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 황제와 기독교 박해
소설 '쿼바디스'의 소재가 된 폭군 네로 황제 박해는 순전히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네로는 64년 로마 대화재 직후 민심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자, 유다교의 한 분파쯤으로 여겨지던 힘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로마 시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불온하고 가당찮은 미신 추종자들이라고 생각했다.(영화에서 박해를 피해 로마를 탈출하던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도망쳐 나온 로마로 향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치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하고 묻는다. 예수께서 "너 대신 십자가를 지러 간다"고 말하자 베드로는 다시 돌아가 순교의 십자가를 진다.)
기독교 박해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독교인의 생활이 로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인의 삶이 로마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기독교인과 로만인 사이의 다른 삶의 방식 때문에 작은 충돌이 자주 있었다. 바울도 성난 로마 군중들에게 화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기독교 박해를 표현한 첫 번 째 황제가 네로이다.
1. 네로황제 이전 네로 황제 이전의 기독교 박해는 간헐적이고 부분적이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던 시기에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건 , 글라우디오 황제(A.D.41-54)때에는 사도행전18:2에 언급된 로마인의 추방 사건과 고관 아우루스 플라우티우스의 아내인 폼포니아 그래시나라는 한 여인이 외래미신(기독교를 가리킴. henry bettenson , documents of the christian church )이라는 죄목으로 피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건등이 있었다.
2. 네로 황제 박해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중인 64년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그가 통치하던 기원후 64년에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네로는 기독교인들의 방화라고 하고서는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네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대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수에토니우스(syetibius)가 기독교인들이 형벌을 받은 원인을 기술하면서 " 새롭고 사악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단체인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표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타키투스도 기독교를 가리켜 "매우 위험한 미신 "이라고 표현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대화제 사건은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가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타기투스의 연대 ,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에 보낸 서신 >,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의 설교를 통해서 네로의 잔학성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알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 혹은 화형이 되어, 해가 진 후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들을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다. 그동안 서커스단은 쇼를 공연하였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타기투스의 연대기 중에서)
"우리는 훌륭한 사도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다. 베드로는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노력을 통하여 불의를 극복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증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열정과 노력으로 바울은 인내의 상을 받았습니다.....바울은 동서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고귀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에 보낸 서신 5장 )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 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설교중에서)
이때 순교한 대표적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이다.
1세기 후반과 2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 저술사가들이 네로의 박해를 기술하기 시작했다. 네로 때의 기록에는 로마시 밖에서 박해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런 저런 자료들이 가지고, 학자들은 그때의 박해는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저지른 박해가 아니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