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었다가 놨다가 / 정보경 비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뚜껑이 먼저 움직인다 들렸다가 잠시 공중에 머물다 다시 내려앉는 것들 가마솥 안쪽에서 물이 아니라 시간이 끓는다 막걸리에 불어난 반죽이 손바닥의 궤도를 따라 둥글어질 때 박혀 들어가는 콩알들 입속이 아니라 어딘가의 여름 속으로 마루에 누우면 가슴 위로 떨어지는 낙숫물 나는 젖지 않고 소리만 젖는다 기러기 두 마리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고 마당을 한 번 스쳐간다 갈리는 것은 콩이 아니라 시간의 입자들 흰 물이 붓고 젓는 손이 있고 그러나 무엇이 누구를 저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몽글몽글 형태를 갖기 직전의 것들 네모가 되는 순간 잘려나가는 가장자리들 어머니의 손끝에서 해당화는 피지 않고 며칠을 비워둔 하늘이 갑자기 내려앉아 모과나무 아래 구멍 난 우산을 쓴 채 나는 그 아래 앉아 들렸다가 아무 이유 없이 다시 놓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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