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않고 / 심언주
나는 살아간다.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간다.
생각하다가 불을 끄지 않고 살아간다.
가스불을 끄지 않아 출근길을 되돌아간다.
불 끄러 갔다가 불이 꺼져 있어서 살아간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조금 늦게 도착하면서 살아간다.
불을 끄면 생각이 켜진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을 품은 채 잠이 들고 생각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생각은 생각을 키우고 생각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꺼지지 않는 생각에 발목이 잡혀 살아간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길 끝에 집이 매달려 있고 내 생각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흔들리면서 살아간다. 생각을 잡지도 않고 살아간다 네 생각을 묻지도 않고 살아간다
생각을 닫지 않고 살아간다 생각 없이 앞만 보며 간다.
아무데나 생각을 쏟아내다가 내가 쏟아지면서 살아간다.
생각이 싹트는 걸 보면서 간다.
다시 생각하면서 간다.
살아 있으면 간다. 나는 살아간다.
나는 살아서 어딘가로 간다.
-시집<처음인 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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