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환난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욥에게 친구 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2:11).
그들은 욥의 심한 고통을 보고 칠 일 동안 침묵하였고, 아픔에 공감하였습니다.
세 친구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 욥을 위로하고, 욥이 겪는 고난의 원인을 탐문합니다.
그러나 욥에게 섣부른 친구의 위로는 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제143일 <엘리바스와 욥(1)>
욥기 4-7장
4장- 첫 번째로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을 꺼냅니다. 욥이 당한 처지는 죄의 결과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신비체험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보다 결코 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장- 그러니 미련한 사람처럼 부르짖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를 인정하고, 사정을 아뢰어 그 은혜를 구하라며 지극히 당연한 말로 교훈합니다.
6장- 욥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엘리바스에게 위로를 느끼기보다, 자신의 정직함을 오해하고 책망하는 말로 들려 몹시 서운해 합니다.
7장- 여러 달 잠을 못 이루며 뒤척이던 욥은 하나님을 향해 직접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불평을 토로합니다. 욥은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욥과 세 친구 사이의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4-28장).
엘리바스와 욥, 빌닷과 욥, 소발과 욥이 세 차례씩 반복하며 말을 주고받습니다.
대화는 점점 강도가 높아가는 논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 친구의 주장은 하나님이 욥에게 행하신 일이 옳다는 판단입니다.
욥이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지 않자 논쟁은 더욱 심화됩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장자로 보이는 엘리바스였습니다(4-5장).
그는 먼저 모범적이었던 욥의 평소 행실을 칭찬하며, 마음을 열려고 합니다.
재난을 당한 처지가 된 욥은 이제 충고를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이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젠 네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허물을 저질렀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일반적인 논법으로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4:8)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 없이 망한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자기 확신을 보증하듯, 신비한 환상 중에 본 말씀이라며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의로운 사람도, 깨끗한 사람도 없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경우도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니, 그 이유를 똑똑히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이 자기 고집을 꺾어야 자신을 도울 중재자를 찾을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과 맞서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심문자의 입장에 서서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라고 주문합니다.
욥이 받는 고통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한 자가 받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욥은 누구보다도 공의의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욥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할 때 그 충고는 정죄에 불과합니다.
엘리바스의 첫 번째 충고에 대해 욥이 대답하였습니다(6-7장).
구구절절, 엘리바스는 옳은 말을 했으나, 욥은 공감하지 못합니다.
욥은 죄를 회개하고, 속히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친구의 충고에 대해 외려 반발합니다.
여전히 욥은 그가 당하고 있는 재난과 고통의 의미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의 탄식은 자신을 위로하기는커녕 동정조차 하지 않는 친구에게로 향합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6:25).
그럴수록 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합니다.
욥이 여전히 당당한 것은 자신의 무죄를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욥에게 아직 희망이 남은 까닭은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상반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힘든 노동이 끝나고 빨리 저녁이 되기를 바라는 종의 마음입니다.
밤새 고통을 겪는 환자가 밤을 새며 새벽을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욥은 자기에게 회개하라는 친구만이 아니라, 모든 청중을 대상으로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욥은 하나님께 직접 호소합니다.
자기도 이젠 할 말을 다하겠다는 심산으로 속마음을 풀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늦어져 결국 죽어 ‘스올로 내려’(7:9) 가게 된다면 도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조바심을 냅니다.
욥은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7:21)라며 차라리 자기 생명을 놓아달라고 체념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과녁으로 삼아 조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절망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희망은 지옥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욥처럼 당대의 지혜자요, 의로운 이들입니다.
그들의 종교적 감수성은 얼마나 뛰어난지 마치 하나님의 마음에 닿아 있는 듯합니다.
엘리바스는 죄 없이 고난당하는 일이 없으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빌닷은 자녀들의 범죄 가능성에 대해 들먹였습니다.
소발은 할 말이 많은 욥더러 따지려들지 말고 침묵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앞세운 세 친구의 충고는 공감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제145일 <소발과 욥(1)>
욥기 11-14장
11장- 세 번째 친구 소발은 첫 변론에서 욥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거든 많은 말로 자신의 의로움을 변명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12장- 욥은 소발의 말에 항변하면서 홀로 하나님을 다 아는 듯이 하지 말라고 공박합니다. 욥은 자신이 이해하는 하나님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13장- 욥은 더 이상 친구들과 하나님에 대해 논쟁하기보다, 직접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듣고자 합니다.
14장- 욥은 하나님을 향해 인생의 짧고 부질없음을 토로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참아달라고 호소합니다.
세 번째 등장한 친구는 소발입니다.
애초에 위로자로 찾아왔으나 그도 의도와 달리 다른 두 친구처럼 고소자로 나섭니다.
소발은 욥의 고난을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즉각 항변을 중단하라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 욥은 도무지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 고집불통처럼 보였습니다.
죄인이면서도 거듭거듭 자기 결백을 주장하는 변명자로만 느껴졌습니다.
소발은 생각하기를 이제 하나님이 몸소 욥을 깨우쳐 주시길 기대합니다.
소발은 욥이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리라 여겼습니다.
쓸데없는 변론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회개한다하면 욥이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욥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당해온 욥은 친구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실 일반적인 지혜에 대한 논쟁이라면 욥도 무시당할 수 없습니다.
욥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설명하며 친구에게 응수합니다.
더 나아가 현실과 역사 속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묻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의 곤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크게 실망합니다.
욥은 남의 아픔에 진지하지 못한 친구들의 말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욥은 지혜를 내세워 자신을 공박하려고 드는 친구들에게 몹시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이런 정도의 지혜는 짐승과 새, 땅과 바다의 한낱 미물도 알만한 상식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러니 이런 일반적인 지혜의 논리로 욥을 정죄하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소발과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지혜와 권능을 가진 분으로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마치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아는 양, 지혜를 독점한 양, 우쭐대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세상에는 의인이 고난당하는 역설과 모순도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는 처지에서 욥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토로합니다.
욥에게는 그를 위해 변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욥은 세 친구의 공감을 기대했으나 누구도 욥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까닭 없이 벌을 받는 욥에게, 외려 죄를 낱낱이 실토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이제 욥은 친구들과 변론하기보다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려고 나섭니다.
욥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묻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항변하고 직접 따지던 욥은 깊은 체념에 빠집니다.
‘인생은 얼마나 짧고,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지나가던가?’
그런 인생이나마 하나님의 눈길 밖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덧없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인데 하나님은 왜 인생을 향해 진노하시는가?
욥은 하나님께 호소하길, 차라리 자신을 감추시고, 안전하게 숨겨달라고 합니다.
숨어 있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시간과 회복하실 때를 기다리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욥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욥에게 들이닥친 현실은 냉정하기만 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작은 죄조차 묵과하지 않으신다고 두려워합니다.
욥은 크게 실망하여, 그나마 희망을 다시 접었습니다.
산이 무너져 내리듯, 욥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욥은 현실을 피할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욥에게 도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샬롬샬롬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