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4. 큐티
사사기 19:16 ~ 30
레위인 첩 사건(2) - 시체를 열 두 조각으로 쪼개는 극악무도한 사건
관찰 :
1)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맞이하다
- 16절.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 기브아에서 대로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그네를 맞이하지 않는 레위인 일행을 최소한의 율법을 기억하는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찾아오게 되었다.
- 17절 ~ 19절.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 자신에 대해서 물어보는 노인에게 레위인은 자신이 먹을 것도 다 있기에 숙소만 제공해 줄 것을 구하게 된다.
- 20절.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 이 이름없는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손님으로 맞이하고자 한다. 나그네가 길에서 유숙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음을 말한다.
- 21절.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 그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데리고 가고, 이 스토리는 마무리 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대로에 서 있던 레위인 일행을 지켜본 자들로 인해서 극악무도하게 흘러가게 된다.
2)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습격하다
- 22절.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 노인의 초대로 레위인 일행은 쉼을 누리게 되었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그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레위인 일행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나그네에게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를 괴롭히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도는 레위인과 레위인의 첩, 그리고 종을 모두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남자들과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것이고, 첩과 성관계를 맺겠다는 것이었다.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으로 일부러 찾아왔건만,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이 더 패역하고 음란한 도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23절.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 집 주인인 노인은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설득해 보고자 한다. 자신의 손님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손님으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노인은 이들 불량배들의 행위가 “망령”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음욕에 혈안이 된 자들은 그러한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게 되자 노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후의 제안을 하게 된다.
- 24절.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 이 노인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 딸이 있었다. 그리고 레위인과의 대화 속에서 함께 온 여인이 레위인의 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인 첩을 내보내어서 최소한의 정상정인 성관계를 통해서 그들의 정욕을 해소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노인의 제안은 이 노인 역시 얼마나 음란에 물들어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다. 정욕에 이글거리는 패거리들에게 여자를 넘겨주게 되면, 그들이 여자에게 어떤 짓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끔찍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연약한 자를 희생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이 최소한의 율법을 지키고자 한다는 레위인과 기브아의 한 노인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영적 어두움이 이스라엘에게 전반적으로 깔려있는지를 알게 된다.
3) 레위인의 악독한 처사와 첩의 비참한 죽음
- 25절.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그 노인의 제안에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집 문을 두들기며 겁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레위인은 끔직한 짓을 하고 있다. “자기 첩을 붙잡아” 불량배들에게 내어준 것이다. 이 여인이 집 밖으로 내보내질 때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레위인의 첩은 불량배들에게 붙들려 윤간을 당하게 된다. 밤을 새도록 능욕을 받은 여인은 새벽에야 풀려나게 되었다.
- 26절.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 해가 뜰 무렵에 그 노인의 집에 간신히 이른 여인은 그 집 문 앞에 엎드러져 죽었다. 너무 많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해서 기력이 상실해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성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 27절.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 첩의 남편인 레위인은 여인을 상관하지 않고 떠나고자 했다. 이미 이 레위인에게는 첩에 대한 사랑이나 연모가 없다. 이미 죽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떠나려는 중에 처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 28절.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 첩이 죽어있는지 모르는 레위인은 그녀에게 길을 떠나자고 재촉한다. 그녀에게 달려가서 그녀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았다. 첩이 얼마나 심각한 위협에 내던져졌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상황을 이렇게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대하는 레위인의 마음에는 이미 그녀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자신의 첩에 대해서 마음이 다 떠나고 버리고 가려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첩의 시체를 두고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귀에 그녀의 시체를 싣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정말 잔인하고 천인공노할 잔악이 아닐 수 없다.
4) 첩의 죽음에 대한 레위인의 잔인한 보고
- 29절.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 에브라임 산지의 자신의 집에 도달한 레위인은 칼을 가지고 자신의 첩의 시신을 훼손했다.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서 이스라엘 각 지파의 땅으로 보냈다. 자신의 분노를 이렇게 첩의 시신에 담아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기브아의 만행을 보고하는 차원이 아니라 레위인 속에 내재해 있는 분노를 표현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는 극악무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첩에게 고마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 레위인은 어쩌면 바람난 첩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런 첩을 징계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가서 데려오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 레위인은 너무나 잔악한 행위를 벌이고 있고, 이로 인해서 무서운 복수의 칼날이 난무하게 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 30절.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 에브라임 산지의 레위인이 자신의 첩을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전달한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사람들은 이 일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래 이런 극악무도한 사건은 없었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의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라고 기브아의 불량배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파국, 파국이다.
가르침 :
1) 레위인이 기브아에 들어가 유숙하게 되는 과정이 힘들었다. 대로에 서 있어도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로에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더럽고 끈적한 정욕의 눈초리를 보였고, 그런 것에 마음이 동한 불량배들이 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한 노인이 그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맞이해서 식사를 대접받고 평안히 쉴 것을 기대했지만, 기브아의 정욕에 물든 불량배들의 습격으로 심각한 위험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상관없이 성관계를 맺는 잔악한 자들이었다. 동성연애가 오직 동성에만 끌리는 행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레위인과 그 하인과 레위인의 첩을 모두 요구했던 것이다.
2) 급박한 상황에서 집 주인인 그 노인은 불량배들을 설득해보고자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보내 이 위기를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제안이 얼마나 잔악한 것인가! 자신의 생명과 레위인의 생명을 보존하고자 연약한 두 여인을 희생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릴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이 끔찍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된다.
3) 레위인이 자신의 첩을 내보내자 불량배들은 그녀를 끌고 가서 온갖 능욕을 저질렀다. 윤간하고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성폭력을 가했다. 밤이 새도록 그렇게 성폭행을 당한 레위인의 첩은 기력이 다해버렸다. 얼마나 처참하게 폭행을 당했는지 새벽 미명에 기어서 그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지도 못하고 문지방에서 누워 죽음을 맞이했다.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믿었던 남편 레위인이 붙잡아 내보내는 바람에 그녀는 불량배들에 의해서 처절하게 찢겨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4) 죽은 첩을 대하는 레위인의 처사는 너무 잔악하다. 레위인이 결코 그녀를 사랑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오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람난 자신의 첩을 데려오는 것이 사랑이 아닌 징계를 위한 목적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를 첩의 시체를 열 두 조각으로 쪼개어 이스라엘 각지에 보내 사람들에게 분노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된다. 이 문제는 심각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레위인은 두지 말아야 하는 첩을 두고,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데려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극악무도한 사건으로 휘몰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이 없이 짐승처럼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사기 기자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살아가는, 왕이 있음에도 왕이 없다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사기 기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과정속에서 이러한 시대를 타파하기 위한 결단을 하게 되고, 결의를 다지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적용 :
1) 사사 시대의 영적 암흑은 끝을 모르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갔다. 레위인이 축첩을 하고, 바람난 첩을 데려왔다. 생각해 보니 왜 그의 장인이 그토록 사위를 극진히 대접하고 떠나지 못하도록 하루 하루 붙잡으며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자 노력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원망과 분노를 발견한 레위인의 장인이 그로 인해서 사위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그렇게 여러날을 붙잡고 또 붙잡았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레위인은 첩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그녀를 버렸다. 그렇다면 고마워해야 할 것인데, 그녀의 시체를 쪼개어 자신의 분노를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퍼뜨리게 된다. 기브아의 불량배들도 문제이다. 그들의 잔악함은 반드시 징계받아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레위인의 처사도 바른 것이 아니었다. 이 레위인도 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자신들이 선택하는 솔루션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기만 한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결정은 이렇게 흘러가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 묻고 또 묻고 결론을 내어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이 살아간다면 사사 시대의 기브아에서 일어난 극악무도한 일이 이 시대에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2) 시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사 시대에 발생한 문제들은 하나의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 내포된 많은 문제들이 함유되어 있다. 그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에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이 있었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고, 철저한 회개 뿐이었다. 사사 시대는 점점 심각해지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사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의 솔루션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날 여러 문제들이 복잡해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고, 문제가 크고 심각할수록 하나님의 해결책이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받는 사건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