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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사경반

청정사경반: 숫타니파타 [출가의 경] 총정리

작성자불일 법수|작성시간26.06.15|조회수24 목록 댓글 0

숫타니파타 [출가의 경] 총정리

20개의 시로 구성이된 이 경전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후반부 25년을
비서격으로 늘 부처님 곁에 있었던 아난다
스님으로 아주 짧은 부처님의 전기의 일부분의
오래된 기록으로 보아도 좋을듯한 중간 길이의
경전이다.

등장인물이 당시의 큰 나라의 왕인
빔비사라왕과 그 신하들 그리고 사문
고따마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이며 전체의 논술자는 아난다 스님이다.

아난다 스님은 부처님의 성도후에 출가를
하게 되므로 출가한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다른 부분은 석가 세존
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하였다가 시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므로 전체적인 중심의 내용은

석가 세존께 당시의 마가다국의 국왕을 만나는
인연을 스스로 말씀하신 내용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생애의 자료 가운데에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은 새내기 수행자 시절 탁발을 하며
유행하던 시기의 기록으로 그 정확성은 다큐
멘터리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다른 예절상의 문제는 간단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므로 당시의 일반적인 풍속 습관의 관례로
보면 될듯하며 세존과 왕의 대화는 이 시에서는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다른 자료에는 더 많고
풍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왕의 입장에서 사문
고따마가 마음에 드니 스카웃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마음이 완전하게 결정이 되어버린 새내기
출가자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사유해보며 다른 자료에
보면 사문 고따마에게 제시하는 예우 요건이
대단히 파격적이기 때문에 아마도 큰 뜻을 품지
않은 다른 수행자였다면 환속하여 천하의 반을
다스리는 쪽을 선택 했을 수도 있으며

왕이나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차
버린 수행자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세간과 출세간 즉 출가가와 재가자의 사유와
이상의 차이가 얼마나 다르고 심한지 알 수
있는 경전이며 이 경전의 제목이 [출가의 경]
이라고 이름이 붙은 부분도 사문 고따마의
출가는 참으로 큰 결심이며 커다란 버림 이후의
아무것도 없는 어려운 수행자의 삶의 선택이기에

당시의 바라문으로 보면 결혼도 권력도 다
누리면서 수행까지 겸하는 것을 그들의 입장
에서는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문
고따마는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력을 이미 다
맛보고 버린 사람이었으며 진정으로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출가라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왕의 천하는 나눔의 유혹등의
어떠한 딜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출가라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으로 보면 전통적인 바라문들은 이미 기득권의
세력이 되어서 많이 변형되고 왜곡되고 부패한
측면이 상당히 심했음을 알 수 있으며 진보적인
사문 수행자의 출현은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였
으므로 사문 고따마는 속된 말로 양다리 걸치고
어중이 떠중이가 아닌 진정한 출가자 진정한 사문
진리를 향하는 수행자 청정한 해탈자라는 목표와
이상이 처음부터 너무 확실하고 분명하였기에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당시 가장 큰 나라국에 하나였던 코살라국의
속국에 해당하는 카필라 그 나라의 왕자 출신이
마가다국에 왔으나 만약 요즘의 첩보로 본다면
민감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나 당시는 첩보
활동이 그렇게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빔비사라왕의
입장에서는 궁금하고 궁금하였으며 당시에 소문이
나기를 카필라국의 왕자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는
소문은 작은 이유가 아닐 수도 있으므로 다른 자료
에는 왕이 그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확인차 신하를
파견하여 뒤따르게 하고 방문을 한것이며 만약 왕자
출신이 사실이라면 인재이며 나이 차이도 많지
않으니 스카웃 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충분하게
짐작하고 남는다.

그러나 만나보니 그런 권력이나 명예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진정한 해탈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수행자라고 판단하고 후에 붓다가
되면 반드시 제일 먼저 자신의 나라를 방문해 달라고
약속을 하며 첫 만남은 그렇게 정리되고 그후 세존은
유행을 하며 여러 스승을 찾아 다니며 토론과 실수행을
통해서 여러가지 체험을 하였으나 완전한 깨침을 얻지
못하고 극단적인 고행까지 단행을 해보지만 역시
안되어 극단적인 고행을 내려놓고 보리수의 금강좌에
앉아 새벽별을 보며 의문이 모두 풀리며 완전한
깨달음을 체험하고 붓다임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시간이 좀 지나 수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마가다국을 방문하고 빔비사라왕
과의 재회를 통해서 약속을 지키며 왕은 아주
기뻐하며 불교 단체의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를
지어 희사한다.

그 이후에도 빔비사라왕과의 교분은 계속 된
것으로 보이며 왕이 나이가 들어가고 게을러지며
살도 많이 찌고 뚱뚱해지니왕비되는 위제히 부인이
불심이 깊은 분이어서 세존을 청하고 살 빼고 건강
하게 사는 법을 묻게하고 그 일이 성사되어 공양청이
있었고 세존은 왕에게 먹는 것을 혐오하여 음식을
멀리하는 수행법[식염상관]을 지도해주어 살도
빼고 건강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으며

그 사이 빔비사라왕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나
용서를 해주기는 하지만 아들은 그 후에도 왕에게
반감을 버리지 않고 왕의 말년에 구테타를 일으켜서
왕을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 왕이 되는데 그 배후에
데바닷다의 술수가 들어 있었으니 데바닷다는 승가의
왕이 되어 부처의 자리를 계승하고 왕자는 아버지를
죽이고 세상의 왕이 되자는 간악한 방법을 기획하고
세번이나 석가 세존을 죽이려고 시도를 하였으니

여기에 나오는 산 외에 독수리봉이 있는 산에서
바위를 굴리는 장면도 유명한 장면에 속하고
한번은 무사를 보내고 한번은 코끼리를 술을
먹여 석가 세존과 제자들을 밟아 죽이려고 시도한
사실이 부처님의 전기에도 기록이 되어있다.

그때의 세상의 조력자로 아버지을 가두고 굶어
죽게한 왕자가 주역이었으니 아버지가 죽고
반역으로 왕이 된 그는 아주 흉한 종기가 생기고
어떤 의사도 치료하지 못하니 결국 석가 세존을
청하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왕은 침회의
눈물을 흐리며 진심으로 반성하며 악성종기가
치료된다.

이러한 이야기 이외에도 약간의 각색의 과정을
거친듯 하지만 대승경전의 모토가 되었던 이야기가
빔비사라왕과 위제히 왕비와 부처님 사이에 특별
하게 설해진 경전이 있다는 대승경전의 전승이
전해지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여기까지만 하고
마무리를 할까 한다.

사문 고따마는 당시 새내기 수행자였으므로
그 의젓하며 야무진 출가의 결심을 한 나라의
왕을 향하여 밝힌것과 같으므로 후반부의 게송을
전재성 역주본에서 게송만 옮기며 글을 마친다.

422
[세존]
"왕이여, 저쪽 히말라야 중턱에 한 국가가 있습니다.
꼬쌀라국의 주민으로 재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423
씨족은 ‘아딧짜’라 하고, 종족은 ‘싸끼야’라 합니다.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왕이여, 나는 출가한 것입니다.

424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재난을 살피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고자 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2570.6.15 법주도서관&자주선림
교수사 자림 심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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