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틸베(Astilbe, 노루오줌)/예당 조선윤
숲 그늘 아래 피어난 분홍 노루오줌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깃털 같은 꽃술로 초여름의 이야기를 적는다
햇살이 깊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면
꽃은 한 송이 불꽃이 되어
푸른 숲의 침묵을 환하게 밝히고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는
꽃잎 사이에 내려앉아
한낮의 시간을 향기로 물들인다
누군가의 발길이 머문 자리마다
분홍빛 추억 하나씩 피어나고
세월의 먼 길을 걸어온 마음도
잠시 꽃 곁에 앉아 쉼을 얻는다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아도
제 빛을 잃지 않는 꽃처럼
인생의 황혼에 이른 사람도
조용한 미소로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오늘 노루오줌은 숲속에서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높은 곳에서 피는 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쉬게 하는 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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