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네의 아들, 갈렙
성경 천 영 대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는 바라……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이 되리라 하였나이다……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수14:6~13)」
겸손함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애굽에서 나온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이기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갔던 특별한 자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활동했을지라도 여호수아와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지 아니하고 그의 수하의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아니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상대방보다 높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같은 일을 했다면 동등한 대우나, 그 이상의 대우를 요구하지만 갈렙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아니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14:6~8)”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함께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갈 때도 같이 갔고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도 같이 했다. 여호수아 14장 6절에서는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도 갈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불림을 받은 여호수아와 함께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여호수아와 동등하게 일했기 때문에 동등한 요구를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명기 34장 9절에서는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했다. 갈렙은 주님을 믿는 가운데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했다. 갈렙은 여호수아에 대해 같은 지위의 사람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머리로 주신 분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순종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그리하여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했다. 갈렙 또한 여호수아와 동등됨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낮추어 그에게 순종했다. 할렐루야!
강건함
갈렙은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강건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가나안의 족속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0~12)”라고 했다. 갈렙은 나이가 팔십오 세나 되었지만 사십 세에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갈 때와 같이 강건하다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이뤄진 것이다. 사십오 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와 같이 강건한 것은 주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특별하게 역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그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팔십오 세 노인이 사십 세의 장년과 같이 군인으로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건강을 가지고 있었다. 신명기 34장 7절에서는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다. 모세는 일백이십 세나 되었지만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도 쇠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이것은 주님을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러한 나이가 되기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하셨다. 갈렙이 팔십오 세나 되어도 강건했고, 모세가 일백이십 세나 되어도 기력이 쇠하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강건하게 되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 또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음식이 되시는 주님을 먹고 마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2~35절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주님이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 곧 하늘의 양식이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주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음으로 자라고 강건해져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음으로 자라나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주님을 먹음으로 자라나야 한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녀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주님께서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7장 37,38절에서는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이것은 그 영이 되시는 주님을 말한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그 영이 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한 것처럼,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는 영이 되심으로 사람들로 생명 주는 영을 인해 살게 하셨다. 우리는 생명의 떡이요, 생명수이신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계속적으로 강건한 가운데서 악한 자를 대적해 이기는 삶을 사는 자 되어야 한다. 요한일서 2장 13,14절에서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강함으로 악한 자를 이겼다고 했다. 우리는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주님으로 강한 자가 되어 악한 자를 대적하여 이기고 정복하는 자 되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믿고 온전히 따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약속 이행을 요구함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과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약속을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그의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도, 이기주의 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 주님을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분으로 믿는 것이며, 그의 약속이 실현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가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구하라고 했다. 에스겔 36장 36,37절에서는 “너희 사면에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라고 했다. 약속하신 주님께서 이루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할지라도 그 약속하신 바를 이뤄 달라고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원하심과 우리의 원함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원하지만, 우리가 원치 아니할 때는 주님께서 억지로 역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님은 신사적인 분으로서 주님의 원하심과 우리의 원함이 일치할 때에 기쁨으로 역사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약속했다 할지라도 그렇게 이뤄지기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님을 그가 약속하신 대로 실행하는 신실한 분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가 약속하신 대로 이뤄 달라고 구했다. 민수기 14장 20~2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갈렙에 대해 그가 탐지하러 갔던 땅으로 인도해 들일 것이라고 했다. 신명기 1장 35,36절에서도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려니와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도 주님께서는 갈렙에게 그가 밟은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갈렙은 주님을 신실하신 분으로 믿는 가운데서 그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그것을 이뤄 주실 것을 구했다.
여호수아 14장 9~12절에서는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했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신실하신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실행하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여호수아를 힘들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능력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위해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에스겔 12장 25~28절에서는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전하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은 신실하신 분으로서 그의 말씀하신 바를 분명히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구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여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사야 43장 26절에서는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가 하신 말씀에 대해 기억나게 하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가 하신 말씀대로 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구함으로 그의 약속하신 바를 기억나게 하여 그로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게 함으로 그를 증거하고 나타내어야 한다. 갈렙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믿고 구함으로 주님으로 약속한 바를 실행케 하여 그가 구했던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며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어려운 것을 택함
갈렙은 일반 사람들처럼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쉬운 것만 택하는 이기주의적인 자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했다. 그는 인도자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배려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인도자의 짐을 들어주려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고 기피하는 곳을 그에게 달라고 했다. 갈렙은 새로운 인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아낙 자손들이 사는 헤브론을 달라고 했다. 혹시 그의 나이 많음과 그곳을 정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곳을 주지 않고 다른 곳, 곧 그가 정복하기 쉬운 곳을 줄까봐, 그렇게 되면 여호수아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까봐 그를 배려하여 자신이 나이가 많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장부들이 사는 헤브론을 달라고 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수14:9)”라고 했다. 이것은 혹시 여호수아가 장부들이 사는 헤브론이 아닌 다른 곳, 곧 정복하기 쉬운 곳을 줄까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곳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여호수아로 다른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의 인도함을 따라 생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분명히 실행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갈렙은 그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나이가 많음으로 장부들이 살고 있는 헤브론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헤브론이 아닌 다른 곳을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가 강건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10~12)”라고 했다. 그는 팔십오 세나 되었지만 사십 세 때에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가던 때와 같이 강건하기 때문에 아낙 족속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헤브론 땅을 달라고 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신실한 자이었고, 주님께 충성하는 자이었다. 그는 또한 여호수아가 그 곳에 장부들이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곳을 정복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정복하기 쉬운 다른 곳을 주지나 아니할까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라고 했다. 갈렙은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아니고, 참으로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창세기 13장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그의 조카 롯이 원하는 것을 먼저 택하게 했다. 창세기 13장 5~11절에서는 “……아브라함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택하지 않고 그의 조카 롯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서 그의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욕심을 따라 생활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들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좇음
타락한 인간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육신의 소욕을 좇아 생활하기를 좋아한다. 이리하여 주님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주님만 추구했던 갈렙은 그러한 길을 가지 아니했다. 그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주님만 따라갔다. 신명기 1장 34~3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한 세대의 사람들로서 주님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좋은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했지만 갈렙은 온전히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좋은 땅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했다. 여호수아 14장 8,9절에서는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갈렙이 자기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했고, 또 모세도 그에 대해 주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했다. 이렇게 갈렙은 하나님에 의해서도, 모세에 의해서도, 자신에 의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증거를 가졌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누렸다.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14:22~24)”고 했다. 갈렙은 그들의 종족과는 달리 주님을 온전히 좇음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좋은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호수아 14장 10~14절에서는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라고 했다. 갈렙이 팔십오 세까지 강건한 것은 주님을 온전히 좇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장부들이 살고 있었던 기브온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주님을 믿고 온전히 좇음으로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약속을 받은 것도, 강건한 것도, 땅을 차지한 것도 주님을 믿고 온전히 좇았기 때문이다. 그가 동료로 생활했던 여호수아를 인도자로 받아들이고 순종한 것도 주님을 믿고 그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육신의 소욕을 좇아 주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지만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산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로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1:5,6)”고 했다. 믿음으로 순종한다고 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육신의 소욕을 좇아 주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지만 그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그의 뜻을 이루는 데 동참하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했다. 우리의 삶은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고린도후서 4장 13절에서는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믿음으로 말한다고 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믿음으로 행한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삶, 곧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놀라운 것을 받아 누리게 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있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그 영)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고 그 영을 좇아 사는 자가 되었다. 주님을 믿고 그를 따르는 삶을 살 때에, 곧 주님이 나타날 때에 거기에 진정한 겸손과 강건함과 사랑과 양보와 위함이 나타난다. 갈렙은 주님을 믿고 그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에 동료인 여호수아를 인도자로 맞아들이고 순종하는 겸손한 삶을 살았다. 또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께서는 팔십오 세가 된 때까지도 강건하게 하셨다. 악한 자를 대적해 이기도록 하기 위해 그를 강건케 하셨다. 또한 그는 쉬운 것, 육신에 편한 것을 택하지 아니하고 어려운 것, 힘든 것을 택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돌아가게 했다. 자신의 유익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돌아보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갈렙이 믿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좇음으로 말미암은 것들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온전히 주님만 따름으로 강건해져서 악한 자를 대적해 이겨야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믿고 온전히 좇음으로 주님으로 악한 자를 대적해 이겨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는 데 동참하게 된다. 내 갈망을 이루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을 믿고 풍성히 누리는 자 되어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쳐서 정복하고, 또 그 곳을 경작하여 소출을 얻는 것은 주님을 얻고 그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순종하여 악한 자를 이김으로 주님을 얻고 풍성히 누림으로 주님 안에서 자라고 강건하여 짐으로 주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데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