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꼭 잊고 싶다면/김정한
나를 꼭 잊고 싶다면
조금씩 지워가며 잊어주시기를
나를 꼭 지우고 싶다면
한꺼번에 삭제 버튼을
누르지 마시고
당신을 흔들어놓았던 메일을
한줄씩 지워 가시기를
바라옵건데 조금씩 천천히
지워 가시기를
그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있다면
허락받지 않고
당신을 사랑한 죄 밖에 없으니
가끔씩 당신이 그리우면
당신에 대한 기억
몇자락 만이라도
몰래 끄집어 내어
혼자 만이라도 웃고 또 울며
추억할 수 있게
새털 만큼 가벼운 흔적만이라도
남겨 두시기를
나를 꼭 잊고 싶다면
조금씩 지워가며 잊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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