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향군 연천지역 안보담사.
일시 : 26년 6월 12일
장소 : 경기도 연천 안보지역 담사.
참석 : 회장 김의주님외 44명.
코스 : 신라경순왕묘 - 고랑포구 - 상승전망대 - 백학마을 지게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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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연천 경순왕릉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무덤입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으며,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곳에 있는 왕릉입니다.
신라 제56대, 마지막 임금 935년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고 신라는 멸망 이후 고려에서 예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경순왕릉은 "나라를 잃은 왕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후삼국 통일 과정과 신라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는 역사 유적입니다.
"연천 경순왕릉은 신라 천년 역사의 마지막 왕이 잠든 곳으로, 망국의 아픔과 통일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는 뜻깊은 왕릉입니다." 경순왕릉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나라가 어려워질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와 공동체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한 번 잃은 나라는 되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화합의 중요성입니다. 분열보다 통합이 나라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경순왕은 백성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나라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억하며 국가를 지켜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라를 사랑하고, 역사를 잊지 않으며, 화합과 책임으로 공동체를 지켜 나가야 한다."입니다.
중식은 백학마을 부녀회서 운영하는 공동식당에서 부페식으로 하였으며 식사후에는 서초향군 회장님께서 지원하시는 메틀리스(미군에서 탄약을 운반한는 말의름)카페에서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정다운 대화가 있었으며 국수까지 한박스 주시면서 6.24.은 6.25.전쟁 안보결의대회가 있다, 하셨다.
육군 제25보병사단이 관리하는 *상승전망대(常勝展望臺)* 의 명칭과 존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1.상승(常勝): '항상 상(常)' 자에 '이길 승(勝)' 자를 써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언제나 승리한다"*는 군인 정신과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승OP(관측소)'로 불리던 최전방 경계초소였습니다.
2. 역사적 의미: 최초의 남침용 '제1땅굴' 발견지 상승전망대가 위치한 곳은 안보 역사상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제1땅굴의 발견: 1974년 11월 15일, 25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DMZ 수색 정찰 중 지하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면서 북한의 첫 번째 남침용 땅굴을 찾아낸 역사적 현장입니다.
안보의 경각심: 당시 남북이 평화 통일을 모색하자며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북한의 화전양면전술(겉으로는 평화, 뒤로는 전쟁 준비)을 폭로하고 우리 국민에게 큰 안보 경각심을 준 상징적인 곳입니다.
3. 군사·지리적 의미: 최전방 관측소(OP)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 위치해 있으며, 북한군의 활동을 24시간 빈틈없이 감시하는 최전방 관측소입니다. 망원경을 통해 철책선 너머 북한군의 초소와 군사 시설은 물론, 현재는 비무장지대가 되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드넓은 연천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입니다.
상승전망대 앞에는 "찾고잡자 5·5·5"라는 독특한 문구의 비석이 있습니다. 이는 25사단의 상징적인 구호로, "북한군 5명 잡고, 5번째 남침 땅굴을 발견하고, 북한군 5명을 귀순시키자"는 확고한 경계 태세와 안보 의지를 뜻합니다.
현재는 실제 제1땅굴이 비무장지대 내에 있어 직접 갈 수 없기 때문에, 상승전망대 내에 실제 크기의 땅굴 모형과 안보 전시관을 조성해 국민들이 안보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안보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50년 7월 26일 공포된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민간인 징발 활약 지게부대 또는 A Frame Army 라고 불리운 이들은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졌다. 45kg이 넘는 군 보급품을 등에 매고 높은 산봉우리까지 매일 10km의 산비탈을 돌아 참호(塹壕)까지 몇 차례씩 오르내렸다. 노무부대는 1950년 7월 26일 미8군 사령관인 워커 장장의 긴급지원 요청에 따라 창설되었다.
지게부대는 10대에서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군번과 계급장과 철모는 커녕, 흰색 무명바지, 교복 등 징집 당시의 복장 그대로였고, 매일 삼팔선으로 떨어진 고지로 45kg 내외의 보급품을 지게에 실어날랐다고 한다. 지게부대 동원 인원은 약 30만명으로 추정되며, 탄약과 연료, 식량 등 보급품 운반은 물론 진지 공사, 부상병과 사망자 후송 등 전쟁의 '숨은 주역'으로 전장을 누빈, 한국전쟁의 또 다른 숨은 영웅들이었다.
전쟁기간 노무부대는 오로지 나라사랑 정신에서 우러나온 애국심에 의지해 무거운 보급품을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으며 전선의 이곳저곳에 탄약과 식량을 날랐다. 그들에게는 허름한 군복조차도 사치였다. 그들은 명예도 바라지 않은 채, 오로지 다 떨어진 무명옷과 낡은 지게에 자신의 육신을 의지하며 군번도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만 묵묵히 수행했다.
노무부대는 그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에서는 150명이 희생되는 등, 3년간의 전쟁 동안 전사한 노무대원들은 2천 64명, 실종자는 2천448명 그리고 부상자는 4천 282명이나 발생했다. 무려 8천794명의 노무자가 피해를 입었다.
노무부대의 값진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전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투의 절반은 그들이 한 셈이다. 그들은 명예도 바라지 않은 채, 다 떨어진 무명옷과 낡은 지게에 자신의 운명을 의지하며 군번도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만 수행했다. 우리는 잊혀진 그들, 노무부대원들을 기억해야 한다-- 촬영 반포2동 회장 한봉옥. 홍보이사 정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