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3:2-427 자림 가사단상]
3.큰 법문의 품
2. 정진의 경
427. [악마 나무치]
당신께서 죽지않고 살가망은 천에하나
존자시여 사는것이 좋겠지요 살아야만
공덕성취 할수있고 사는것이 중요하죠
----2570.6.18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3:2-427 자림 시조단상]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 천에 하나
존자여 사는것이 좋겠지요
살아야 공덕 성취가 가능하니까요
●●●더하는 말○○○
죽음의 반대는 삶이다.
상대적인 원인과 결과의 고리로 상식적이라면
이러한 죽음과 삶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거의
삶을 택할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밀려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죽음은 모르는 영역이고 삶은 그래도 어느정도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은 짐작이 가능한 삶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휠씬 높다.
그리고 유혹의 고수 악마 나무치는 당근을 제시한다.
살아야만 공덕을 쌓을 수 있느니 사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며 외치는
비극의 대사 한 마디는 어쩌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공감하며 어떠한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 당해야 하거나 그것에
관계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한 선택의 흐름
으로 매몰되니 마음이야 살고 싶으나 상황을 보니
죽어야 하고 죽자니 다 잃어버리니 두려운 것이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서양철학이나
기독교의 사상은 이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하여
주고 받고 돌고 도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상적,
종교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답이 없다.
석가 세존의 진정한 출가동기도 내면에 이러한
근본 문제에 대한 진정한 답을 원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석가 세존은 출가 이전에 이러한 삶의
단맛을 그 끝까지 이미 체험해서 알고 있는 사람
이기에 악마 나무치의 일격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허공의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
누려 볼것 다 누려 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행복, 안락은 없고 즐거움 뒤에 밀려오는
허탈감과 모순 그리고 외로움 저 감각적 쾌락의
끝판인 춤과 노래 성적인 유희와 권력과 명예
그것은 석가 세존에게 공덕도 되지 않고 그런
것으로 더 사는 것보다 출가의 길을 선택해서
해탈 열반을 구하려 했던 것이니 그러한 마음과
마음의 교차점을 체크하지 못한 나무치는 세속의
유혹과 매력으로 어찌 해보려는 수작의 한 마디로
낚시를 한다.
악마 나무치의 표현은 요즘말로 자료까지 제출
하며 공격한다.
천명 가운데 한 사람정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안된다고 안하는건 아무리 악마지만 석가
세존같은 수행자는 처음 만나다 보니 혹시 나도
틀리지 않을까 하여 우려의 빠져 나가려는
구멍과 같다.
천명 가운데 하나면 일반적으로는 포기를 해야
마땅하지만 이것은 악마의 한 수이며 신의 한 수
일지 모르지만 부처님의 한 수는 확실히 다르니
그러면 부처님의 한 수를 부처님 자신이 어떻게
대답을 할지 궁금하면 계속 다음 시를 공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