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지나 향기가 될 때 / 이삐 김밝은
꽃을 향기롭게 키우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심술궂은 하늘의 폭력에도 숲은 달아나지 않아
겁에 질린 새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요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도
꽃의 젖줄을 움켜쥔 뿌리들의 맥박이 고동치고 있지요
낡은 앞치마를 펼치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면
나비들도 덩달아 포르르
아이들의 어깨 위에서 발끝으로 가볍게 서보는 날들이에요
밤의 손을 잡고 촉수 낮은 불빛 아래 앉으면
오래된 책의 페이지에서 잠의 요정들이 걸어 나오는지
고단했던 그림자도 편안한 자세로 잠자리에 듭니다
일 년에 딱 한 번만 별을 본다고 생각해 봐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빗방울의 숨소리를 들으며 향기로워지는 아몬드꽃으로
우리의 시간은 조금 더 눈물겨워지겠지요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다**니요
*, **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 전시회에서 만난 타샤 튜더의 말.
-계간<산림문학> 2026년 여름호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