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장가계 여행
2006. 8. 21-25
사랑하는 딸이 금년 여름휴가를 아빠와 여행하는 것으로 일찍 계획을 한 덕분에 딸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4박 5일 동안 딸과 함께 여행을 하며 대화도 많이 하고 정을 더욱 두텁게 한 것 같아 좋은 여행이었다.
21일 광주 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천진공항으로 갔다. 광주에서 전세기편으로 출발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편리했고 중국까지 1시간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천진공항에서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만나 북경으로 이동하였다. 고속도로로 간 것 같은데 2시간 정도 소요되어 광주에서 중국까지 간 것 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중국에 관해 여러 가지 소개를 해 주었다. 인구가 많고 땅덩이가 넓은 큰 나라라는 것이다. 우선 중국에서는 세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단다. 지방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말을 다 배울 수가 없고, 음식 종류가 다양해서 중국에 있는 음식 맛을 다 볼 수가 없고, 도시만 해도 3000여개가 되어 중국에 있는 도시를 다 돌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천진에서 북경은 거리가 약 100km라고 한데 가면서 차창 밖을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지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이 없었다.
인구가 14-5억쯤 될 거라 하며 누군가가 말하기를, 같은 시간에 중국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똑같이 뛰게 되면 지구가 흔들릴 거고, 같은 시간에 똑같이 오줌을 싸면 홍수가 나게 될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구가 많음을 빗대는 말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중경 인구가 3,400만이고, 두 번째 큰 도시 상해가 1,800만, 세 번째 도시 북경이 1,400만이라고 한다. 북경시의 중심부만 해도 서울의 4배가 넘는 면적이라 한다. 그러니 시내에서 출퇴근 하는 데에도 두세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보통이어서 맞벌이 부부들이 가사에 쓸 시간이 부족하여 주말을 이용해서 청소 빨래 등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일체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며 식사는 거의 외식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한 도시의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전체에 가깝고 한 성의 인구는 1억이 넘는다고 하니 큰 나라요 사람이 많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북경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잠시 짝퉁시장이란 곳을 구경했다. 가짜 명품이 많다는 시장이라고 한다. 주로 의류가게가 많았다. 대략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우리나라 빵집인 빠리바게이트 간판이 눈에 띈다. 마침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 먹으려고 들어가 물어보니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로 본점이 우리나라인 분점이었다.
오후 일정에 따라 황제가 제사지낸 곳이었다는 천단공원에 갔다. 많은 관광객들로 더운 날씨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넓은 공원 터에 3층으로 됭 원형건물이 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는 곳이다. 곳곳에서 중국 사람들이 모여 카드놀이를 하거나 악기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99년도에 아내와 갔을 때는 아침 이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며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한낮인 때문인지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북경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오후 6시30분 출발하는 중국 국내선으로 장가계로 향했다. 2시간 20분이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비행기 좌석이 맨 뒤 구석진 자리여서 공간이 좁고 냄새가 나고 비행기 소리도 더 시끄러운 것 같고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게 되면 가이드에게 이야기해서 빨리 티켓팅을 해서 자리가 나쁘지 않게 부탁하여 그 이후 비행기를 탈 때는 비교적 좋은 자리에서 다닐 수가 있었다. 장가계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니 밤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다. 여행을 하게 되면 대개 잠 잘 시간이 부족하게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호텔에서 잠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22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8시에 관광을 시작했다. 장가계에서 2일간 머물게 되는데 계획된 일정을 바꾸어서 두 번째 날 갈 곳을 먼저 갔다. 안개가 끼인 것을 감안해서 일정을 바꾼다고 했다. 이틀간 있는데 안개가 다소 진하기도 하고 옅으기도 할 뿐 안개는 계속 있는 지역이었다. 비도 자주 내린다고 하는데 다행이 우리 일행이 머무는 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아 좋은 날씨라고 했다.
맨 먼저 인공호수인 보봉호에 갔다. 가는 길에 백장협이라고 하는 고대 전쟁터를 지나갔다. 차창 밖으로만 보는 곳이라고 해서 지나가면서 보는데 산의 모습들이 너무 기기묘묘하고 처음 대하는 산의 모습이었다. 감탄사가 나온다. 이틀간 그러한 산의 모습을 싫컨 보았다. 나중에는 처음과 달리 신비감이 줄어들었지만 맨 처음 볼 때가 가장 큰 감동을 준 것 같았다. 보봉 호수는 유람선을 타고 주변을 관광하는 곳이다. 백장협과 같은 산의 모습들이 호수를 온통 둘러싸고 있다. 토가족 여인과 남자가 노래를 불러주는 곳도 있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천천히 둘러보는 경치는 분명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해외여행의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음에 무릉원 3대 풍경구의 하나라고 하는 천자산에 갔다. 케이블카로 산에 오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하룡공원, 어필봉, 선녀헌화 등을 보았다. 하룡은 사람 이름으로 모택동과 함께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공원에는 그의 큰 동상이 있기도 했다. 임금이 붓을 던진 자리에 만들어졌다는 어필봉은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섬세하게 많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선녀가 꽃다발을 안고 있다고 해서 선녀헌화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가 선녀헌화이고 그 외에도 이름 있는 바위와 봉우리들이 있었다.
원가계로 이동하여 천하제일교를 지나는 산길을 구불구불 내려오면서 아름답고 기기묘묘한 산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 바라보며 많이 보았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아서 다니기가 좋았다. 백룡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까지 가서 수직으로 326m를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로 하산했다. 생각보다는 스릴이 덜 했고 아래 부분은 땅속으로 터널이 되어 있었다.
호텔에 들어와서 맛사지를 받았다. 오천원 주고 발 맛사지만 하게 되어 있는데 만원을 더 주고 전신 맛사지를 받았다. 생애 처음 받아본 맛사지였다.
23일에는 먼저 황룡동굴에 갔다. 동굴 안에 호수가 있어서 배를 타고 800m정도를 가며 구경을 했다. 궁정 등 여러 가지 이름들이 붙은 장소가 있고, 연못, 폭포도 있으며 굉장히 큰 동굴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종유석 가운데 제일 긴 27m높이의 종유석에는 중국 돈으로 1억원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고도 했다.
다음으로 십리화랑에 갔다. 모노레일을 타고 주변경치를 관광하는 곳이었다. 한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화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서서히 움직이면서 주변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금편계곡에 갔다. 물이 귀한 곳에 있는 계곡인데 우리나라에 있는 좋은 계곡들을 이번 여름에 많이 다녀본 나에게는 너무나 시시한 곳이었다. 하지만 계곡보다 주변 산의 모습이 좋았고, 거기에 장가계라는 큰 돌 간판도 있었으며 장가계의 대표가 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의 산들이 주변에 있었다. 계곡을 더 따라 오르면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나 시간이 없다고 계곡입구에서 잠시 발을 물에 담구고 왔다.
장가계의 마지막 코스로, 옾션으로 1인당 6만원씩 부담한 천문산(天門山)에 갔다. 케이불카를 타고 장가계 시내를 횡단해서 천문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산중턱으로 내려와서 버스로 바꾸어 타고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산 정상부근에 커다란 구명이 뚫려 있어서 천문산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구멍으로 경비행기가 통과한 적이 있다고 하니 과연 큰 구멍이다.
버스로 구멍이 있는 곳 아래에 가서 계단으로 된 급경사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된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바라만 보고 오르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초등학생 2학년인 어진이와 4학년인 혜원이 두 아이가 몹시 오르고 싶어 했다. 어른들은 피곤하기도 하고 늦은 시간 탓인지 모두 포기상태였다. 아이들이 오르자고 성화를 데고 저희들 끼리만이라도 곧 오를 것 같았다. 아이들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나는 가이드에게 올라갔다가 와도 진행시간에 차질이 없겠는가를 확인해 보았다. 괜찮으니 올라갔다 오라고 권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와 오르기로 하고 출발 했더니 어진이 엄마가 뒤따라왔고, 내려오다가 보니 또 한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며 올라와서 다섯명이 天門구멍까지 다녀왔다. 내려 올 때는 두 아이가 먼저 앞서 가는데 내려오는 것이 더 위험하기에 곧 뒤따라 와서 조심조심 내려오는 어진이 손을 잡아 주었더니 안심이 되는 듯 평안하게 잘 내려왔다. 어진이 엄마는 나중에 올라온 사람을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더운 날씨에 땀이 많이 났지만 아이들이 기특하고 재미있었다. 급경사 계단 길이어서 오르기도 힘들고 위험성도 있었으나 무사히 다녀온 것이다.
장가계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겸해서 구경하게 되는 토가풍정원에 갔다. 이미 날씨는 어두워졌다. 어두운데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토가족과 관련된 것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곳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북경으로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갔다. 장가계는 토가족이 가장 많이 사는 종족이라고 한다. 넓은 뜰에 사람들이 빙 둘러 의자에 앉아 있고 나중에 보니 무슨 코메디 쇼가 열리고 있었다. 저녁 9시경 장가계를 출발하여 북경에 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다. 곧 호텔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장가계 관광은 신기하고 아름답기도 한 산들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구경하기도 하고,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기도 하고(보봉호), 케이블카를 타고 먼 경치를 바라보는가 하면 산 가까이까지 가서 보기도 하고(천자산, 천문산),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주변 산들을 보기도 하고(십리화랑), 계곡에 들어가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도 했다(금편계곡). 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보기도 하고 내려오면서 보기도 했다.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곳도 많았다. 절벽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걸을 때에는 위험을 느끼기도 하면서 스릴이 있기도 했다. 도보로 다니는 길들은 비교적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길들은 대부분이 세멘트 포장길로 매우 포장상태가 나빴고, 어떤 곳은 비포장 길을 상당히 가기도 했다. 셔틀버스를 많이 이용했는데 연결이 잘 되어 기다리는 시간은 거의 없어 좋았으나 운전기사들의 운전솜씨는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은 탓이 많지만 모두들 바쁘게 빨리빨리 서두르는 모습이 많았던 것 같다.
중국 관광의 마지막 날이 되는 24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만리장성에 갔다. 케이블카로 장성에 올라 멀리 펼쳐진 성벽들을 구경하고 걷기도 했다. 피곤이 쌓여가니 많이 걸을 수는 없었다. 장성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1인당 15,000원씩 부담하는 옾션으로 북경시내 골목들을 자전거가 끄는 인력거를 타고 돌아보았다. 서민이 사는 한 가정에도 들어가 보고, 유치원에도 가보고, 재래시장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 사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지만 색다른 체험을 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이 있는 곳에 갔다. 고궁박물관으로 입장하여 자금성의 최단코스를 본 것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도 부족하고 무성의가 나타났다. 볼장 다 보았다는 식인 것 같았다. 전에 왔을 때와 많이 다른 겉핥기식이었다. 천안문 광장 앞이 매우 교통량이 많고, 지하통로를 이용해서 사람들은 이동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지하통로도 몰랐고, 자동차가 광장을 가로질러 그렇게 많이 다녔는가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광장을 자유스럽게 여기저기 거닐어 보았던 것만 생각났다.
저녁식사는 유명한 북경 오리구이라고 해서 뭘 가 기대를 했는데 식사에 다른 반찬과 함께 오리 볶은 것 두어 접시 곁들어 주는 것임을 알았을 때 실망했다.
저녁식사 후 다음날 귀국을 위해 천진으로 이동했다.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어 밤 11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했고, 다음 날 아침 6시 반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아침식사는 도시락이라고 하면서 빵 우유 계란 하나씩 들어 있는 봉지를 주는데 사람들이 거의 먹지 않고 버렸다. 시간에 맞춰 비행장에 나왔으나 안개로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1시간 반 정도 연착하여 출발하므로 광주에 오전 11시경 무사히 돌아왔다.
중국은 아직도 후진국이다. 장가계의 관광지마다 달라붙는 장사치들은 관광객을 피곤하게 하고 짜증나게 했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을 내세워 물건을 팔려고 한 것은 질색이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밤이나 기타 먹을 것 또는 간단한 악세사리 등을 들고 천원을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저런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이 후진성을 면하려면 관광지의 상행위 문화가 관건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13명이 한 팀이 되어 4박5일을 같이 보냈다. 초등학교 동료 여교사 5명이 의기투합하여 자녀 또는 부모를 모시고 하는 여행에 딸과 내가 끼인 것이다. 초등학생이 3명이고 여교사 5명에 부모 된 사람들 3명이 함께 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다소의 도움들이 있을 뿐이었다.
딸과의 여행이 또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빠와 함께하는 동안 딸은 많이 답답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아빠와의 여행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여 조금 있으니 천둥번개를 치며 비가 왔다. 안성마춤인듯 했다. 딸은 집에서 잠시 쉬고 다음날 근무 때문에 오후 3시버스로 수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