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윤정웅교수칼럼마당

(윤정웅 에세이) 명절과 노부부

작성자윤정웅 교수|작성시간22.11.24|조회수1,309 목록 댓글 11

 

수도권 변두리에 사는 70대 어느 노부부는 코로나19가 무서워 밖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한 채 여름을 보냈습니다.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화이자 예방주사 한 방 맞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음이 고맙기만 합니다.

 

어제는 문틈에서 쓰르르 쓰르르귀뚜라미 한 마리가 울어대더니 오늘은 세 마리, 네 마리가 울어 댑니다.

대여섯 평 되는 앞마당에는 새색시 연지 같은 가녀린 코스모스 사이로 짝 잃은 벌 한 마리가 잉잉거리고 있네요. 젊었는지 늙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짝을 잃은 저 벌은 험한 이 세상을 혼자 어찌 살아갈꼬?

 

뒷 마당 은행나무 밑에는 냄새 고약한 은행알 하나가 툭~ 떨어지네요.

또 가을이 왔구나! 저절로 느껴집니다.

벌써 가을? 세월 속의 숨바꼭질은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늙어가는 인생이 야속할 뿐입니다.

 

이팔청춘도 아니고, 갱년기도 아닌 70대 늙은 부부는 오늘도 방바닥에 빠져있는 한 개의 머리카락이

서로 당신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곧 있으면 애들 올 것잉께 머리카락 잘 치워.

 

, 알았시유. 늙은 마누라는 잠도 없는지 밤에 보면 부엌에 있고, 새벽에 보면 마루에 있습니다.

나이 든 마누라 손등에 그려진 저승꽃이 오늘따라 더 선명해 보이네요.

 

할머니는 계속 일을 하십니다. 뭘 그렇게 하시느냐? 고 물어봤더니

떼거리로 몰려올 손자와 손녀들에게 주려고

식혜도 만들고, 물김치도 담고, 송편 만들 것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음식 솜씨가 좋아 한 가락 하셨다고 소문난 할머니이십니다.

 

우리 며느리들은 게장만 보면 환장을 하는데 게 값이 비싸서 으짜꼬 잉?”

한우 갈비는 못 사더라도 엘에이 갈비라도 사야 할 텐디?”

가끔 손끝으로 허리를 자근자근하기도 하고,

한숨도 쉬어 가면서 엉덩이 붙일 시간 없이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명절이 되면 이 집 식구는 다섯 배로 불어 납니다.

큰아들 내외와 자녀 둘, 작은아들 내외와 자녀 둘, 셋째 딸, 넷째 딸 등 전부 열 명입니다.

3개짜리 단독주택에 열 명이 모이면 앉지 못한 채 서서 밥 먹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웬수 같은 명절은 왜 쉬지도 않고 찾아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자식도 명절만 되면 찾아오곤 하니

명절 때는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나이 든 사람들은 더 피곤합니다.

 

며느리들에게 얘야, 더 쉬었다 가거라.” 행여 그런 말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내가 피곤하듯이 저도 피곤할 테니까요. 굽이굽이 돌아가도 또 한 굽이가 남아있는 게 인생길 아닙니까?

또 요즘 살기가 좀 어려운가요.

 

며느리 자기들도 바쁘고 힘들고, 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앞에서 시집살이를 한다고 하잖아요.

다행히 우리 며느리들은 천성이 착해서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집도 아파트가 문제가 되어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2년 전 추석 명절 무렵에 큰 며느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버리고 전세살이를 하고 있거든요.

그때 그 집을 4억에 팔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훨씬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 후 큰아들은 며느리와 말도 안 합니다. 시어머니가 큰아들을 달래고는 있지만,

며느리도 잘 되려고 팔았지 못되려고 팔았겠습니까? 다행히 큰아들 사업이 잘 되니 별 걱정은 안합니다.

 

늙어서는 작아도 단독에 살아야 사람 사는 맛이 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우르르 몰려오는 자녀들을 다 받을 수도 없습니다. 단독에는 인정미가 넘칩니다.

이웃 간에 사랑도 흐릅니다.

그래서 단독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한 사람들이 다시 단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늦게 핀 호박꽃이 앞마당 울타리를 휘감고 있네요.

우리 영감 내외는 저 호박꽃을 명절 꽃이라 부릅니다.

저희 영감 할멈이 저세상에 가는 날은 저 호박꽃도 볼 수 없겠지요?

호박잎 뜯어 살짝 데쳐서 쌈장하고 한 입 먹어 볼랍니다.

 

어이쿠, 호박잎 뜯기도 전에 큰아들 가족이 탄 승용차가 도착하네요.

이어서 둘째 아들 가족이 탄 승용차도 마당에 들어오고, 셋째 딸 넷째 딸이 탄 승용차까지 도착합니다.

영감님은 승용차 정리를 하십니다. 오라이~ 오라이~ 할머니 엉덩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습니다.

 

 

글쓴이 : 윤정웅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031-681-6627 010-5262-4796

21세기부동산힐링캠프 대표. http://cafe.daum.net/262479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고은 | 작성시간 22.11.29 감사합니다.
  • 작성자윤주영 | 작성시간 22.11.29 실제로
    이루워지는 현실입니다.
    백번 공감합니다.
  • 작성자미투m | 작성시간 22.12.05 정겨운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kcs김창수 | 작성시간 22.12.20 예전 명절이 이런 모습이었지요. 재미있게 보았 습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정광자 | 작성시간 23.01.09 교수님의 구수한 글 오랫동안 읽기를 원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