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밥 / 김영란
별다른 레시피 없어요
냉장고 열어 있는 것만 넣고 해보는거죠 뭐
비가 오는 날은
오늘처럼 작정하고 끈덕지게 내리는 날은
집 밖으로 나가기 죽기보다 싫거든요
봐봐요
차림은 헐렁해서
방금 전 내 자세 여실히 증거하는데요
그게 또 금세 젖어요
아시죠 그 느낌
밑에서부터 서서히 축축해져 감겨 올라오는
비 올 줄 모르고 세탁기 가득 빨았는데
제때 마르지 못하고 냄새 날 것 같아요
아시죠 그 냄새
꼭 짜서 던져 놓고 잊었던 걸레가 상하는
부추는 성질 급해 쉬이 상해요
부추꽃은 정말 별처럼 예쁜데
비 오는 날 궁합 맞는 부추전 할까요
대파는 꽃대 올라와 최고로 뻣뻣할 때죠
심을 뽑아내도 달큰한 맛은 없어요
대파는 뺄까요 그럼 그러죠 뭐
오뉴월 채소들이 대부분 단물 빠져 싱거워요
요즘 그나마 마늘 양파 캘 시기라 맛있어요
마알간 외모에 향기까지 죽이네요
전 마늘 양파 고추 심각한 중독자거든요
매운 고추도 어슷어슷 넣어요
살짝 시들한 당근 쪼글 싹 난 감자 반 토막 호박
그리고 또 뭐가 있나
버섯이 있네요
바싹 건조된 버섯은 비 오는 날에도 까딱없네요
건새우 바지락살 오징어는 다시 냉동실로
너무 판이 커지면 곤란하거든요
안그래도 매번 손만 커다래 양 조절 실패하거든요
얼추 된 것 같네요
별다른 레시피 없어요
냉장고에 있는 재료 다 털어 해보는거죠 뭐
없으면 안넣으면 그만
거슬리던 맛 간 재료들 버리기 아까웠는데
뗄 것 떼고 벗길 것 벗기고 다듬어 놓으니 제법 뽀샤시하네요
이걸로 뭐할지 아직 못 정했어요
그런거죠 뭐 끌리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 꽉 찼어요
이거 얼른 버리고 올게요
슬리퍼 안되겠죠
썰렁 뚝 떨어진 기온 뭐라도 걸쳐야 되고
할 수 없네요 진짜 집 밖에 나가기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