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필 때면 / 한재선
간간이 부는 바람이 중력을 잃었을까
낮은 자세로 망각의 숲을 지나는 중입니다
마음에 풍선을 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발등에 돌덩이 얹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건
계절 탓이라 하지 않겠습니다
호수 공원을 몇 바퀴 걷는 동안
말이 없어도 다정했고 향기로웠고
새소리도 감미로운 그날의 오후처럼
또다시 꽃무릇은 피고 있습니다
소나무 언덕 아래
마음에 줄을 당기던 기억만 그늘처럼 남겨놓고
아무런 약속도 없이 서로의 갈 길을 찾아
초록의 행간을 건너갔죠
말이 사라진 숲엔
고요한 침묵만 고였습니다
-<대전문학> 2026 05 / 06, 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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