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농부의 가르침 9

작성자.동 행|작성시간26.06.12|조회수20 목록 댓글 0

가을걷이를 끝낸 늙은 농부는

이웃에 있는 남자와 함께

농사지은 것들을 가지고 한양에 장사하러

먼 길을 떠나고 있었는데요

꽃 피는 봄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올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한숨짓는

남자를 보며 늙은 농부는

"자네 걱정이 있는가 보네"라며

넌지시 묻는 말에

"사실은 그게…."

남자가 뱉어놓는 근심을 조용히

듣고 있던 늙은 농부는

"내가 해결해 줄 터이니

한양으로 돈이나 벌로 가세"

늙은 농부의 단호한 말에

찡그린 해님 같은 얼굴로 한양에 도착한

남자는 국밥 한 그릇에 먼 길 온몸을

녹인 뒤 아랫목에 누워 팔자 편하게

누워만 있는 늙은 농부에게

"힌양에 오면 해결해 준다지 않았소…."

" 돈 벌어 내려가 보면 알게될 걸세 "

"한양가면 해결해 준다더니

이젠 내려가면 알게 된다는 소리만

하니 원...."

"자넨 내려가면 씨나 뿌리면 될 터이니

넘 걱정하지 말게"

"겨우내 언 땅을 늙은 어머니 혼자

힘으로 어찌 다 간단 말이오"

"글쎄 기다려 보면 알게 된다니깐"

"밭은 그렇다 치고

고래 심줄보다 질긴 친구 놈이

빌려 간 열 냥을 여기 한양에 누워서

무슨 수로 받아준다는 거요?"

"그것두 해결해 준다지 않았느냐?"

고향 땅에 있어도해결될 리 없는 일을​

천리만리 떨어진 한양에서 해결해 준다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다

코를 골고 잠든 늙은 농부와는 달리

남자는

밤새 애먼 밤하늘만 올려다보던 시간이

한 계절을 불러다 놓은 어느 날

'이제 우리도 슬슬 고향으로

내려갈 채비나 하세"

"이제 서둘러 내려가면 뭐 합니까"

"며칠 전 장사 끝내고 먼저 내려가는

보부상에게 자네가 쓴 것처럼 해서

미리 편지를 줘 보냈네"

"까막눈인 울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서

뭘 해결한단 말이오"

"누가 자네 엄마에게 보냈다 했는가

옆집에 사는 자네 친구에게 전달해 주라 했지"

"그놈은 제집에 불이 붙어도 꼼짝 안 할

게으른 놈한테 뭘 어쩌려고 편지를

보냈단 말이오"

속만 더 끓는 소리만 해대는

늙은 농부가 모는 소달구지에 올라

뜨는 해와 지는 달을 밑천 삼아

고향에 도착한 남자는

오매불망 돌부처처럼

아들 오기만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달려갔을 때

"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겨우내 꽁꽁 얼어붙어 있어야 할 밭이

모두 갈려 있었고 노모가 그 사이로

씨를 뿌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옆집 사는 네 친구가 와서

밭을 다 갈아엎어 주더구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늙은 농부는

"내 걱정하지 말라 하지 않더냐 "

"도대체 편지 내용에 뭐라고 썼길래

게으른 친구가 이 넓은 밭을 다 갈아

엎었단 말입니까?"

"별말 안 썼느리라

밭에 금덩이를 묻어 놨으니 자네 엄마가

밭을 갈지 못하게 해달라고 쓴 것밖에…."

늙은 농부는

노을이 그려놓은 길을 따라 멀어지던

자신을 보며 엎드려 절을 하는

남자에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자네 친구에게 빌려준 열 냥은

밭을 일구어준 품삯으로 대신

받은 셈 치게나…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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