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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시모음

호미 / 황규관

작성자찢어진 청바지|작성시간26.06.09|조회수12 목록 댓글 0

호미 / 황규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풀을 매고 흙덩이를 부수고 뿌리에
바람의 길을 내주는 호미다
어머니의 무릎이 점점 닳아갈수록
뾰족한 삼각형은 동그라미가 되어가지만
호미는 곳간에 쌓아둘 무거운 가마니들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한끼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몸을 부린다
인간은 모두 호미의 자식들이다
호미는 무기도 못되고 핏대를 세우는
고함도 만들지 않는다 오직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을 가꾼다
들깨며 상추며 얼갈이배추 같은 것
또는 긴 겨울밤을 설레게 하는
감자며 고구마며 옥수수 같은 것들을 위해
호미는 흙을 모으고
덮고 골라내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혼자돼 밭고랑에서 뒹굴기도 한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호미야말로
인간의 위대한 이성을 증명하지만,
산 귀퉁이 하나 허물지 않은 그 호미가
낡아가는 흙벽에
말없이 걸려 있다 
 
   -시집<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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