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파등정, 살아 있는 백두를 만나다 / 신영우 백두산 북파에 오르던 날, 산은 밤새 내린 눈으로 새롭게 태어나 있었다. 초여름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하얀 눈이 능선을 덮고 있었고, 산 아래에는 짙푸른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죽죽 뻗은 자작나무 숲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자 초록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풍경은 빠르게 변했다. 연둣빛 사스래나무가 바람에 춤추고, 원시림은 넓은 초원과 화원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들꽃들이 피어난 산비탈을 지나며, 나는 태고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산맥의 숨결을 느꼈다. 마침내 북파 정상에 이르렀을 때, 눈앞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밤새 내린 눈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광활한 만주벌판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하늘과 대지는 하나로 이어져 보였다. 구름은 대륙과 하늘의 경계를 만들다가도 다시 산과 사람 곁으로 내려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그 중심에는 천지가 있었다. 천지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백두산의 품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세월과 풍상을 견디며 하늘을 담아 온 거대한 거울 같았다. 천지를 바라보는 순간,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진 마음은 저절로 숙연해졌다. 그 푸른 물결은 오랜 인고의 눈물을 품은 듯 깊고도 고요했다. 백두산의 사계는 서로 밀고 당기며 살아간다. 겨울은 흰 눈을 쌓아 올리고, 여름은 봄을 키워 울창한 숲을 가꾼다. 이슬은 안개가 되고, 안개는 먹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다가 어느 날 다시 눈이 되어 백두산에 내려앉는다. 내가 만난 여름날의 눈도 그렇게 순환하는 자연의 한 장면이었다. 천지의 물은 장백폭포가 되어 힘차게 흘러내린다.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은빛 물비늘을 흩뿌리며 장관을 이룬다. 폭포 아래에는 장백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수는 마치 승천을 준비하는 용의 기운처럼 역동적이었다. 곳곳에 고인 맑은 소(沼)는 작은 천지가 되어 또 다른 하늘을 품고 있었다. 폭포수는 깊은 계곡을 지나 강이 되고, 강은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한 방울의 물은 수많은 생명을 키우며 황해로 나아가고, 마침내 대양의 꿈을 펼친다. 북파에서 만난 백두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눈과 숲, 구름과 물, 천지와 폭포가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의 터전이었다. 젊고 장쾌한 기운으로 솟아오른 백두는 오늘도 대륙의 하늘 아래 우뚝 서서, 인간의 작은 근심을 품어 주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날 북파에서 마주한 백두는 분명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숨결은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서 천지의 푸른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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