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숲길 / 김화숙
밤새 내린 비가
숲의 먼지를 씻어내고
나무들은 젖은 어깨를 털며
싱그러운 얼굴로 손을 흔든다
물방울 하나 잎끝에 매달려
작은 렌즈기 되어
세상 풍경을 담아내고
축축한 흙냄새는
잊고 지낸 추억을
기억의 가지에 걸어둔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견디기 힘든 날들은
천둥이 되어 지나가고
삼켜야 할 눈물들은
빗물 되어 스며든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나면
숲이 더 푸르고 울창하듯
사람도 조금 더 넓고 깊어진다
젖은 숲길을 걸으며
지나온 아픈 시간들에게
잘 견뎌왔다고
내 안에 나무 한 그루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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