종말이 멀면 당신이 오래 살 수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있습니까?
교통 사고로 죽을 줄 알았다면 누가 그날 운전을 했을까요?
추락 사고로 죽을 줄 알았다면 누가 그곳에 갔을까요?
... 죽음은 예고도 없고, 언제 온다고 예측도 못합니다.
모든 사람에 종말은 이미 불확실하게 주어진 것 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 .... 정해져 있습니다. 죽습니다. 안 죽는 사람이 있습니까? 종말과 무관하게 나는 죽습니다.
내가 종말이 없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게 아닙니다. 내일, 아니 당장 1분 뒤에 사고로 죽을지 모르는게 삶 입니다.
...
그런데 종말에 집착합니까? 종말을 알면 내 신앙이 뜨거워진다구요? 웃기는 주장이고 게으른 핑계 입니다.
잠언 6:6~8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일합니다. 묵묵히 일 합니다. 언제 개미가 " 아 ~ 내가 언제 죽을테니까 더 열심히 일해야지 " 합니까?
주어진 일이 있으니까 묵묵히 일하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주님은 십자가에서도 전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종말이 되었다고 게을러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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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삶을 따르는 성도가 종말이 멀었다고 게을리 살고, 종말이 가까우니 힘을 냅니까?
... 핑계라는 것 입니다. 웃기는 주장이라는 것 입니다. 아주 무지하고 멍청한 행동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 이 세대 " 가 무엇인지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담당하면 되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24:40~43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밭을 갈고, 매를 갈고 있다가 만나기를 원하신 것 입니다. 성도들이 일하기 원하신 것 입니다.
종말이나 부여잡고 탱자 탱자 거리기를 바라신게 아닙니다.
....
깨어 있는 것과 종말에 대하여 집착하면서 세월을 낭비하는 것을 구별해야 할 것 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종말이 언제인지를 알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기억하는 것 입니다.
로마서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깨어있는 신앙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삶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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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정으로 깨어 있습니까? 종말론이 아니라 진정 믿음으로 깨어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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