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촌에서, 막힌 강의 소리를 듣다 / 신영우 초록이 무성해진 오후에 명동촌을 걸었다.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정갈하게 다듬어진 길 사이로 오래된 시간의 그림자가 자꾸 발목을 붙잡았다. 한때 두만강에는 푸른 물결 따라 뗏목이 떠내려가고, 노를 젓던 뱃사공의 목청이 물안개 사이를 건넜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강은 조용했다. 물길보다 먼저 사람의 왕래가 끊겼고, 노를 젓던 손보다 먼저 삶의 체온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강 위를 맴도는 영혼 같은 적막뿐이었다. 반도의 숨통이라 불리던 용정 우물도 마찬가지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헹구며 세상 소식을 나누던 손들은 사라지고, 작은 공원 한가운데 남겨진 우물터만 오래된 사진처럼 놓여 있다. 왁자지껄했을 물가의 웃음은 바람에 씻겨 나갔고, 사람 대신 관광 안내문과 기념 촬영만 남았다. 강변으로 가니 철조망이 길게 뻗어 있었다. 잡초만 무성한 둔치 옆, 버려진 초소 하나가 누에 떠난 고치처럼 비어 있었다. 세상은 하루 만에 연결되고, 손안의 화면으로 세계가 오가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길 하나는 끝내 열리지 못한 채 막혀 있다. 활발하던 삶의 물길이던 두만강 길은 아직도 닫힌 문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동주의 숨결이 남은 명동촌은 달라지고 있었다. 그의 부친이 바라던 “동쪽의 밝은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마을은 관광지로 정비되고 있었다. 담장은 새로 칠해지고 길은 단정해졌으며,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남겼다. 세계는 손안으로 들어왔고, 사람들은 국경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을 한쪽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메마름이 감돌았다. 기후온난화와 산업화, 농업 확장으로 물의 수요는 커졌지만 겨울 가뭄과 이상고온은 해란강의 물길까지 야위게 만들고 있었다. 강은 점점 얕아지고, 사람들의 정서 또한 함께 메말라가는 듯했다. 일송정을 바라보니 푸른 솔숲과 반듯한 정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때 독립군의 숨결과 망향의 노래를 품었던 언덕. 겉보기엔 숲이 무성했지만 자세히 보니 소나무 몇몇은 솔잎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마치 시대를 건너오며 지쳐버린 사람들의 마음 같았다. 문득 엄인섭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독립과 배신, 생존과 변절이 뒤엉킨 인간의 그림자. 이 땅은 영웅만의 땅이 아니라 흔들리고 무너졌던 인간들까지 함께 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용정의 바람은 더 깊고 서늘했다. 초원을 가르며 철길과 포장도로가 멀리 뻗어 있었다. 곧게 뻗은 도로 위로 차량들은 바람처럼 스쳐 가고, 통화음은 국경을 가볍게 넘어갔다. 하늘의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가는데 사람의 길만 멈춰 서 있다. 그들이 지켜낸 독립의 숨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발길 아래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붉은 물길 같은 기억으로 지금도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명동촌의 초여름 뜨거운 바람 속에서, 오래전 누군가의 젖은 빨래 냄새와 노 젓는 물소리를 바람결에 듣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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