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어젯밤 늦게 제사를 지내고, 오늘 아침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어머니가 계신 추모공원을 다녀왔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같은 얼굴로,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계셨다. 하얀 단지 앞에는 작은 미니어처 제사상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앞에 서니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1년여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병원, 중환자실, 요양병원, 그리고 집.
더 이상 치료의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무렵, 어머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셨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셨고, 익숙한 공간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셨다. 하지만 병세는 다시 악화되었고, 결국 병원으로 옮겨진 뒤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마도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생의 마지막 길을 걷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끝을 자신의 집에서 맞이하고 싶어 한다. 평생 살아온 공간, 익숙한 냄새와 풍경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죽음조차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에게도, 떠나는 사람에게도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사람은 사라지고, 기억은 점차 흐려진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간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이고, 또한 역사의 모습 아닐까 싶다.
추모공원을 나와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가족조차 결국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들이다. 함께 걷는 시간이 있을 뿐, 누구도 누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부모와 자식도, 부부도, 형제도 결국은 저마다의 길을 걸어간다.
가끔 사진첩을 펼쳐본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 가족여행의 풍경들, 부모님과 나란히 서 있는 중학교 졸업사진,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병실 사진, 친구들과 웃으며 찍은 여행사진들. 그 속의 시간들은 모두 지나갔다. 언젠가 나 또한 늙어 그 기억들마저 희미해지겠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장소가 기억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며,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니까.
하루 휴가를 낸 터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 산속 카페에 왔다. 월요일 오전이라 사람도 거의 없다. 창밖에는 초록빛 숲이 가득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햇살에 빛난다. 시원한 숲 향기가 스며들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따뜻한 커피 향이 조용히 공간을 채운다.
문득 과거와 미래가 모두 도화지 위에 번져 있는 수채화처럼 느껴진다. 선명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역시 뚜렷한 형태 없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작된 하루. 그리고 숲 속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지금. 삶은 어쩌면 기억과 망각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여행일 것이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또한 언젠가 또 다른 기억이 된다.
그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고요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아무것도 붙잡고 싶지가 않다. 그저 숲의 향기와 커피의 온기를 느끼며, 지난 시간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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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티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여행 다니느랴 항상 바쁘신 우리 원주민~, 더위 잘 보내고 있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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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삶의향연 작성시간 26.06.16 티노님의 글은 정갈한 맛이 나는... 그래서 향기가 납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삶의 무상함!
기억은 흐려져도 사랑했던 시간들은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흔적으로 남는다는 말이....
티노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라앉은 듯하면서 정돈되는 순간이 되어 차분하게 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티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가끔 글을 쓰면서, 또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맘을 정돈하곤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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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번쯤 작성시간 26.06.17 new
저에 아버지께서 골절로 수술을 받으시고 당뇨합병증 때문에 생사를 넘나드셨죠.
병원에서는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었고
아버지는 정신이 돌아오면 집으로 가고싶다고 하셨죠.
우리가족은 아버지의 마지막을
낳고 태어난 집에서 보내시는걸로 하고
경남진주에서 택시를 대절해
보성 우리집까지 모셨죠.
그렇게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1년 6개월을 더 사시다
새벽 조용하게 떠나셨어요.
난 살아오면서 수많은 죽음을 봤는데 아버지의 죽음은 보질못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의
술과 담배와 켜켜하게 쌓인 신문과 하모니카가 생각나고는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티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new
아버지의 마지막이 차가운 병원이 아니라, 태어나고 자란 따뜻한 집이어서 다행이네요. 비록 마지막 떠나시는 숨결은 눈에 담지 못하셨더라도, 아버님의 삶은 이미 당신의 그리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담담한 그리움들이 아버님이 님에게 남겨주신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흔적 아닐까 해요.
편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