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유석근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내증(성경의 증거)과 외증(성경 밖의 증거)으로써 분명히 입증된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 < 셈 ․ 수메르 ․ 코리아 > 그런데 셈은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이라는 다섯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셈의 이 다섯 아들들 가운데서 누구의 자손일까? 한국인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30).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의 13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 있다(창 10:26~29; 대상 1:19~23). 우리가 그들에 대해 탐구할 가치가 없다면 왜 하나님께서 욕단 족속을 성경에 그렇게 차별적으로 거듭 명시하여 남겨 놓았겠는가? ‘욕단의 후손’은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처음 세대 이후로 ‘욕단의 후손’은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다. 그것은 창세기 10장 30절 말씀이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 구절이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욕단의 후손이 어느 땅에 있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욕단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을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도 대부분 그대로 카피해서 가르친다. “욕단은 아라비아로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어요” 라고...
창 10:25~29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욕단의 아들들 가운데 스바, 오빌 하윌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욕단이 아니라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7).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창 10:7).
창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함의 가계인 구스의 후손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왕상 9:26~28)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따라서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 때문에 욕단의 후손이 아라비아 남단에 이주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주장은 단견이며 난센스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오류로 가득한 그들의 낡은 이론을 더 이상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 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서구의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남단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구약학 교수인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창세기 10:30을 해석하면서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는 추즉으로서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그들이”는 앞 구절에 논의된 욕단의 아들들 모두를 가리킨다. 불행하게도 이 구절은 대단히 모호하다. ‘메사’와 ‘스발’과 ‘동편 산’은 모두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스발은 아라비아 남부의 차파르(saphar)라는 해안 도시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첫머리의 치찰음 때문에 이 제안은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메사는 욕단족의 서쪽 경계를, 스발은 동쪽 경계를 나타내며 그 영토는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고 추측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6, p.425)
그렇다! 욕단의 가계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불확실한 것이다.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서구 주석가들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제시한 추측성 이론을 그대로 베껴서 가르치거나 맹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금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론은 마치 확고한 사실인 듯 반복 학습되고 있다. 이 그릇된 교설을 구약신학계의 거목인 글리이슨 아처(Gleason L. Archer) 박사는 저명한 성서고고학자이며 중동학자인 올브라이트(W. F. Albright)의 견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셈의 후손에 관해 엉거(AOP pp.97~99)는 모든 가능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스럽게도 너무 빈약하다. 그런데 욕단(아라비아에 있는)의 후손들에 대해 올브라이트는 아래와 같은 언급을 하였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 이름들은 그 이후에도 수세기 동안 종족의 이름으로 계속되었다.”』(글리이슨 아처 저, 김정우 역, 「구약총론 」, 기독교문서선교회, p.242)
올브라이트가 지적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리이슨 아처 박사는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을 자료가 너무 빈약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엉거가 제시한 자료만 빈약한가?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W. H. Gispen과 G. Ch. Aalders가 제시한 자료들도 궁색하기는 오십보백보다. 고든 웬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교설은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은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주석가들의 불확실한 이론을 무슨 신조처럼 맹종, 카피하여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욕단의 후손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죠”라고... 아주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명백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라 함족이다.
▲ 아라랏산에 정박한 노아의 방주
동양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욕단의 가계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어느 곳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 구절을 원전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우리는 본 절을 통해 메사는 출발지, 새팔(새발)은 목적지, 동쪽 산 혹은 동방 산지는 정착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동방’과 ‘산지’ (HAR HA KEDEM)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창 10:30)
이 구절은 욕단 족속의 거주지를 ‘동쪽에 있는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인데, 단수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단수로 사용되었을 경우 그 의미는 하나의 산(one mountain)을 뜻하기도 하고, ‘산맥’(mountain-range)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mountain-region)를 가리키기도 한다.
“메사로부터 스발로 가면서”라는 구절은 욕단이 그들의 거주지인 ‘동방의 한 산’, 혹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메사’는 욕단의 가계가 동쪽 산을 향해 출발한 장소이다. ‘스발’은 그들의 정착지인 동쪽 산지와 인접한 동방의 새 땅이다. 이 '메사'와 '스발'의 위치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의 “동방(동쪽)”이라는 말과 “산”이라는 말을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 이 낱말들은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이 오류인 것을 즉각 폭로해 준다. 왜? 아라비아 반도는 결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동쪽)”이 아니끼 때문이다.
모세가 말한 욕단 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이라는 곳은, 동양의 “극동 지역”에 있는 하나의 특정한 산(one mountain) 혹은 산지(mountain-region)를 표시한 것이다. “동편 산”은 HAR HA KEDEM에서 변형되었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또는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언급한다. 바로 이것이 KEDEM의 기본적인 뜻이다. 대개 KEDEM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KEDEM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고대 동양”(Ancient Orient)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HAR HA KEDEM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산은 고대의 동아시아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 혹은 산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함을 가리킨다.
https://biblehub.com/hebrew/6924.htm
https://www.studylight.org/lexicons/hebrew/6924.html
KÈDEM is ‘the front of the east,’ or ‘the orient.’
The root idea is “front” —in a geographic sense referring
to the coastlands of east Asia facing sunrise.
In the time sense it can also mean ‘ancient beginnings’ (the front of time),
and can sometimes be translated ‘ancient orient.’
한 가지 더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원어사전은 ‘케뎀’이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임을 가르쳐 준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용법은 욕단의 모든 자손이 동양에서도 아시아의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고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지나(China)는 욕단의 거주지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나(支那)는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의 영토는 결코 ‘하케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코리아의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인 코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는 정확히 ‘하케뎀’이다.
일본도 ‘KEDEM’과 관련이 없다. 왜?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를 뜻하기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은 아시아 대륙에서 분리돼 있으므로 동쪽 가장자리가 아닌 것이다. 독립된 별개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은 ‘KEDEM’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일본이 ‘KEDEM’이면 하와이는 더욱 ‘KEDEM’이다. 일본이나 하와이는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원어사전을 찾아보면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다. 대개 ‘케뎀’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위치한 코리아가 ‘정확하게 하케뎀’이다.
게다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 곧 ‘백두산’이 있고, 코리아의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정확히 ‘하르 하 케뎀’이 의미하는 그 ‘동쪽의 산’이며, 바로 그 ‘동방 산지’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니다. 성경원어 ‘HAR HA KEDEM’이 뜻하는 바에 철저히 부합하는 가장 타당한 해석이다.
동방 산지인 한반도:
보통 위성사진이나 지형도에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형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수평 거리에 비해 수직 높이 표현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NASA의 자료를 바탕으로 안톤 밸라즈(Anton Balazh)라는 그래픽 아티스트가 위와 같은 지도를 만들어냈다.
기존 지도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백두산(하르)을 위시하여 국토 대부분이 산지(하르)인 극동(하케뎀)의 한반도는
평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 조상이 하나님(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백두산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2744m).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主山이 바로 한민족의 聖山인 백두산이다. 그런즉 욕단의 가계는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遷動(천동)하여 ‘한밝산’ 곧 ‘백두산’을 본거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그리하여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한민족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여기서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한반도가 있다.
☞→▶ < Strong's Concordance * 6924. qedem * >
Joktan are the pure Hebrews. Genesis 10:25 states Heber had two sons, Peleg and Joktan.
Genesis 10:30 says Joktan and family migrated to the Far East. They became the Korean descendents.
Peleg migrated to the Middle East and became the Israelite people.
이처럼 한국인은 셈족 계열의 욕단의 후손이다. 그러나 지나족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CHINA는 고려할 대상이 더더욱 아니다. 지나 사람을 부를 때 ‘시노(Sino)’ 족이라고 한다(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라).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 된다(창 10:17). ‘시노’의 어원이 ‘신’인 것이다(강해설교의 대가인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의 창세기 강해서인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다(창 10:6; 15).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지나인들은 셈의 자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것이다.
지나인들이 고대로부터 용을 숭배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셈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셈 계열의 백성은 옛 뱀인 용을 그렇게 숭배하지 않는다. 성경은 용을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말한다(계 12:9, 19:2). 지나인들은 함의 가계 신의 후손이다.
욕단의 거주지는 극동 아시아에 존재한다.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해석은 원어의 사전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이론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바처럼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로서,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으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이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확인해 보자.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의 우측에 위치해 있는데, 아라비아 북쪽은 이집트와, 중부는 수단과, 남쪽은 이디오피아와 위도가 연결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남방'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라비아 반도 역시 '남방'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계시의존 사색"이라는 성경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론이다. 이디오피아의 북쪽과 위도가 연결되는 아라비아 남단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지리학적으로도 아라비아 반도는 '남방'이지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아라비아는 성경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엄연히 '남방'인 것이다. 게다가 아라비아 반도는 인도양 기슭과 홍해 연안 지역 외에는 특별한 산지가 없으며 대부분 사막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그 넓이가 인디아 대륙보다 크다. 그러나 반도 전체가 대부분은 극도로 건조한 사막이다. 따라서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라고 표기해야 타당할 것이다. 아래 위성사진을 보라. 반도 전체가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리비아 반도
▲ 사막으로 형성된 아리비아 반도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도 아니고, 게다가 산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땅을 하나님께서 '동방 산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감히 하나님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아리비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수단, 이디오피아와 위도를 공유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는 단연 '남방'이지 결코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억설(臆說)인 것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전혀 아니다.
셈의 현손 욕단은 대홍수 후 그의 자손들과 함께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멀리 '스발'로 遷動(천동)하여 극동 아시아인 '케뎀'에 정착했다. 욕단의 가계는 서아시아 지역을 완전히 떠나 동방의 땅 끝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므로 아라비아 남단에서 발견된다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 및 지명은 욕단 족속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 지명들은 구스의 후손인 함족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들이 사고의 폭이 좁은 서구 주석가들의 낡아빠진 틀린 해석을 金科玉條(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성경 원어 ‘HAR HA KEDEM’의 뜻을 완전히 무시한 서구 기독교의 그 엉터리 해석을 신조처럼 맹종하며 무비판적으로 카피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욕단의 영토는 아라비아 남단에 있는 거야”라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신대 변종길 교수(신약신학)는 한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필자의 해석을 비판하는 글을 경멸하는 논조로 작성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존의 해석과 다르다는 게 이유다. 오류 자체인 서구 신학의 낡은 이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것이다.
평택대학교(구 피어선신학교)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지닌 조덕영 교수 역시 그런 인물이다. 조 교수는 필자의 저서 "알이랑민족"을 사설이라고 매도하는 글을 여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유포했다. 그는 한국인의 성경상의 조상이 욕단이라는 필자의 타당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문제는 이들 일행이 욕단 가족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더욱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는 데 있다. 즉 욕단 후손들이 주로 아라비아반도(현 사우디 지역) 지역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들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덕영 교수는 욕단의 가계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한다. 그 까닭은 욕단이 아라비아 반도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욕단이 동방으로 천동하여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석하면, 그것은 욕단 족속이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이론과 맞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는 말인가? 서구 신학자들의 해석은 오류가 없나? 조덕영 교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고 확신하는 인물이다. 조 교수가 얼마나 서구 신학자들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맹종하는지 알 만하다. 조덕영 교수는 ‘HAR HA KEDEM’이 무슨 뜻인지 당장 원어사전을 찾아보라. 심각한 참사는 조 교수와 같이 서구신학의 이론은 틀린 것까지 베껴 가르치는 카피 신학자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심각한 참사를 중단시킬 것이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를 ‘동쪽 산’이라고 말한다(창 10:30).
여기에서 '동쪽'은 ‘케뎀’이라는 명사인데,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즉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대개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서구 신학자들이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남부든, 동부든, 서부든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라는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KEDEM의 기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창 10:30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 본 구절은 당신에게 메사가 출발지, 새팔(새발)은 경유지, 동방산지는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 2절은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여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동편으로부터(from the east) 이동할 때 그들은 시날 땅에서 평지를 발견하여 그들은 거기서 살았다”(창 11:2 ․ 원전 직역).
한글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동방으로’는 히브리어 ‘믹케뎀’인데, ‘케뎀’은 동편이고 ‘믹’은 ‘으로부터’라는 전치사이다. KJV(King James Version)은 원문에 맞게 “from the east”로 번역하였다.
“And it came to pass, 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that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Gen 11:2).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날평지(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 안에 있는 지역)를 만났던 것이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아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바로 그 동방의 어떤 장소(중앙아시아 근접 지역)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다. 성서고고학자 원용국 박사(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는 그의 저서 「창세기 주석」에서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처음에 아라랏산 남동쪽의 시날 평지로 가지 않았고 먼저 아라랏산 동쪽인 이란 지역(이란 북부에 해당)으로 이동했다고 올바르게 설명했다.
“권위 있는 번역본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아라랏 지역에서 이동하여 ‘동쪽에서’ 시날 평원으로 가게 되었다. 시날은 아라랏의 남동쪽이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에 남동쪽 멀리 여행하였음을 의미하는데, 아마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나 후에 다시 메소포타미아가 있는 서쪽으로 돌아간 것이다.”(원용국, 「창세기 주석」, 호석출판사, p.239)
주석가 랑게 역시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원용국 박사의 해석과 같은 논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믹케뎀 -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이다. 방주가 닿았다고 생각되는 알메니아는 시날의 서북쪽에 있다. 이래서 원시인들이(주- 홍수생존자들) 시날에 올 때에 저희가 파사(이란)를 경유하여 동방으로 여행해 왔다고 생각하게 한다." (랑게 주석 창세기)
↑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아라랏산
“그들은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라랏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벨론, 즉 시날 땅의 동쪽에 있다.
그들은 티그리스 강의 동쪽 땅,
즉 이란이나 인도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럭크만 주석의 창세기 11장 2절 해설-
↑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욕단이 나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단서가 됨으로 주목해야 한다.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경로는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것으로 100년 이상 계속 되었다. 창세기 11:10~16절은 에벨이 벨렉을 낳기까지 홍수 후 101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며, 창세기 10장 25절은 벨렉이 바벨론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장 2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
(원전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느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보통명사로서 이 단어는 ‘운하, 수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욕단은 벨렉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지 않았다. 욕단은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시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무리와 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동하던 무리들은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날 평지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욕단이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그가 서부로 향하는 주요 집단과 헤어져 동양으로 이주 경로를 변경하였음을 증거하여 준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다. 즉 서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르’(������)에서 ‘히브리’(י������)가 유래되었다. ‘히브리(י������-이브리:Hebrew)’는 ‘에베르(������)’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로서 “에벨”(Eber)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descended from Eber)을 뜻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곧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이다. 즉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의 후손은 서부 히브리 민족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의 후손은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욕단의 후손도 히브리 민족에 속한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에는 두 히브리 민족이 존재한다.
두 히브리 민족으로 나뉘인 셈의 가계
Shem’s Family is divided into Two Hebrew Ethnic Races
*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다 -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 (창 10:22)
*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창 10:21)
* 에벨(Eber)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히브리(Hebrew)라는 낱말이 파생했다.
*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다 - 벨렉과 욕단 (창 10:25)
* 벨렉은 유대인(the Jews)의 조상,
욕단은 한민족(the Korean people)의 조상이 되었다.
폴 왕(Paul Wong)이라는 지나 목사는 욕단이 지나(China)인의 조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지나친 착각이며 자기 기만이다.
지나인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우리는 창세기 9장 28절에서 노아가 바벨탑 사건 이후까지 생존하였으며 다른 홍수 이후 족장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11장).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면 바벨탑 건설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바벨론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요(창 6:8), 의로운 사람이었기에(겔 14:14 ; 벧후 2:5) 분명히 바벨론의 사악한 행위와 니므롯의 왕국(창 10:8~10)에 반대하였을 것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도록 인도한 사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바벨탑 건설을 선동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노아와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이 이 시기에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주석적 방식으로 유추할만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들이 욕단과 함께 아시아로 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배교가 극심할 때 참된 믿음을 지닌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두셨다. 그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하는데, 욕단의 가계는 바로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함족 니므롯에 의해 위협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보전(保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욕단과 그와 함께 한 다른 모든 홍수 후 족장들은 이란 고원이나 중앙아시아에 근접한 어떤 장소에서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떠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욕단 민족이 동양으로 정착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인류는 대홍수 이후 첫 번째 이산의 역사를 경험했다.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욕단과 함께 동쪽 산을 찾아 ‘스발’을 향해 이동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로 홍수 생존자들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방으로 산지를 찾아 이동했는데, 메사(Mesha)는 지도상에서 아라랏산 동편의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드(Meshhad)라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론은 정황 증거가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객관적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에 아라랏산에서 하산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홍수 생존자들은 우선 이란 북동부, 카스피해 남동쪽에 위치한 ‘메사’ 지역까지 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는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의 길목이다.
메사 동북쪽으로 파미르고원이 있고, 파미르고원 동북쪽으로 천산산맥이 있고, 천산산맥 동북쪽에 알타이산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라랏산’(카스피해 서쪽)을 출발한 홍수생존자들은 처음에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카스피해 남안을 끼고 동진하던 중 이란 북동부의 ’메사‘까지 갔던 것이다.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은 이 ‘메사’로부터 동쪽 산을 찾아 가고자 ‘스발’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즉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새 땅을 찾아 ‘출발’한 장소가 바로 ‘메사’이다. 나머지 홍수생존자들 역시 그 이란 북동부의 ‘메사’에서 욕단의 가계와 갈라져 서부 바벨론을 향해 ‘출발’했다. ‘메사’의 의미는 ‘출발’(departure)이다.
↑스트롱 원어사전: ‘메사’의 의미는 ‘출발’
시날<--- 서쪽 <--- 니므롯 <--- 메사 ---> 욕단 ---> 동쪽 --->스발
우리 겨레의 노래 ‘알이랑’은 바로 그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높은 산들과 고원을 넘어 가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아리랑의 어원을 ‘알이랑’으로서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즉 욕단은 홍수 후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나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전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나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새벌=스발=스가발)을 찾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알이랑의 역사적 태동 배경이다. ☞→▶ < 아리랑의 비밀과 한국인의 정체성 >
↑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에 있다. 메시는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홍수 생존자들은 카스피해 서쪽의 아라랏산을 떠나 카스피해 남동쪽의 메사까지 동방으로 이동했다.
욕단의 가계가 바벨탑 건설 이전에 미리 배역자들과 분리되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동방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연대기 도표
(이미지 위를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
스발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쪽의 산 혹은 산지를 찾아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遷動(천동)했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遷動)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나 현상이 '암시적'으로 미리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거시적 안목으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동양에서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새팔’은 '새발'이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ㅂ’을 거세게 발음하면 ‘ㅍ’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지붕’을 ‘지풍’‘,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70인역 성경도 ‘새팔’의 ‘팔’을 ‘발’로 음역했다(스발). ‘새팔’은 '새발'이요, ‘새발’이 곧 '새팔'이다.
욕단의 가계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 스쳐 지나간 ‘새발’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 지역의 어느 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메사를 출발하여 케뎀, 즉 동쪽 가장자리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들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양의 산맥들을 벗어나서 나타나는 동쪽 땅을 새팔’(새발)로 지목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시베리아이다. ‘새발’은 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이 이었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이 ‘새발’이 시베리아(시비리)의 어원이다.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가면 마침내 ‘새벌(새팔=새발)’이 나타난다. 바로 시베리아 벌판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스가발’과 동의어로서 ‘새벌’(New Field)의 옛말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응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새팔’(스발)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즉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아시아 동쪽 땅이 바로 ‘새발’인 것이다. 그러니까 욕단의 가계는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서시베리아~동시베리아~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한 것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새벌’(새발:새팔)로 천동한 이유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아주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나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했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의 가계는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아주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 밝달겨레-백의민족 >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하나님)을 공경하던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 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의 가계는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우리말 ‘주신’(쥬신)이었다.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는 뜻의 ‘쥬신’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성스러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그것이 대쥬신(조선)의 모태였다.
이제 우리는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새발)은 시베리아 최초의 지명인 ‘새발’(새벌)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성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인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벨렉의 후손’과 ‘욕단의 후손’은 셈에게 주신 복을 승계 받는 천손(天孫), 곧 거룩한 선민의 가계이다. ☞→▶ <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 벨렉과 욕단의 후손 >
셈에게 주신 복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창 9:26). 둘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는 것(창 9:27), 즉 셈의 장막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이 받은 특별한 복이다. ☞→▶ < 노아의 예언적 노래 >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같이 되었다.
▲ 백두산
▲ 아라랏산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새벌)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의 가계는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배달민족의 뿌리는 욕단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우리 한국인의 선조인 것이다.
▲ 알이랑민족의 선조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창 10:21~30).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족이다. 바이칼은 부루아리(현대어로는 밝알이다)인데 부루는 밝의 고어이다. 즉 부루에는 ㄱ 혹은 ㅋ 이 없지만 중세를 지나 종성이 만들어지면서 ‘밝’로 변화하듯이 부루는 부이르= 부여로 변하며, 이에 ㅋ 이 덧붙여져 고대 몽고족에서 부이크가 된다. < BR> 이것이 못, 물, 강, 알(하느님) 혹은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아리와 결합하여 바이카리, 다시 바이칼로 전환한다. 바이칼의 뜻은 밝은 못 또는 밝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차이나 내몽고서 발견된 ‘한국형 암각화’ 2008년 8월 26일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발견한 ‘한국형 암각화’. 동심원, 마름모, 방패모양 등 기하학 무늬가 특징인 한국형 암각화는 1971년 울산 천전리를 시작으로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됐으나 내몽고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대에 그 땅의 주인이 우리 조상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근거다.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소재 양전동 암각화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성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겨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제2의 성민이다.
욕단의 가계는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스발’(스바르=시비리=새파르=새바르=새발=새벌), 곧 오늘날의 시베리아~만주로 이동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 아래는 한글 고어가 지원이 안 되어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pp.130~133에 수록된 원고를 캡처해서 올림 *
▲ 아라랏산
아라랏과 시비리
창세기의 기자 모세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다(창 8:4).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의 터키 북방에 있는 산이다. 그러나 모세는 터키 근방에도 가 본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을까? 전승이나 계시에 의거해 그렇게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영감과 계시로 말미암아 욕단의 경유지인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도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었다고 간주해야 옳다. 이것은 결코 끼워 맞춘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아주 타당한 이론이다. 터키 북쪽의 아라랏 처럼 모세는 극동의 ’새발‘도 능히 성경에 기록할 수 있었다.
창세기 10장 2절에 보면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메섹’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모스코)의 유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랄산맥 동쪽에 위치한 ‘토블스크’라는 지명은 ‘두발’로부터 기원했다고 말한다. 야벳의 아들 두발과 메섹이 그곳으로 가서 정착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토블스크와 모스크바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나? 우선 야벳 족속은 북쪽과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 <셈, 함, 야펫이 차지한 땅과 그들의 후손> 그런데 ‘메섹’은 ‘모스크바’와, ‘두발’은 ‘토블스크’와 발음이 유사하다. 이게 근거의 전부다. 하지만 누구도 끼워 맞춘 해석이라고 매도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대로 수긍한다. 정황상으로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욕단의 경유지 ‘새발’(새팔)이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충분히 가진다. 왜? 성경은 욕단의 가계가 동양의 산맥을 넘어 ‘새발’(새팔)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0:30). ‘새벌’의 고어인 ‘새발’은 시베리아(시비리)의 처음 지명이었다. 욕단의 목적지 ‘새발’이 시베리아~만주라는 해석은 학문적 근거를 확보한 타당한 이론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비리 -시베리아의 고유 지명으로 ‘새벌’이라는 뜻의 우리말- 는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대 한국인의 일부는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와 북미~남미 대륙으로 이동해 남북미 대륙의 원주민(인디언과 인디오)이 되었다. 당시 베링해협은 육로로 연결돼 있었다.
↑ 욕단 가계의 이동 경로
히브리어 ‘새팔’(스발, Sephar)의 예언적인 뜻
‘스발’(새팔, Sephar)은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의 최종 경유지였다. ‘메사’(Mesha)에서 출발하여 동방의 새 땅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한 욕단의 가계는 동양의 크고 높은 산지들 곧 파미르고원, 천산산맥,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마침내 ‘스발’(새팔), 곧 시베리아까지 도달하였다. 앞서 확인한 바처럼 시베리아의 처음 지명이 우리말 새발(새팔=새벌)이었다.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고 장강대하(長江大河)를 건너는 대장정 끝에 아시아 동쪽의 스발(새팔)에 당도한 욕단 족속은 먼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자기들의 수가 과연 몇 명인지 인구조사를 했을 것이다. 도중에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동방으로 이동한 그들의 수가 몇 명인지 분명히 세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새팔(Se'phar; Heb. Sephar', ספִר)은 “수를 세다”(a numbering)는 뜻이다. (☞→▶https://biblehub.com/topical/s/sephar.htm) 이것은 동방의 땅 끝 스발(새팔)에 도달한 욕단의 가계가 자기들의 수를 세어보았을 것임을 암시한다. 바로 그들이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민족사를 시작한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의 거룩한 조상인 것이다. ‘새팔’(Sephar)이라는 지명은 인구수가 많은 CHINA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셈의 현손 욕단이 한국인의 직계조상
우리 겨레의 성경상의 조상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창세기 10장 21절 이하에 보면 셈의 후손 중 대홍수 후 가장 먼저 동방(극동)의 산지를 찾아 ‘스발’(스바르~시비리=새벌=시베리아~만주)로 遷動(천동)한 욕단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그가 우리 한민족의 뿌리요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이다.
예수원 설립자이신 대천덕(R. A. Torrey, 사진) 신부(성공회)는 욕단을 단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대천덕 신부는 우리 민족은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며 단군은 욕단일 수 있다고 자주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은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래는 그 전문.
“셈의 자손 중에 에벨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0장 25절은 그 아들을 벨렉과 욕단으로 소개하여 벨렉이 태어날 때 땅이 갈라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바벨탑 사건 때의 분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욕단과 그 후손은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이주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편 산들은 한국의 산들이고 태백산의 제단을 세워둔 단군은 욕단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단군의 기원은 욕단의 이주한 시기와 같습니다. 히브리말로 ‘욕단’은 ‘작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 벨렉의 어린 동생이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벨렉의 후손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그 후손이며,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그 후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예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인 것입니다.”(신앙계, 1999년 9월호 p.115)
그렇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한 조상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인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대천덕 신부님의 혜안이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과 유대인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국인과 유대인 두 민족은 한 아비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닮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 <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쌍둥이처럼 닮은 것들 >
또한 지금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의 랍비들은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광섭 목사(예수세계교회 담임)는 성지순례 차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한 유대인 랍비를 만나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랍비는 "그렇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이다"고 답변했다고 그가 확인한 사실을 필자에게 통보해준 적이 있다.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확언하는 유대인은 랍비들만이 아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이른바 ‘메시아닉 쥬’의 지도자인 유대인 목사도 있다. “시온의 장막(Tabernacle of Zion)” 대표로서 선지자 사무엘의 거처였고 기브온 산당이 있던 사무엘 산에서 1993년부터 중보기도사역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메시아닉 쥬 목사(사진)도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탐 헤스 등 이스라엘 내 복음주의 사역자들의 영적인 멘토 역할을 하고 있고, 아셀 인트레이터, 댄 저스터 등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서로 중보기도로 연합하고 있으며, 유대교 랍비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 목사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역중인 필자의 지인인 전희원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입니다!”
그렇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던 욕단 족속은 대홍수 후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멀리 동방의 ‘스발’(시베리아~만주)로 천동(遷動)했다. 그리고 ‘HAR HA KEDEM’ 즉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본거지로 삼아 밝달나라를 세우고 우리 배달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제 한국인은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동방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알면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하나님이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끝에 은닉해 두신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으로서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제2의 성민이다. 그렇기에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거룩한 백성 ‘알이랑민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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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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