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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 정보

궁극의 세벌식 자판은? 속기 자판과 동시치기 자판의 가능성 (12.10 수정)

작성자명랑소녀|작성시간15.12.08|조회수1,607 목록 댓글 6

예전에는 속기 자판이  그저 문자 입력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는 자판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 들여다보니 그 가능성이 실로 무궁무진합니다. 일단 한국에서 가장 대세라는 CAS 속기 자판을 보시죠.


(이미지 출처: http://dalki4859.egloos.com/4841181 )

속기 자판은 동시치기 입력을 기본으로 하는데, 왼손은 초성, 오른손은 받침, 그리고 양손 엄지로 모음을 담당하는 세벌식 구성입니다. 조합을 편의상 자모들을 나열하여 입력하는데, 초중종 순서로 쓰고, 하이픈(-)은 모음이 없음을 나타낸다고 합시다. 거센소리 ㅋㅌㅊㅍ는 ㅎ와 ㄱㄷㅈㅂ를, 된소리는 ㅇ과 조합하여 입력합니다. 모음 입력도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 ㄱㅏㅇㅅ = 갔 이 됩니다. 또한, 속기 자판에서 독특한 것은 한 손가락으로 인접한 두 글쇠를 동시에 누르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인데, 즉 1ㅎ-, ㅎㄷ-, ㅏㅜ 등의 조합은 한 손가락만으로 치게 되고 이는 보통 쿼티 자판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죠. 이로써 매우 많은 글쇠들을 동시에 누를 수 있게 됩니다. 한번에 동시에 입력하는 키 조합을 스트로크stroke 라고 부릅니다. 스트로크 = 타打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이미지 출처: http://plover.stenoknight.com/ )

영어용 속기 자판도 그 원리는 대동소이합니다. 이 자판은 컴퓨터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11년에 이미 타자기의 형태로 원형이 나왔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컴퓨터가 나오긴 전에는 저런 기계로 타자를 친 후에 나중에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즉 KAN 으로 찍혀 나오면 can 으로,  PWOEU/TPREPBD (이것은 PWOEU 와 TPREPBD 를 두 번에 걸쳐 입력했음을 의미합니다)으로 찍혀 나온 것은 boyfriend로  해석을 해야 했다는 것이죠. 다음 그림은 그 예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tenotype )


지금은 컴퓨터가 이 작업을 실시간으로 해 줍니다. 속기 결과를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은 수필 속기와도 비슷한 부분입니다.

한국어 속기 자판에선 한번에 입력하여 한글 글자가 되는 스트로크를 독타라고 부릅니다. 속기 자판의 강점은, 독타 아닌 수많은 스트로크들에 다른 기능을 지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ㄱㅅㅂ*ㅂㄴ 는 CAS 에서 ~고 싶습니다. 로 나타나는데 이런 스트로크들을 약어라고 부릅니다. 수천이 넘는 약어들이 지정돼 있다고 하니 이 자체가 사전을 구성합니다. 이런 약어들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들이 있습니다.

- 조사(이,가,을,를)나 어미(-ㅂ니다, -고 있다)와 같은 자주 나오는 형태들. 여기서 끝마치는 형태에선 마침표 혹은 물음표와  때로는 공백이 딸려 나옵니다.
- 기타 각종 단어들
- 공백, 구두점과 각종 기호 및 특수문자 : , . " ' ( ) ? !@#$% 등 모두가 각자의 약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표와 쉼표 등의 경우 뒤에 공백이 나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따로 있습니다.
- 숫자와 알파벳 (1, 11, 6.25, C, IAEA, UFO)
- 고유명사
- 원리적으론 옛한글도 완벽하게 입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어는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으니까요.

이 때, ㄴ- 이나 -ㅊ 등 그냥 초성이나 종성 글쇠 하나의 경우 글자를 이루지 못하고 독타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영어 자판의 경우 알파벳 낱자를 입력하려면 *와 함께 입력하는데 CAS에서 한글 낱자를 입력하는 방법도 대동소이할 것 같습니다.  -ㅇ은 마침표+공백, -ㄹ은 쉼표+공백입니다. 비슷하게, CAS에서 초성 ㅇ은 된소리 입력에만 쓰이며, ㅏㄴ = 안 이고, ㅇㅏㄴ 은 독타가 아닙니다.

오픈소스 영어 속기 프로그램인 Plover에서는 다음도 가능합니다.
- 기능 키들: 커서 이동, 탭, 백스페이스, pgup, home, ctrl-a, f10
- CAS에서도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Plover에서는 여러 스트로크들을 나열하여 글자나 다른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것을 코드chord라고 부릅니다. 가령 CAS 자판에 빗대 써 보면 ㅎ-ㄴ/0/0/0 에서부터 ㅎ-ㄴ/9/9/9 까지 1000개의 특수문자를 지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ㅎ-ㄴ 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자 할 때 주의해야겠지요.
하지만 CAS에서 수천 개가 넘는 약어를 한 타에 입력할 수 있으므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 이런 기능들은 모두 매크로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즉 한 타만에
while()
{

}
을 입력하고 커서를 {} 사이에 두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죠. Plover 측에서는 코딩하는 사람에게 유용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네요.

속기 자판이 한국어 사용자에게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그 자판을 이용하기가 보통 자판에 비해 절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어 속기 자판도 본질적으로 "세벌식" 방식이나, 위에서 보셨듯이 그 체계가 일반 알파벳 스펠링 방법과는 크게 다릅니다. 따라서 배워서 쓰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한국어 속기 자판은 그냥 말 그대로 동시치기 세벌식입니다. 따라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널리 보급될 수만 있다면 대다수 컴퓨터 이용자가 엄청난 문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인데, 저런 200만원이 넘는 속기용 키보드를 구매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행히 동시입력을 지원하는 키보드라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엄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키보드는 시중에 많지 않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도 문제인데,  Plover가 한글을 지원할 수 있는지, 혹은 <날개셋> 등의 한글 입력기가 비슷한 기능을 지원할 수 있을지는 아직 가능성일 뿐입니다.

(추가: 간단한 실험 결과, Plover 로도 한글 속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한 걸로 보입니다. 보통의 텍스트가 아닌 -ㅂ니다 와 같은 합성형인 경우 Plover로 추가해도 하+ㅂ니다 는 하ㅂ니다 가 되지 합니다 로 조합되지 않겠지요.)

이런 강력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모든 한글 글자가 동시 입력이 가능해야 합니다. 가령 391 자판의 경우 상당수의 글자가 원리상 동시입력할 수 없거나(까, 같, 삶), 위치상 동시입력이 힘듭니다(약). 그리고 동시치기라고 해서 빠르다기보다는, 저 약어로 인한 편의성과 속도 향상이 강점이라 생각됩니다. 속도 향상을 위한 약어를 모두 익힐 수는 없더라도, 각종 구두점과 특수문자, 커서 이동 등의 기능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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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세기 | 작성시간 15.12.09 좋은 말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팥알 님도 모아치기 자판은 약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날개셋 입력기에서 약어가 지원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모이의 경우는 기호조합약어와 TSF약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속기자판의 약어 기능에 비하면 기호조합방식은 속도가 느리고, TSF를 사용하는 방식은 프로그램의 호환성이 적습니다... 이 부분은 날개셋 입력기가 판올림이 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팥알 님께서 소개해 주신 방법( http://pat.im/1109 )에 매력을 느끼고 있어서 날개셋이 판올림되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팥알 | 작성시간 15.12.15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이제야 덧글을 답니다.

    이어치기 방식은 글쇠가 눌린 차례대로 처리하므로, 어쩌다 두세 글쇠가 함께 눌리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모아치기는 글쇠를 모두 뗀 때에 몇 글쇠씩 끊어 처리할지를 가릴 수 있습니다. 모아치기에서 글쇠 떼기는 치기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모아치기가 '동시'에 글쇠들을 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글쇠 떼기를 잘한다면 글쇠들을 느리게 눌러 가며 모아칠 수도 있습니다. 이 덕분에 초보자도 느릿느릿 모아치기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이어치기 틀에 조합 타이머를 얹어 모아치기를 흉내낼 때는 처음 연습할 때부터 조합 시간에 쫓기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 작성자팥알 | 작성시간 15.12.15 온라인 한글 입력기는 자바스크립트를 쓰는 간이 입력기이지만, 글쇠 떼기를 가릴 수 있고 함수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모아치기 자판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눌리는 글쇠들을 목록에 넣어 두었다가 글쇠를 모두 뗐을 때에 줄임말 규칙을 따지고 낱자들의 차례를 맞추는 함수로 처리하여 글을 넣습니다. 날개셋도 글쇠를 모두 뗀 것까지는 잘 가리지만, 글쇠가 모두 떼인 때에 글쇠 정보들을 뭉뚱그려 처리할 수 있는 함수 기능이 들어가지 않아서 제대로 된 모아치기를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팥알 | 작성시간 15.12.15 날개셋은 웹에서 쓰는 간이 입력기가 아니고 주류 운영체제에서 쓰이는 입력기입니다. 쓰는 사람이 적다고 하더라도 속기 자판 시장에서는 대당 200만원이 넘는 돈에 제품이 팔리는 걸 생각하면, 무료로 배포되는 날개셋에 제대로 된 모아치기 기능이 그냥 들어가는 것은 이미 있던 시장을 위협하거나 개발자 입장에서 아까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모아치기 기능이 들어가는 계기로 날개셋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명랑소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2.15 김용묵님이 날개셋의 동시치기 지원을 어디까지 해 주실지 알 수는 없지만 저 또한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Plover 는 소스가 공개되어 있으므로 한국어에 맞게 고쳐 쓰지 못한다는 법이 없지요. 이렇듯 전망이 밝은 소프트웨어에 비해 하드웨어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건 구미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엄지를 쓰는 자판은 좀 있지만 제대로 된 속기 자판이라면 필수인 한 손가락으로 두 글쇠 누르기가 편하게 돼 있는 자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맞춤형 키캡을 만들어 써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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