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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시모음

장백산 서파계단 아래서 / 신영우

작성자cbdc반대(박윤억)|작성시간26.06.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장백산 서파계단 아래서 / 신영우

장백산 서파에 오르는 길은 연둣빛 자작나무 숲에서 시작되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숲을 채우고 있었지만 바람 끝에는 아직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서자 서파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거대한 용이 몸을 틀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발 2,254미터 환승지점에서 내리니 발아래 산자락에는 지난겨울의 흰 눈이 남아 있고,

그 곁으로 푸른 초원과 흰 야생화가 펼쳐져 있었다.

눈과 꽃, 초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계절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있는 듯했다.

1,4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낮게 깔린 구름이 등을 떠밀고, 거친 바람은 얼굴을 스쳤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검은 구름이 몰려왔지만 천지는 끝내 모습을 허락했다.
천지는 가장자리에 투명한 얼음을 두른 채 깊은 침묵 속에 누워 있었다.

전날 남파의 천지가 포근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았다면,

서파의 천지는 바람과 암벽을 품은 장수처럼 굳세고 웅장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자연이 품은 남성적 기개와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장백산의 얼굴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안개와 구름이 밀려들었고,

하산 후 버스를 기다리던 순간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계곡을 울렸다.

조금 전까지 선명하던 천지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십여 미터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산길에 만난 금강협곡은 또 다른 경이였다.

하늘로 솟구치는 기암괴석과 층층이 드러난 화산재 절벽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대지의 시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침식과 생성이 지금도 계속되는 살아 있는 지형 앞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삶도 장백산의 날씨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날만 있는 것도, 흐린 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구름이 걷히면 천지가 모습을 드러내듯, 인생 또한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린다.
맑은 천지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비와 안개와 천둥 속의 장백산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오늘 나는 장백산에서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 하나를 함께 품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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